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일상이 로맨스겠어
도상희 지음 / 뜻밖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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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움의 에세이 브랜드 뜻밖의 새로운 이야기 <혼자서도 일상이 로맨스겠어> 를 보는 순간 드는 생각은 이 책의 제목이 긍정형인가 의문형인가 하는 점이다. 의문형이면 로맨스일까 궁금해하는 삶일테고, 긍정형이면 혼자 사는 "혼족 Life"를 즐기는 사람이 아닐까 짐작해 봤는데 결국 옆에 있는 사람들도 타인에 불과하고 인생은 혼자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책을 다 읽고난 후 짧막하게나마 내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려보았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도 마음 속 한 공간이 외로움이라는 녀석이 자리잡고 있다. 연애를 해도,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아도 나는 외롭지 않아 행복해 라는 감정을 느끼고 살다가도 갑자기 어느 순간, 어떤 느낌이 들 때 외로움이라는 녀석이 몽글몽글 올라와 가끔 나를 낯선 곳에 버려놓은 것 같은 혼자가 되게 만들어 버리고는 한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사람들 솎에 섞여 있을 때를 구분하지 않고 불쑥 불쑥 모두가 타인이고 나는 혼자인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고독함을 느끼고는 한다, 또 그만큼 친절을 베풀어 주는 사람에게 금사빠가 되어 쉽게 사랑에 빠지거나 사람이 아니라도 무언가에 금사빠가 되어 사랑하고 탐하려고 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 같다. 물론 그 과정을 해탈해버린 사람들은 혼자서 사는 인생의 재미를 찾아 혼자 하는 것들을 즐기고, 낯설어하지 않는 오히려 그 인생을 추구하는 라이프를 즐기게 된다. 나는 어디에 속해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작가는 조금 아둥바둥 혼란스러워 하는 중간에 있는 입장이 아닐까 싶었다.


스스로 지닐 수 없는 것들, 지닐 수 있지만 어려운 것, 가졌다 놓친 것들을 보면 쉬이 반하는 재능이있는 '금사빠' 작가는 스스로의 재능을 나쁘다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나쁠 것이 없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존재에 사랑에 빠지고 그것을 보는 것이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오히려 나쁜 행동을 하지 않고 이 것을 원동력으로 내일을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다면, 작가의 목적처럼 내일도 모레도 반하고, 반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인생이 훨씬 보기 좋은 성숙한 어른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뭐가 그렇게 어려우세요? 좋으면 좋은 거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 사랑하면 사랑한다....

마음을 드러내며 살아요 우리"


자기 자신과 잘 노는 사람, 혼자서도 일상이 로맨스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대단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솔직하고 다정한 한 사람의 세계가 담겨 있습니다. 감정을 지워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못된 세상에서


그래도 우리, 무뎌지지 말아요, 말을 건네는 것 같아요, 좀 여리고 예민하면 어때요. 좋은 것 앞에서 맘껏 감탄하고, 아픈 것 앞에서 실컷 울고, 분노할 일 앞에서 크게 소리치며 삽시다. 그것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우리의 삶을 더 재밌게 만들 테니까요.


오해하면 안된다. 금사빠라고 문어발처럼 연애를 하며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에디터의 이야기처럼 이 책은 스스로와도 잘 노는 사람, 그러면서 세상과 사랑에 빠지고자 하는 사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기에 외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타인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일기처럼 적어놓은 에세이라 공감하는 부분도, 공감할 수 없는 부분, 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혼자라는 것에 외로워 우는 것 보다 어떤 것에 몰입해 집중하고 스쳐가는 인연에 연연하지 않으며 살아가려 노력하는 것 자체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로써 배우고 싶은 인생이기도 했다. 특히 사람이 떠나갈까 무엇이라도 하나 더 잘해주고, 내 것을 더 주려고 하는 삶보다 책 속의 삶이 더 멋져보이는 건 내가 감정을 잘못 소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인 것일까?


'금사빠'라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작가 역시 처음부터 외로움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줄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대학교 1학년 때엔 텅 빈 자취방에서 '차라리 귀신이라도 나와서 나랑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사람을 만나고 돌아와 혼자가 되었을 때 찾아오는 공허함은 책을 통해 문장을 이불 삼아 마음을 달래며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 안에 쌓인 문장을 일기로 쓰기 시작했고, 책이 되었다. 타인에게 공감받는 글이 될 수 있었던 건 외로움에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이 세상에서 똑같은 마음을 안고 있는 글을 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글로 위안 받고, 글을 써서 타인을 위로하게 되었고, 타인을 위로하므로써 글쓰기라는 것이 불안한 생에서 완전해지는 일이 되었다.


완전해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완전해지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과 완저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고 작가는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다. 나도 글에 위안을 받기만 하지말고 누군가를 위안할 줄 알고 타인과 감정을 교류하려 했다면 어땠을까?


