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라] 서평단 알림
이 영화를 보라 - 인문학과 영화, 그 어울림과 맞섬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서 영화관 앞을 지나가면 늘 튀어나오는 질문 중 하나일것이다. 더욱이 매스컴적으로도 화제가 되는 작품이라면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 이들이라도 분명히 한 번쯤은 화제에 올려놓은 적이 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저자 <고미숙>과 같이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다. 흥행하는 영화는 물론이고, 예술성으로 가치가 높은 영화마저 관심외의 대상이며,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란, 데이트 코스중의 하나라고 여기고 있었다. 영화 외에도 재미있는 것들은 정말로 많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더욱이, 영화를 단순히 오락거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가치를 논하고, 의미를 찾고, 현실 사회의 반영이라는 등의 서두가 오르기 시작하면 절로 손을 휘휘 내젓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예술의 가치와 영화의 현실반영에 대해서 생각한 지 약 1~2년 밖에 되지 않은 ㅡ 그것도 총 스무편이 넘질 않는다 ㅡ나로서는 영화는 아직까지 어렵기만하고 오락거리 이상으로 다가가기 힘들다.

 참으로 아이러니한건, 이런 내가 영화에 대해서 공부해야하는 영상학과 학생이었다는 것. 그리고 감독 이름ㅡ심지어 태극기 휘날리며라던지 괴물을 만든 감독 이름조차 모르는 내가ㅡ이라곤 고작 반지의 제왕의 감독 피터 잭슨밖에 모르는데, 얼마전 꿈에서 하재봉 교수님이 쿠엔틴 타란티노에 대해서 열강을 펼치시더라. 사실 난 쿠엔틴 타란티노가 누군지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그의 이름, 그에 대한 지식이 내 뇌에 저장 되어있었던 건지 나의 꿈 속은 그에 대한 무한한 지식을 펼쳐놓았다. 물론 일어나서는 감독 이름밖에 기억나지 않았는데, 세상에! 정말로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감독이 있었다니! 우연의 일치였을까, 알라딘에서 <이 영화를 보라!>라는 책의 서평단을 모집하더라. 물론, 서평단에 내 닉네임이 적혀있을때, 어이쿠, 하나님! 어이쿠, 봉교수님 감사합니다! 하고 마음속으로 넙죽 절까지 했다.

 

 나의 영화에 대한 지식은 아주 낮다. 플롯, 영상미-학창시절에 난 영상미가 늘 뒤떨어진다고 지적을 받곤 했었다 ㅡ, 복선 등등에 대한 부분을 영화에서 찾아내는 게 어찌나 어렵던지 결국엔 재미와 재미없었다로 분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재미를 가름하는 기준도 지극히 사차원적이고 개인적이라 보편성을 갖추지도 못한다. 서두가 길었는데, 다시 말하자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다고 하는 편이 맞다.

 책에서는 총 6 편의 영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내가 실제로 본 영화는 3편이고 나머지 3편은 보진 않았지만 마치 내가 실제로 본 듯한 착각을 일으키고 있을 정도로 많이 접해본 영화들이다.

 고미숙이 써 내려가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어렵지 않다. 책의 문장은 물론이요, 구성, 그리고 영화를 보는 시각마저 쉽게 풀어놓고 있다. 우리 일상에서 접할 수 있었던 깨달음이라던지, 나도 한번쯤은 생각했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철학과 사회 반영이 숨겨져 있다. 저자는 요즘처럼 <놀이>나 <재미>가 위주가 되어야 읽히는 세상을 의식한 듯 그의 문체는 영화에 한 걸음 더 다가가려는 두꺼운 문을 기꺼이 열어주었고, "아! 이런 뜻이 있었구나!"라는 오묘한 깨달음을 주고 있다.

 사실 영화의 선정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보인다. 알려진 영화이고, 다들 알고 있는 영화이고 혹은 작가의 주관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는 영화들이다. 하지만 한번쯤은 매스컴에 오르락내리락 했던 작품들이 아닌가.

 우리가 단순히 영화를 오락 이상으로 취급하게 되면 전문성을 갖추게 된다. 사람들이 체감하기에 전문성이라는 것은 깊고 어렵다. 하지만 저자는 영화속에 숨겨진 정치, 경제, 시사들을 거론하면서 우리가 어렵다고 느끼기 전에 하나의 트릭을 펼쳐놓는다. 바로, 보물찾기 혹은,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영화 속에 숨어있는 것들을 쏙쏙 찾아낸다. 우리는 저자가 찾아내는 재미에 빠져 독자들 또한 그 속에 어느덧 동조하여 참여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저자가 외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세상에 어려운 것은 하나도 없다. 단지,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접근 방식일 뿐이다. 라고.

 사람은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생물, 동물, 그리고 물건과 숨을 쉬는 공기에도 사람들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 속에서 하루에 수천편씩 쏟아지는 영화는 오죽할까? 영화는 우리 생활 속 각각의 의미를 부여하고, 부유하고 있는 자아을 찾을 수 있는 거울이 되고 이루지 못할 것을 이룰 수 있는 몽상속의 바탕이다.

 하나의 오락으로 다가온 영화를 순간적인 스크린의 즐거움에서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 사회의 반영이고 삶의 반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우리의 뇌가 받아들이는 영역은 무한해지고, 앎의 즐거움을 하나 더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작가 말하기를-실제로 고미숙이 써 놓진 않았지만-, 의미같은 거 파헤치든 파헤치지 않든 상관은 없다. 하지만, 이왕 우리가 부여한 의미들이라면, 우리가 보고 있는 우리와 가장 접해 있는 것들이라면 여유로울 때 알아놓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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