바른 마음 -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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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정치와 종교 이야기를 피하라 한다(우리나라에서는 교육 이야기도 포함된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민주시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보수 진보 운운하다가는 싸움나기 십상이다. 미디어에 비치는 정치인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라 여야가 원수처럼 으르렁댄다. 다른 나라도 그렇다고, 그것이 정치의 속성이라 한다. 그러나 목표는 함께 잘 사는 것 아닌가, 편을 갈라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일까.

 

 

도덕심리학자인 뉴욕대 조너선 하이트 교수는 『바른 마음』에서 도덕성의 기원과 진보-보수의 심리적 기제를 밝히고 종교와 정치를 보는 새로운 틀을 제시한다.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라는 부제에 시선이 간다. 영미권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지식인이라는 그는 다위니즘, 인류학, 철학, 사회학을 아우르며 '옮음'을 탐구하는 여정으로 독자를 이끈다. 첫머리에 '이게 내가 연구한 도덕입니다'라고 밝히는 대신, 자신이 대학원생이었던 시절부터 연구 과정과 실험들, 영향 받은 인물을 짚어 나간다. 긴 설명을 앞세우는 이유는 그가 밝혀낸 도덕성이 그만큼 새로운 개념이기 때문이겠다.

 

독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저자는 요지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직관이 먼저고 전략적 추론은 그 다음이다."  우리 마음은 코끼리 위에 기수가 올라탄 모습이라 한다. 기수는 1퍼센트의 의식적 추론, 코끼리는 나머지 99퍼센트의 직관이다. 그런데 기수는 코끼리에게 지시를 하는 게 아니라 코끼리가 가는 방향으로 끌려가 시중을 들 뿐이다. 즉 어떤 판단을 내릴 때 먼저 작동하는 것은 직관이란 거다. 자신과 다른 견해를 접할 때면 사람들은 마음 속 코끼리 때문에 즉각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그 거부감을 설명하려고 기수는 이런 저런 이유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다. 데이비드 흄도 이렇게 말했다 한다.

 

 

"이성은 열정의 하인이며, 오로지 열정의 하인이어야 마땅하다. 이성은 열정에 봉사하고 복종하는 것, 그 외의 다른 직은 결코 탐낼 수 없다. (p.67)"

 

인간 이성이 완벽하다고 믿었던 플라톤과 달리 그의 형 글라우콘은 '사람이란 외관과 평판에 무척 신경을 쓰는 존재로, 정의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해 생겨난 것'이라 주장했다. 저자는 글라우콘의 견해에 동의하며 우리 안의 바른 마음은 이기적이고 전략적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들키지 않을 상황이라면 곧잘 거짓말을 하고, 도덕적인 사람으로 보이고자 자신의 평판을 관리하는 한편 자기 입장을 정당화한다. 이런 주장이 다소 냉소적으로 보일 지 모르나 연구의 바탕이 된 재기 넘치는 실험의 면면을 살피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둘째,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와 공평성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무리지어 살았고, 공동체를 이루는 데 필요했던 미덕이 도덕성으로 진화했다는 주장이다. 즉 진화의 결과 인간은 선천적으로 바른 마음의 틀을 갖게 되었다는 것. 이 도덕성의 틀은  '배려, 자유, 공평성, 충성심, 권위, 고귀함'의 여섯 가지 차원이라 한다. 저자는 바른 마음을 혀에 비유한다. 짠맛, 신맛, 단맛, 쓴맛을 느끼는 혀의 돌기로 전체적인 맛을 느끼듯이 바른 마음의 여섯 차원이 도덕성을 구성한다고 보면 된다. 이를테면 우리 선조들은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유아를 배려했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충성심을, 사회적 규칙을 지키기 위해 권위를 사용했을 것이다. 연구로 밝혀진 도덕의 여섯 차원으로 정당을 분석한 결과가 흥미로운데, 진보는 여섯 가지 중 배려, 자유, 고귀함을 중시하고, 보수는 여섯 가지 모두를 고루 중시한다는 결론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도덕 매트릭스가 다르기 때문에 좌파와 우파가 서로를 이해 못한다고 지적한다.

 

