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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마음 -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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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정치와 종교 이야기를 피하라 한다(우리나라에서는 교육 이야기도 포함된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민주시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보수 진보 운운하다가는 싸움나기 십상이다. 미디어에 비치는 정치인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라 여야가 원수처럼 으르렁댄다. 다른 나라도 그렇다고, 그것이 정치의 속성이라 한다. 그러나 목표는 함께 잘 사는 것 아닌가, 편을 갈라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일까.

 

 

도덕심리학자인 뉴욕대 조너선 하이트 교수는 『바른 마음』에서 도덕성의 기원과 진보-보수의 심리적 기제를 밝히고 종교와 정치를 보는 새로운 틀을 제시한다.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라는 부제에 시선이 간다. 영미권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지식인이라는 그는 다위니즘, 인류학, 철학, 사회학을 아우르며 '옮음'을 탐구하는 여정으로 독자를 이끈다. 첫머리에 '이게 내가 연구한 도덕입니다'라고 밝히는 대신, 자신이 대학원생이었던 시절부터 연구 과정과 실험들, 영향 받은 인물을 짚어 나간다. 긴 설명을 앞세우는 이유는 그가 밝혀낸 도덕성이 그만큼 새로운 개념이기 때문이겠다.

 

독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저자는 요지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직관이 먼저고 전략적 추론은 그 다음이다."  우리 마음은 코끼리 위에 기수가 올라탄 모습이라 한다. 기수는 1퍼센트의 의식적 추론, 코끼리는 나머지 99퍼센트의 직관이다. 그런데 기수는 코끼리에게 지시를 하는 게 아니라 코끼리가 가는 방향으로 끌려가 시중을 들 뿐이다. 즉 어떤 판단을 내릴 때 먼저 작동하는 것은 직관이란 거다. 자신과 다른 견해를 접할 때면 사람들은 마음 속 코끼리 때문에 즉각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그 거부감을 설명하려고 기수는 이런 저런 이유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다. 데이비드 흄도 이렇게 말했다 한다.

 

 

"이성은 열정의 하인이며, 오로지 열정의 하인이어야 마땅하다. 이성은 열정에 봉사하고 복종하는 것, 그 외의 다른 직은 결코 탐낼 수 없다. (p.67)"

 

인간 이성이 완벽하다고 믿었던 플라톤과 달리 그의 형 글라우콘은 '사람이란 외관과 평판에 무척 신경을 쓰는 존재로, 정의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해 생겨난 것'이라 주장했다. 저자는 글라우콘의 견해에 동의하며 우리 안의 바른 마음은 이기적이고 전략적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들키지 않을 상황이라면 곧잘 거짓말을 하고, 도덕적인 사람으로 보이고자 자신의 평판을 관리하는 한편 자기 입장을 정당화한다. 이런 주장이 다소 냉소적으로 보일 지 모르나 연구의 바탕이 된 재기 넘치는 실험의 면면을 살피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둘째,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와 공평성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무리지어 살았고, 공동체를 이루는 데 필요했던 미덕이 도덕성으로 진화했다는 주장이다. 즉 진화의 결과 인간은 선천적으로 바른 마음의 틀을 갖게 되었다는 것. 이 도덕성의 틀은  '배려, 자유, 공평성, 충성심, 권위, 고귀함'의 여섯 가지 차원이라 한다. 저자는 바른 마음을 혀에 비유한다. 짠맛, 신맛, 단맛, 쓴맛을 느끼는 혀의 돌기로 전체적인 맛을 느끼듯이 바른 마음의 여섯 차원이 도덕성을 구성한다고 보면 된다. 이를테면 우리 선조들은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유아를 배려했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충성심을, 사회적 규칙을 지키기 위해 권위를 사용했을 것이다. 연구로 밝혀진 도덕의 여섯 차원으로 정당을 분석한 결과가 흥미로운데, 진보는 여섯 가지 중 배려, 자유, 고귀함을 중시하고, 보수는 여섯 가지 모두를 고루 중시한다는 결론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도덕 매트릭스가 다르기 때문에 좌파와 우파가 서로를 이해 못한다고 지적한다.

