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책을 폈는데, 어느새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에 불시착해 있었다. 곤두박질치듯 도착한 이곳은 온갖 광고와 냉전시대 영화로 버무려진 혼란의 장소였다. 공산주의자에 대한 혐오와 공포로 얼룩진 인물, 허먼 이브스는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렬한 패션의 노인을 연상케하는 존재다. 집을 온갖 무기와 식량을 갖춘 안전구역으로 만든 허먼은 확증편향을 반복하는 발언을 계속하는데, 묘사의 디테일 덕분에 소름돕게 진짜같다. 장르는 리얼리티를 살린 블랙코미디인가? 싶다가 갑자기 SF가 된다. 그냥 SF도 아니고 괴수물 SF다. 이 정신없는 세계는 알고보니 거대 괴수물을 섭렵한 끝에 미국의 고질라 리메이크 까지 사랑하게 된 어느 오타쿠의 뇌속이었다. 이 뇌는 굳이 말하자면 길예르모 델토로 보다는 할란 엘리슨을 닮았다. 환상성이 짙어지는 만큼 현실과 더 닮아가며 갈수록 슬퍼진다는 점이 그렇다. 대담한 이야기 진행과 격렬한 감정의 흐름이 선명한 묘사와 만나 강렬한 이미지를 구축한다. 작가의 글솜씨가 능수능란하니 이런 범상치 않은 결과값이 나온다. 거기에 한 스푼의 유머도 끼얹어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독자를 특이한 현장에 데려다놓고 가이드 없이 탐험하게 하는데, 불친절하지만 짜릿하다. 놀이기구라도 타는 듯한 독서 경험은 희소하니 표지를 넘겨 표제작인 <공산주의자가 온다!>를 비롯한 여러 단편들을 신나게 즐겨보자.** 출판사 도서협찬을 받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