<혼자서도 일상이 로맨스겠어>는 오론한 혼자, 습관적 짝사랑, 아등바등 사무실로 나눠 일기로 쓴 글들이 짧막짧막하게 담겨 한 권의 에세이를 완성했다. 일상이 로맨스야는 그 중 짧은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 작가는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을 기다리며 혼자서 사는 삶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로맨틱한 일? 특별한 거? 그런 거 필요 없어.

상희씨는 내가 보니까 어디 멀리 안 가도,

누구랑 연애 안 해도 혼자서 일상이 로맨스겠어.


작가가 라디오 인턴 피디로 일을 끝내던 날 디제이 A가 작가에게 한 말이다. 지레짐작 하고 던진 말에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스스로 세상과 쉽게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로 들려 고마웠다고 한다. 매일매일 꽃을 선물 받은 사람처럼 설레며 살아야지 생각할 수 있었다니까, 쉽게 잊혀지지 않는 말은 책의 제목이 되었고, 작가의 인생의 모토가 되었다. 일상이 로맨스인 기분은 무엇일까? 무엇을 하면 일상이 로맨스처럼 달콤할까 싶지만 로맨스가 항상 달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빠져 시간을 투자하고 사랑하는 책을 읽고, 그 것을 수집하는게 타인과의 감정을 나누는 것처럼 싸우지 않아도 되고 사랑만 할 수 있어 좋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외롭다 싶은건 어쩔 수 없이 사람이 가지는 마음인 것일까


아니, 경외했다. 그러니 나는 언제나 ''이었다. 그이 앞에선 기가 죽었다.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펼쳐 보일 수가 없었다. 편하게 웃고 떠들고 농담할 수 없었다. 눈빛만 봐도 얼어붙었고 입을 열기 위해선 수없이 계산 해야만 했다. 짝사랑을 하면 누구라도 작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일까, 내 자존심이 낮았던 탓일까. 다른 사람들도 홀로 마음에 담은 이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볼 때 자신이 자그맣게 느껴지는지.


어떤 소설에서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신분차이로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사랑하던 남자의 지인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누군가는 물었다. 그렇게 애틋하던 사람과 헤어지고 어떻게 다른사람과 헤어질 수 있냐고, 그랬더니 여자가 대답했다.


신분차이로 헤어졌던 사람은 사랑함에 있어서 자신이 갑이었기 때문에 을이었던 그에게 다시 자리로 돌아가 더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고, 효도하라 말할 수 있었고, 지금 사람과는 자신이 을이라 갑의 결정에 끌려다니게 된다고...


여기서 갑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좀 더 사랑하는 쪽이 이끌고, 때로는 포기할 줄 아는 것이다.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는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고, 을은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둘 모두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서로가 서로를 애틋하게 사랑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사랑의 크기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이 소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너무 애틋하게 사랑하는게 보여서 작품을 읽는 내내 사랑에 갑과 을이 왜 필요하냐고, 사랑하는데 왜 헤어지냐 말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참고로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조선시대 였고, 신분차이가 너무 컸던 작품으로 애정하는 로맨스소설 중 하나이다.)


사랑함에 있어 갑과 을이 무엇이냐 싶지만 이왕이면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갑이 되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이끌고 행복하게 사는 삶, 외롭지 않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서는 갑과 을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평등하게 어느 떄는 한 쪽이 져주고, 또 어느 날에는 반대가 져주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그래야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은 연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랑에 있어서는 작가와 나의 생각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혼자서도 일상이 로맨스겠어>는 혼자라는 삶을 평생 살라는 것이 아니다. 그 것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혼자 보내는 시간을 너무 외로워 하지말고 무언가를 사랑하고 집중하며 어른이 되는 삶을 살아가자는 것을 이야기하는 에세이이다. 외로운 날도 있고, 사랑에 실패하는 날도 있겠지만 그 길의 끝에 가장 사랑해야하는 존재도 ''이고 타인을 만나도 ''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외로움이 1/n 된다는 것은 아니다.


항상 나는 누군가를 돕고, 누군가와 함께하면서 외로움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외로움은 결국 '' 자신이 축소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이제는 알았다.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와 외로움에 눈물 흘리고, 더 외로워 하는 것보다 옆에 있는 사람에 집중하고, 함께하는 반려동물을 사랑하고, 지금 읽는 책과 내가 하는 공부를 통해 외로움을 다독여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꾸우미'를 사랑하고, ''에 미쳐있고, 다양한 '공부'를 하는 것을 사랑한다. 이 것만으로도 나의 24시간은 외로울 틈새 없이 바쁘다. 여기에 블로그 까지

 

물론 지금은 24살의 나 처럼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다 하며 살 수 없는 몸이지만 이 것마저도 수긍하고 받아들이며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어른이 되려고 하면 동반자처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축소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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