 

셋째, "바른 마음은 개인보다 집단 차원에서 더 강력하다."  이기적인 인간은 신기하게도 곧잘 무리를 이루고 그 안에 몰입하며 때로는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거나 재난 현장에 뛰어들어 구호 활동을 펼치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은 "집단의 이익을 위한" 이타주의나 협동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이타주의적 행동이 발견된다면 그건 개인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혈연을 보호하기 위한 이타주의라 보았다. 그러나 저자는 집단을 추구하는 기제(이집단성)가 진화의 결과물이라 주장한다. 협력이 가능하려면 개인의 이기심을 눌러야 하는데 아마도 인간은 부족 생활을 통해 스스로를 길들이거나 규칙과 종교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문화가 발달하면서 진화도 급속히 이루어져 인간 본성이 짧은 시간 내에 바뀌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요컨대 인간은 90퍼센트는 개인적이고 10퍼센트는 집단적인 호모 듀플렉스(이중적 인간)다. 비유하자면 "90퍼센트는 침팬지, 10퍼센트는 벌"인 셈이다. 우리 안에는 이기적인 유전자도 있지만 수십 수백명을 공동체로 묶는 군집 스위치도 있다. 개인 간 유대감을 형성하고자 하는 벌의 본능이 종교를 발흥시켰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저자는 종교를 이집단성, 부족성, 애국심에서 비롯된 관습이라 설명한다. 종교는 집단을 유지하는 데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문화가 되었고, 종교적인 마음 즉 신앙심도 함께 우리 안에서 진화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 마음 안에 도덕성과 관련된 요소로 '직관적인 도덕적 감정, 코끼리를 시중드는 내면의 기수, 여섯가지 도덕성과 군집 스위치'를 제안한다. 여기에 경험과 학습이 더해져 개인의 도덕 매트릭스가 결정된다. 그가 결론지은 도덕은 이렇다.

 

"도덕적 체계란 가치, 미덕, 규범, 관습, 정체성, 제도, 첨단 기술 등이 진화한 심리 기제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을 말한다. 이 둘은 도덕적 체계로서 함께 작용하여 개인의 이기심을 억제하거나 규제하며, 나아가 협동적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한다." (p.480)

 

그러니 그의 도덕은 "~이 옳다"는 규범적 정의가 아니라 "사람들은 도덕을 ~ 라고 생각한다"는 서술적 정의다. 저자는 공리주의나 의무론처럼 단 하나의 명확한 원칙을 세우는 것은 마치 미각 수용체 중 하나만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절대적으로 옳은 도덕을 제시하기보다는 "개인들의 사적인 삶에 규범적 윤리가 되어줄 최선의 이론이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p.482)"는 결론이 무척 신선하다.

 

진보와 보수의 옳음은 왜 다르며 왜 둘은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가? 진보주의자는 경험에 개방적인 뇌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고, 보수주의자는 불안에 민감한 타입일 가능성이 높다. 정해진 정치 성향을 갖고 태어난다기보다는, 타고난 유전자 조합에 따라 한 쪽 성향의 뇌를 가지고 태어난 후 학습과 경험이 상호작용해 진보인지 보수인지 결정된다고 봐야 한다. 한 번 결정된 성향은 잘 바뀌지 않고, 자신과 다른 견해를 접할 때면 직관적인 거부반응을 먼저 보이게 된다.

 

진보와 보수의 도덕은 어떻게 다른가? 진보의 도덕은 배려와 자유에 초점이 있다. 불평등이나 착취같은 기존 관습을 깨부수고 자유를 추구하며 약자를 보호한다는 서사다. 진보는 보수가 연대 의식이 낮고, 평등과 약자에 관한 민감성이 떨어진다고 비난한다. 반면 보수는 진보가 자신들이 지키려는 공동체의 전통적 가치를 뒤엎고 자유 시장 경제 질서를 흔들며 세금을 낭비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편에 속하게 되면 다른 편의 도덕성을 보지 못함을 인지하고, 다양한 정치 이데올로기에 흩어져 있는 지혜를 모으는 혜안이 필요하다. 대학시절부터 '당연히' 진보임을 자처했던 저자는 보수가 추구하는 도덕성인 충성심, 권위, 고귀함을 진보도 가져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명절에 오랜만에 만난 친지와 정치 이야기로 싸우고 싶은 사람은 없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의 판단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도덕에 진정한 관심을 조심스럽게 표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내가 보기에 도덕심리학은 현명한 이기심의 관점을 적용하면 그 틀을 대체로 이해할 수 있다. 도덕성을 이기심과 다름없는 것으로 보면, 다윈식의 자연선택이 개인 차원에서 작동하여 도덕적 행동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손쉽게 설명할 수 있다. 즉, 유전자는 이기적인데, 이 이기적인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다양한 정신 모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정신 모듈 중 일부는 전략적 이타주의(명실상부한 이타주의나 보편적 이타주의가 아닌)를 실행하게 되어 있다. 우리의 바른 마음은 이렇게 혈연선택에도 영향을 받지만 호혜적 이타주의에도 영향을 받는바, 호혜적 이타주의는 험담과 평판관리를 통해 한층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메시지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도덕성을 논하는 책에서라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이제까지 내가 한 이야기 역시 이 메시지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p.343

