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
이은홍 지음 / 사회평론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술꾼을 만나다

장진영 선배를 찾아가 밤새 술을 먹고 아침에 논의 피를 뽑았던 5월 어느날 형의 책장에서 묘한 제목의 만화책을 만났다. 이름하여 '술꾼'!
소주가 주인공인 만화책, 누가 그렸는지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 내용부터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도 술이라면 퍼지게 마셔왔지 않나. 별보면서 술먹겠다고 학교안 가건물 지붕위에 올라갔다가 발라당 떨어져 보기도 했고 다리 밑에 불피워서 마시는 것도 일상이었으며, 대낮에 친구와 소주 한병씩 들고 학교 앞 강가에서 술마시다가 서럽게 울면서 죽겠다고 물에 들어가자는 주정을 부리기도 했으니. 주 6일은 새벽까지 술을 마셨던 것 같은데 나도 술꾼이라는 책 읽을 자격이 있다 싶었다.

읽다 보니 나는 아직 멀었다. 술을 마실 줄 알고 잘 마시지만 취하는 모습을 보이기 민망해 하는 민주(憫酒)의 경지 밖에 가지 못한 것을.

술과 인생

김창남 교수의 발제문처럼 '그의 모습이자 나의 모습이며 동시대를 함께 겪어온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다'가 거짓말이 아니다.

농사짓는 어머니 곁의 광주리 속의 소주병과 저멀리 아이들의 대화 '니 어제 너그 어무이한테 와 맞았노?', '커서 뭐 될래카길래 엄마처럼 될끼다 캤더니 다짜고짜 안패나', 다시 어머니의 표정을 보게 된다.

그뿐이랴, 영업전선에서 룸살롱에 돈까지 갖다 바치며 비위를 맞추어 상품을 팔아야 하는 우리의 샐러리맨들은 새벽을 맞는 포창마차에서 여전히 '노동의 새벽'을 부른다.

작가의 개인담이 물씬 묻어나는 음주이력서 1편~9편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여전히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농촌에서 친구들과 함께 술과의 첫만남을 가진 후, 서울에 와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술에 쩔어 살았고, 그 이후 운동하는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철창살이도 하게 되고, 술친구로 만난 후배와 결혼하게 되는 그 숱한 술과의 관계들. (술꾼 부부가 탄생하는 과정은 너무 재미있어서 몇번이나 다시 보게 된다.) 특히 그가 감옥에 있었을 때 자체 제조한 막걸리 한잔으로 존경하는 오윤작가에게 먼저 올 리고 전태일 열사를 비롯한 열사영령들, 멀리 있을 동료 친구, 가족과 함께 마셨던 '가장 오랫동안 마신 한잔의 술'은 그림 한컷 한컷에 가슴이 아련해졌다.

한잔 술을 건네는 마음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우리네 삶의 모습, 상처를 어루만지는 과정임을 확인한다. 일주일에 몇일은 꼭 술에 쓰러져서 '쏘자'를 외치는게 되는 우리를 둘러싼 근본적인 모순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 애환이 별 차이가 있겠나. 술집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는 것이겠지.

한잔 하시죠?

마지막 페이지의 조그만 네모상자안에 소주잔에 조용히 입술을 데고 있는 그림 밑으로 '한잔하시죠'라고 술을 권하고 있다. 이런 끈질긴 사람이 있나 싶어서 절로 웃음이 났다. 소주를 권하는 작가의 끈질긴 술얘기에 어느새 근래에 잘 마시지 않는 소주 한잔과 같이 마실 사람 없나 생각하고 있는나를 발견했다. 앞으로 만들어진 '술을 담그는 사람들' 지정 도서로 정하자고 강력 주장해야겠다. 음..책장위에 나란히 놓인 담궈논 술에 자꾸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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