셋째, "바른 마음은 개인보다 집단 차원에서 더 강력하다."  이기적인 인간은 신기하게도 곧잘 무리를 이루고 그 안에 몰입하며 때로는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거나 재난 현장에 뛰어들어 구호 활동을 펼치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은 "집단의 이익을 위한" 이타주의나 협동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이타주의적 행동이 발견된다면 그건 개인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혈연을 보호하기 위한 이타주의라 보았다. 그러나 저자는 집단을 추구하는 기제(이집단성)가 진화의 결과물이라 주장한다. 협력이 가능하려면 개인의 이기심을 눌러야 하는데 아마도 인간은 부족 생활을 통해 스스로를 길들이거나 규칙과 종교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문화가 발달하면서 진화도 급속히 이루어져 인간 본성이 짧은 시간 내에 바뀌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요컨대 인간은 90퍼센트는 개인적이고 10퍼센트는 집단적인 호모 듀플렉스(이중적 인간)다. 비유하자면 "90퍼센트는 침팬지, 10퍼센트는 벌"인 셈이다. 우리 안에는 이기적인 유전자도 있지만 수십 수백명을 공동체로 묶는 군집 스위치도 있다. 개인 간 유대감을 형성하고자 하는 벌의 본능이 종교를 발흥시켰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저자는 종교를 이집단성, 부족성, 애국심에서 비롯된 관습이라 설명한다. 종교는 집단을 유지하는 데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문화가 되었고, 종교적인 마음 즉 신앙심도 함께 우리 안에서 진화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 마음 안에 도덕성과 관련된 요소로 '직관적인 도덕적 감정, 코끼리를 시중드는 내면의 기수, 여섯가지 도덕성과 군집 스위치'를 제안한다. 여기에 경험과 학습이 더해져 개인의 도덕 매트릭스가 결정된다. 그가 결론지은 도덕은 이렇다.

 

"도덕적 체계란 가치, 미덕, 규범, 관습, 정체성, 제도, 첨단 기술 등이 진화한 심리 기제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을 말한다. 이 둘은 도덕적 체계로서 함께 작용하여 개인의 이기심을 억제하거나 규제하며, 나아가 협동적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한다." (p.480)

 

그러니 그의 도덕은 "~이 옳다"는 규범적 정의가 아니라 "사람들은 도덕을 ~ 라고 생각한다"는 서술적 정의다. 저자는 공리주의나 의무론처럼 단 하나의 명확한 원칙을 세우는 것은 마치 미각 수용체 중 하나만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절대적으로 옳은 도덕을 제시하기보다는 "개인들의 사적인 삶에 규범적 윤리가 되어줄 최선의 이론이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p.482)"는 결론이 무척 신선하다.

 

진보와 보수의 옳음은 왜 다르며 왜 둘은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가? 진보주의자는 경험에 개방적인 뇌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고, 보수주의자는 불안에 민감한 타입일 가능성이 높다. 정해진 정치 성향을 갖고 태어난다기보다는, 타고난 유전자 조합에 따라 한 쪽 성향의 뇌를 가지고 태어난 후 학습과 경험이 상호작용해 진보인지 보수인지 결정된다고 봐야 한다. 한 번 결정된 성향은 잘 바뀌지 않고, 자신과 다른 견해를 접할 때면 직관적인 거부반응을 먼저 보이게 된다.

 

진보와 보수의 도덕은 어떻게 다른가? 진보의 도덕은 배려와 자유에 초점이 있다. 불평등이나 착취같은 기존 관습을 깨부수고 자유를 추구하며 약자를 보호한다는 서사다. 진보는 보수가 연대 의식이 낮고, 평등과 약자에 관한 민감성이 떨어진다고 비난한다. 반면 보수는 진보가 자신들이 지키려는 공동체의 전통적 가치를 뒤엎고 자유 시장 경제 질서를 흔들며 세금을 낭비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편에 속하게 되면 다른 편의 도덕성을 보지 못함을 인지하고, 다양한 정치 이데올로기에 흩어져 있는 지혜를 모으는 혜안이 필요하다. 대학시절부터 '당연히' 진보임을 자처했던 저자는 보수가 추구하는 도덕성인 충성심, 권위, 고귀함을 진보도 가져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명절에 오랜만에 만난 친지와 정치 이야기로 싸우고 싶은 사람은 없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의 판단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도덕에 진정한 관심을 조심스럽게 표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내가 보기에 도덕심리학은 현명한 이기심의 관점을 적용하면 그 틀을 대체로 이해할 수 있다. 도덕성을 이기심과 다름없는 것으로 보면, 다윈식의 자연선택이 개인 차원에서 작동하여 도덕적 행동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손쉽게 설명할 수 있다. 즉, 유전자는 이기적인데, 이 이기적인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다양한 정신 모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정신 모듈 중 일부는 전략적 이타주의(명실상부한 이타주의나 보편적 이타주의가 아닌)를 실행하게 되어 있다. 우리의 바른 마음은 이렇게 혈연선택에도 영향을 받지만 호혜적 이타주의에도 영향을 받는바, 호혜적 이타주의는 험담과 평판관리를 통해 한층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메시지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도덕성을 논하는 책에서라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이제까지 내가 한 이야기 역시 이 메시지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p.343

 

"우리 인간은 누구든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이다'라고 믿을 수 있다면야 더없이 좋겠지만,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별로 개연성 없는 이야기이다. 그보다는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한 편향적 사랑, 즉 서로에 대한 동질감, 운명 공동체라는 인식, 무임승차자에 대한 억제, 이 세 가지를 통해 강화되는 그 편향적 사랑이, 인간이 이룩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이 아닐까 한다." (p.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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