 

"우리 인간은 누구든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이다'라고 믿을 수 있다면야 더없이 좋겠지만,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별로 개연성 없는 이야기이다. 그보다는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한 편향적 사랑, 즉 서로에 대한 동질감, 운명 공동체라는 인식, 무임승차자에 대한 억제, 이 세 가지를 통해 강화되는 그 편향적 사랑이, 인간이 이룩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이 아닐까 한다." (p.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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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지적 전투력을 높이는 독학의 기술
야마구치 슈 지음, 김지영 옮김 / 앳워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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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쓴 야마구치 슈의 신간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철학은... 』의 인기에 힘입어 비슷한 제목으로 출간됐나 보다. 독서모임에서 추천받은 철학보다 신간인 독학에 눈이 갔다. 더 배우고 알고 싶은 마음에 책을 뒤적이지만 독서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없다. 그러다 보니 내 독서는 시간을 죽이는 취미일 뿐인가 하는 회의가 들곤 한다. 혼자 읽고 쓰며 공부하는 것이 내 삶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


『독학은... 』에서 저자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구축한 독학의 기술 체계'와 '교양을 지식의 무기로 발휘하는 법'을 소개한다. 그는 학교에서 철학과 미술사를 전공했지만 마케팅, 전략 컨설팅 등 전공과 거리가 먼 직종을 선택해 커리어를 쌓았고 이 과정에서 '지적 전투력'을 높이는 방법을 체득한다. 인문과학과 경영과학의 크로스오버에서 나오는 통찰력이 야마구치 슈의 무기가 되었다. 지금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경영/교육 분야 연구자,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독학은 크게 '전략, 인풋, 추상화 및 구조화, 축적' 네 가지 모듈로 이루어진 시스템이다." (p.6) 각 장에서 네 모듈을 설명하고, 마지막 5장에서는 지적 전투력을 높이기 위한 교양을 배울 11개 장르 99권의 책을 소개한다. 그는 인생에서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높은 투자로 교양을 추천한다. 당장 써먹을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은 뭔가 대단해!'하면서 목적 없이 읽은 교양서들이 훗날 인풋이 되어 무기가 될 거라 한다.


'앎'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사회에 나오면 구식이 된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배워나가야 한다.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는 산업과 기업은 사라져 버린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동 기간은 길어지는데 기업과 산업의 수명은 짧아지고 있다. 정보가 넘쳐나니 이제 정보의 양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어떤 정보를 배제할 것이냐가 관건이 되었다.


독학은 기억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방대한 정보를 다 기억할 수 없을뿐더러 상당 부분은 곧 시대에 뒤떨어진 지식이 된다. 그러니 '뇌의 외부화'가 필요하다. 뇌는 인풋된 지식의 추상화와 구조화에 초점을 맞추고, 정보의 핵심은 외부의 디지털 스토리지에 태그를 달아 저장하여 언제든 필요할 때 꺼내 쓰도록 한다.



* * * * * * *



만약 독학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하루 평균 한 시간이라고 한다면, 일주일에 한 권, 연간 50권 정도의 인풋이 최선일 것이다. 독학의 전략을 생각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1년간 읽을 수 있는 최대치인 책 50권을 어디에 분배할 것인가'를 생각한다는 말과 같다. p.49


'배움의 목표'를 정하라. ... 독학의 목표는 장르가 아니라 테마여야 한다. ... 테마는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논점이다. 예를 들어 "혁신이 일어나는 조직은 어떤 조직일까?", "기독교는 고뇌하는 직장인을 구원할 수 있을까?"와 같은 것들이다. ... 반면 장르란 심리학이나 역사, 문학 등 콘텐츠의 분류 항목을 말한다. pp.50-51


인풋된 내용을 망각하지 않고 정착시키는 효율적인 독서법이 있다. 바로 '관련 분야를 묶어서 읽기'다. 어떤 분야의 책을 한 시기에 몰아서 읽으면 한 권 한 권의 내용이 상호 연관되어 보다 단단히 머릿속에 정착된다. 이때 책과 책 사이에는 메타포(metaphor:은유)의 관계와 메토니미(metonymy:환유)의 관계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지식의 구조화가 한결 쉬워진다. p.98


독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인풋하지 않을 정보를 정하는 것이다. ... 요즘처럼 정보가 넘쳐흐르는 상태에서 시스템의 핵심은 인풋된 정보의 양보다는 그것을 추상화하고 구조화하는 처리 능력에 달려 있다. p.107


독서뿐만 아니라 '사람'도 독학의 미디어다. "사람이 독학의 미디어로서 효율적인 이유는 사람이 가진 고도의 필터링 능력과 문맥 이해력 때문이다. 책을 한 권 통째로 읽는 것보다는 그 책을 깊이 이해한 사람에게 지금 자신에게 중요한 부분만 가르침을 받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다. 이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학습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p.112


'떠오른 질문'을 붙잡아라. "중요한 것은 '응?'이라고 생각했던 의문과 위화감을 확실하게 글로 적어두어 그 순간의 느낌을 잘 살려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p.116


인풋된 지식을 무기로 바꾸려면 추상화와 구조화가 필요하다. 사소한 요소는 버리고 본질적인 메커니즘만 추출하는 것이 추상화다. 추상화는 개별성을 낮추어 "어느 장소, 어느 시대에도 성립되는 명제, 즉 수학에서 말하는 '공리'로 바꾸는 작업이다."(p.126)


... 가설을 다른 분야와 연결 지음으로써 공리로서의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구조화'에 해당한다. ... 독학으로 얻은 지식을 이 같은 '지적 전투력의 향상'에 연결 지을 수 있는지 여부는 그 지식에서 어떤 국면에서의 의사 결정에 관해 의미 있는 시사와 통찰을 끌어낼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p.131


중요한 것은 '상식을 의심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의심해야 할 상식'을 가려내는 선구안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구안을 부여해 주는 것이 바로 풍부한 지적 축적이다. p.150


'추상화'를 할 수 있는 힘을 키우려면

① 얻은 지식은 무엇인가?

② 그 지식의 무엇이 흥미로운가?

③ 그 지식을 다른 분야에 적용한다면, 어떤 시사와 통찰이 있는가?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p.136




책을 읽을 때 밑줄 그을 부분은

① 나중에 참조하게 될 것 같은 흥미로운 '사실'

② 흥미로운 사실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과 '시사'

③ 통찰과 시사에서 얻을 수 있는 '행동'의 지침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p.157




지적 생산 시스템 구축법

초독 ) 맘에 드는 부분에 우선 밑줄을 긋는다.

재독 ) 밑줄을 중심으로 읽어서, 역시 재미있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메모를 붙인다.

삼독 ) 메모를 붙인 부분을 읽고 나중에 참조할 것 같은 부분을 뽑아내서 옮겨 적는다.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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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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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79년 출간된 중편 소설『하얀 성』은 오르한 파묵의 초기 작품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뒷부분에 작가의 '소설 후기'와 역자 후기를 읽으니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됐다. 어떤 과정을 거쳐 구상하고 썼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이 얇아서 골랐고 오르한 파묵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고 읽기를 참 잘 했다. 만약 내용을 알고 읽었으면 덜 재미있었을 것이다. 초반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걸까' 하다가, 중반에는 '이 사람들이 대체 왜 이러나' 하다가, 그 후부터 긴장감이 높아지고 마지막에는 무척 놀라웠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베네치아 젊은 학자 '나'를 태운 배가 오스만 해적에게 납치를 당한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노예가 되어 여기저기 끌려간다. '나'는 의사는 아니었지만 의학 지식이 있고 영민하여 몸을 쓰는 노예를 면하고 시종 같은 노예로 파샤(장군)의 일을 봐주게 된다. 거기서 자신과 모습이 닮은 오스만 사람 '호자'를 만나 호자와 함께 파샤의 불꽃놀이를 성공적으로 준비한다. 호자는 파샤에게 '나'를 자기 노예로 달라고 해서 둘은 함께 살게 된다. 아주 오랫동안.


파룩이라는 사람이 1600년대 책을 발견해서 그 내용을 해석해나가는 방식의 액자 소설이다. 흑사병과, 오스만의 헝가리 · 폴란드 정벌 등 역사적인 사건이 눈에 보일 듯 생생하게 묘사된다. 무엇보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건 파디샤(왕) - 파샤 - 호자 - 나 의 관계 때문이다. 노예와 주인, 신하와 군주 사이, 말 한마디 잘못하면 목이 달아날 수 있는 시대다. '삶과 죽음'이 달린 상하관계에서 오는 팽팽함이 있다.


소설 해설에서는 두 주인공, 즉 나와 호자, 노예와 주인의 정신적 관계에서 긴장감이 유지된다고 쓰여 있다. 노예와 주인은 서양/동양, 베네치아/이스탄불, 이탈리아/오스만, 열등/우월 등의 대립을 이룬다. 하지만 두 남자는 닮았다. 우선 얼굴이 닮았고 호기심과 지식욕이 크고 배움에 열정적이다. 주인은 자기보다 우월해 보이고 뭔가 많이 알고 있는 노예에게 열등감과 동경을 동시에 느낀다. 둘은 서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숨기고 싶던 과거 일까지 서로 나누게 되고 생각도 닮아간다. 그 과정이 따뜻하지는 않다. 노예와 주인 관계였으니까.

주인은 궁금한 게 많다. '왜 나는 나인가', '남들이 저지른 가장 나쁜 짓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몰두하고, '끝까지 가겠다'고 되뇐다. 전장에서 민간인들을 찾아다니며 '네가 저지른 가장 나쁜 짓이 무엇인지' 묻고 다니는 장면은 무척 잔인하고 덧없게 느껴졌다. 이교도의 잘못을 캐고 다녀 봤자 자신들의 잘못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들은 대개 비슷했다. 거짓말한 것, 좀도둑질한 것...


나와 남은 다르지만 다를 바 없다.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낄 이유도 없는 것이다. '왜 나는 나인가'는 고대 철학자들부터 다뤄온 심오한 질문이지만, 결국 "사람들은 서로의 행세를 하면서" 살아간다. 본문에 나오듯, "사람이 누구라는 게 뭐가 중요"한가.

"어쩌면 몰락이란 다른 사람의 우월성을 보고 그들을 닮으려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라가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말이다. 이 책을 정체성에 관한 소설로 보는 건 이런 이유인 듯하다.


나는 '왜 나는 나인가'를 묻는 호자를 보면서 사춘기 소년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쩌면 일생은 내내 사춘기일지도. 주인공이 몇 명 되지 않고, 이야기가 복잡하지 않은 짧은 소설인데도 이것저것 많이 담은 느낌이다. 역사 소설이라 영화로 만들면 볼거리가 많겠다 생각했다. 400년 전 오스만 제국을 엿볼 수 있는 영화가 되겠지.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긴 여운을 남기겠지.



참고로 작가의 말은 이렇다. 어린 시절 아파트 윗 층 한 할머니의 집에서 본 풍경이 『하얀 성』의 바탕이 되었을 거라 했다. 과학, 천문학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주인공들에게 적용시켰다. 두 주인공의 정신적 관계와 긴장감을 소설의 기본 요소로 하고, 여러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쌍둥이-닮은 사람' 테마와, '발견된 필사본 방법'을 적용했다. 작가의 말에서 창작의 고통이 느껴지기보다는, 재미로 이것저것 섞어 쓰며 여러 실험적 구상을 했고, 그 과정에서 쓰는 재미가 있었겠다 싶었다.



* * * * * * *



"호자와 나 사이의 유사성에 대해, 나보다 파샤가 더 초조해하는 것이 날 우쭐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호자는 이 유사성에 대해 절대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유사성은 내게 이상한 용기를 주는 어떤 비밀이었다. 어떤 때는, 단지 이 유사성 때문에 호자가 살아 있는 한 내가 위협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p.67)



"진짜 학문은 그들이 왜 그렇게 바보 같은지를 이해하고, 그들의 머릿속이 왜 그런지를 알아서 그에 따라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p.81)



"우리는 이스탄불 사람들이 어느 날 아침 따스한 침대에서 각기 다른 사람으로 변해 일어나는 것을 상상하곤 했다. 그들은 옷을 어떻게 입을 것인지 모르고, 사원 첨탑이 왜 필요한 것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어쩌면 몰락이란 다른 사람들의 우월성을 보고, 그들을 닮으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pp.165-167)



"(...) 돕피오 성을 수호하기 위해 원정을 왔다는 것을 안 후, 우리는 성을 보았다. 성은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깃발이 걸린 탑에 지는 해의 희미한 붉은 빛이 반영되었다. 그러나 성은 하얀색이었다. 새하얗고 아름다웠다. 어쩐지 나는 이렇게 아름답고, 도달하지 못할 어떤 것은 단지 꿈에서만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p.218)



"사람이 누구라는 게 뭐가 중요합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했던 것과 앞으로 할 것이지요."(p.229)



"사람들이 그 어느 곳에서나 서로 같다는 것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들이 서로의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나고." (pp.231-232)



"그 노인은 "인생의 가장 멋진 부분은 멋진 이야기를 꾸미고, 멋진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그는 주저하면서 가방에서 지도 하나를 꺼냈다. 내가 지금까지 본 것들 중에서도 가장 형편없는 이탈리아 지도였다."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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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마르얀 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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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는 이란에서 태어나 지금은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마르잔 사트라피의 자전적 이야기로 양장판 두꺼운 그래픽 노블이다. 이란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던 1980년 열 살 때부터, 오스트리아 유학을 갔다가 이란으로 돌아오고 1994년 다시 프랑스로 떠나기까지 성장기를 그렸다. 마르잔의 부모님은 진보적이었고 그녀를 이란어와 프랑스어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학교에 보냈다. 자유분방 거침없었던 마르잔은 이란 여성으로서 살아가기 힘들었다. 비종교적이고 개방적인 유럽으로 떠났지만 그녀는 계속 이방인이었다.

 

긴 방황을 마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가족 덕분이었다. 영웅이었던 삼촌, 누구보다 따뜻했던 할머니, 늘 지지해 주신 부모님. 이야기는 재미있고 그림은 강렬하다. 팔레비 왕조의 몰락, 혁명, 시위, 전쟁, 종교와 순교, 이란 여성의 지위와 이슬람 근본주의 등 이란 사회를 엿볼 수 있어 여러모로 의미 있을 책.

 

* * * 참고 * * * 

 

『페르세폴리스 』 의 앞 부분에는 팔레비 왕조의 실정과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 사담 후세인의 이란 침략이 겹쳐 혼란이 거듭되던 시기가 묘사된다. 1921년 이란 사령관 레쟈 샤는 쿠데타를 일으켜 1925년 카자르 왕조를 끝내고 팔레비 왕조 시대를 연다. 영국과 미국이 1941년 그를 퇴위시키고 그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면서 팔레비 왕조는 서방의 석유 이권을 보호하는 친미 정권이 된다. 수상으로 선출된 모사데크가 석유산업을 국유화하지만 미국 CIA 후원을 받은 국왕파 군대가 수상파 군대를 치면서 수상은 연금된다. 국왕은 백색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세속주의, 친서방, 독재 노선을 취하여 국민들의 반발을 산다. 수십 년간 쌓인 사회/경제/종교적 모순으로 마침내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고 팔레비 왕조는 끝이 난다.

 

페르세폴리스 는 BC 559년부터 BC 330년까지 고대 페르시아를 통치한 아케메네스 제국의 수도였다. 현대 이란어로는 '타크테 잠시드(잠시드의 옥좌)'라 불린다. 다리우스 1세가 건설한 도시로 알려져 있고, BC 331년 알렉산더 대왕의 공격으로 폐허가 되어버렸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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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VS 80의 사회 -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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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다른 이들의 기회를 확장하기 위해 약간의 희생을 감수할 의사가 있느냐, 먼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다리를 걷어차고 싶어 하느냐일 것이다. "

『20VS80의 사회』, p.32

 

 

 

리처드 리브스는 세계적인 싱크 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으로 직장이 위치한 미국 워싱턴 D.C 근처 부자 동네에 산다. 그의 지인들은 대개 기자, 학자, 박사, 관료 등 많이 배우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20VS80의 사회』에서 미국의 불평등과 계층 이동성을 논하며 그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자신을 비롯한 상위 20퍼센트의 중상류층이 지금까지 누려온 특권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미국 사회가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약간 이기심을 희생해야” 하며, “우리가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p.228-229)면서 '우리'를 강조하고 자기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불평등에 관한 예전 주장들이 주로 상위 1퍼센트와 나머지 99퍼센트의 격차에 주목했다면, 이 책은 상위 20퍼센트와 나머지 80퍼센트 사이의 ‘유리바닥’에 주목한다. 상위 20퍼센트를 위한 유리바닥은 그들이 아래 계급으로 떨어지지 않게 해주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 나머지 80퍼센트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위 계급으로 올라갈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물론, 두 집단의 격차를 더 넓히고 있다.

 

 

유리바닥 위의 20퍼센트

 

 

월스트리트의 슈퍼리치 같은 1퍼센트뿐만 아니라 20퍼센트도 불평등의 원인이라니, 의아해할지 모르겠다. 특히 자신이 20퍼센트의 중상류층이라면 말이다. ‘나는 열심히 공부해 능력을 인정받았고 사회에서 성공했다. 지금 내가 얻은 부와 지위는 내 능력 덕분’이라 생각하는 중상류층에게, 저자는 ‘결코 당신 능력 덕분이 아니다. 20퍼센트의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미국은 능력이 있다면 누구나 성공이 가능한 능력 본위 사회지만, 그 능력이 계급에 따라 불평등하게 육성되어 결국 학력과 직업이 세습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면밀한 연구를 통해 보여준다.

 

 

인적자원을 개발할 기회, 즉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는 경제적 여유와 시간이 충분한 중상류층에게 더 많이 주어진다. 중상류층 부모는 열과 성을 다해 자녀를 뒷바라지한다. 자녀가 아래 계급으로 추락할까 봐, 즉 ‘하향 이동’할까 두려워 미리부터 유리 바닥을 까는 것이다. 덕분에 아이들은 질 높은 보육을 받고. 여행, 책, 가정교사 등 풍성한 경험을 하고, 부유한 동네에서 비슷한 환경의 친구를 사귀고, 학부는 물론 석박사 코스에 진학해 좋은 직장을 얻는다.

 

 

게다가 중상류층은 ‘기회 사재기’에도 몰두하여 자녀에게 도움을 주는 한편 다른 아이들의 기회를 박탈한다. 저자는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 불공정한 대학 입학 절차, 그리고 인턴 기회의 불공정한 분배(p.146)’을 기회 사재기의 예로 든다. 집값이 비싼 ‘좋은’ 동네에 저가 주택을 공급하지 못하게 규제하면 그 동네에는 부유층들만 모여 살게 된다. (한국인으로서 무척 낯선) 동문 자녀 우대 입학이나 기부금 입학 제도 덕분에 부유한 학생들은 더 쉽게 대학에 간다. 대학이 학생을 고객으로 생각하고 가려 뽑는 현실에서 장학금도 부유한 학생들에게 더 많이 돌아간다. 직업을 갖기 전 거치는 인턴 자리를 구할 때도 중상류층 자녀들은 인맥과 연줄이라는 혜택을 누린다. 부모라는 이유로 다른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아 자녀에게 제공하는 것, 과연 정당한가?

 

 

잘 태어난 덕분에 온갖 특권을 얻은 중상류층은 학계, 정재계, 언론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여 기득권을 공고히 한다. 정치인들은 거대 권력 집단으로 등장한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정작 도움이 필요한 소외된 이들보다 중상류층을 더 배려하는 교육, 주거, 세제 정책을 낸다. 중상류층은 기꺼이 그쪽에 투표하여 불평등을 영속화시킨다. 그들은 다수 대중과 같은 배를 타고 있다고 믿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만의 배를 띄워 나머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20퍼센트의 성찰이 필요하

 

 

영국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2012년 미국에 왔고 ‘기회', 즉 아메리칸 드림에 끌려서 2016년 미국 시민이 되었다. 그는 영국 상류 계급의 우월 의식과 계급 구분이 싫어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놀랍게도 '계급 없는 사회'를 표방하는 미국에 오히려 영국보다도 더 경직된 상부 계급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미국 노동시장의 일반 원칙인 능력 본위와 경쟁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경쟁에 대비할 수 있는 기회가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문에서 다룬 문제점을 해결할 일곱 가지 조치는 다음과 같다.

 

1. 의도치 않은 임신을 줄이기

2. 가정 방문 복지 프로그램으로 양육 격차 줄이기, 실제 미국에서 시행 중으로 효과가 입증되었다고 한다.

3. 훌륭한 교사들이 가난한 학교에서 일할 의욕이 생기도록 교사 인센티브 제도 등 교사 임금 체계 개선하기, 그리고 대학 학비 조달 기회를 평등하게 만들기

4. 인적 자본 개발 기회를 평등하게 만들기, 쉽게 말해 누구에게나 교육 기회를 평등하게 주는 것이다.

5. 택지 규제를 완화하여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사는 주거지 만들기

6. 고등 교육 기회를 넓히고 이질적인 다양한 학생들이 섞인 학교 만들기

7. 대학 입학 시 동문 자녀 우대 폐지와 인턴제 폐지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이런 현실을 인지하는 중상류층의 자각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불평등을 완화시킬 정책 실행 비용 역시 중상류층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 정책 아이디어는 다양하게 나와 있어 예산이 충분히 확보된다면 도입할 수 있다고 한다. 20퍼센트에게 미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면, 독자는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일 것인가.

 

 

계층의 이동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평등을 약속하는, 그리고 개인이 능력을 펼칠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가 지속 가능한 사회다. ‘장벽의 제약을 벗어나, 남녀 모두가 인간 개인으로서 온전하게 성장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꿈(p.33)’은 미국의 이상인 동시에 한국의 이상이기도 하다. 나는 이상을 공유할 의지가 있는지,  다른 이들과 기회를 나눌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불평등에서 비롯된 좌절이 분노가 되는 사회를 바라지 않는다면 양심을 깨우고 성찰해야 할 때다.

 

 

* * * * * * * * * * *

 

"중상류층은 위를 쳐다보며 분노하고 부러워 하기보다 계속해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 자신이 어떤 위치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P.21)."

 

 

"사회의 중상류층, 즉 사회를 관리하고 분석하고 논평하고 방송하고 지배하는 사람들이 전 계층 출신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사람들로 구성하는 건 도덕적인 이상이 아니라 사회의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다. (...) 번드르르한 부잣집 자제 중에 쓸모없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p.108)"

 

 

"다음과 같은 악순환의 고리가 작동하고 있다.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은 중상류층에서 떨어질 경우 더 깊게 추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중상류층 부모는 자녀가 떨어지지 않도록 유리 바닥을 깔아 주고자 할 동기가 커지며,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원도 있다. 그래서 기회 사재기를 포함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서 자녀의 하향 이동 위험을 줄여 주려고 한다. 그들의 노력이 성공적일 경우, 위쪽이 더 경쟁적인 계층 구조가 생겨나게 된다. 그러면 중상류층은 자녀가 계층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어 재분배 정책에 돈을 지불할 의향이 줄어든다. 그러면 불평등이 더 심화된다.

(p.112-113)"

 

 

"모든 이가 더 간소한 조세 제도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기존에 자신이 누렸던 세제 혜택은 유지하고 싶어 한다. 또 부유한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자는 의견에는 다들 찬성하지만, 아무도 자신이 부유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간 10만 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 중 절반은 연 소득이 50만 달러는 되어야 부유층이라고 생각한다.(p.222)"

 

 

"(...) 보수주의자들은, 문제는 가난한 사람이나 이민자라며 우리를 안심시킨다. 진보주의자들은, 슈퍼 리치가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 구도에서는 우리의 정치 성향이 어느 쪽이든 우리(중상류층)는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안심시키는 전략은 한계에 봉착했다. (...) 다수 대중이 분투하는 동안 중상류층은 번영했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진정한 변화를 가능케 할 정치 환경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단계다. (pp.229-230)"

 

 

마침 이낙연 국무총리님 추천사가 떠서 링크:

https://twitter.com/nylee21/status/1172329027396194305?s=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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