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열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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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사랑에 대한 추상은 언제나 실패한다.
(혹시나 모를 스포일러가 염려되오니, 영화를 조만간 보실 분들께서는 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첫사랑 열전
 
박범훈 감독의 영화 첫사랑 열전은 서로 다른 세 가지의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으로 묶인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이다. 이 세 개의 짧은 영화들은 각기 자신만의 독특한 내러티브를 갖고서 첫사랑에 대한 추상을 구현한다. 첫 작품 <종이학>의 경우 남성이 품는 첫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시도한 작품이다. 순수한 첫사랑이 결국 실패할 때 우리들은 그 이유를 상대방에 대한 허물에서부터 찾기보다 외부적인 데서 찾게 된다. (보통 나이가 좀 더 들면 실패의 이유를 상대방에게서, 그리고 좀 더 나이를 먹으면 실패의 이유를 자신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순수하게 들끓는 첫사랑이 실패로 돌아가게 될 때 이 젊은 20대들은 우리의 사랑을 그냥 이루어지게 해달라며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다).
 
따라서 첫사랑의 실패에 대한 고전적인 작품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두 주인공은 극진히도 사랑했지만 결국 ‘원수의 딸’을 사랑한 객관적인 정황으로 인해 이 둘의 사랑은 실패하고 만다. 실패한 첫사랑에 대한 복원을 혁수의 입장에서 재현코자 노력한 작품 <종이학>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구도를 답습하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당연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처럼 <종이학>에서의 사랑도 결국 실패하며 바뀐 것은 전혀 없는 가운데서 영화는 끝나고 만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점은 분명하다. 그 어떤 서정으로 덧칠한 끈적한 사랑의 기억이라도, 그것이 외사랑이자 첫사랑이라면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마음,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사랑의 매개체인 종이학에 담아 자신의 정성을 구태여 꾸깃거릴지라도, 종이학은 종이학일 따름이며 부채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오히려 종이돈일 뿐이다.
 
<종이학>을 보면 내내 아쉬웠던 점은, OST의 어색함 – JK 김동욱과 같은 개성있는 가수가 30분도 안 되는 영화에 OST로 등장하게 되면, 오히려 이 음악이 영화를 장악해버리는 효과를 낳는다. 16부작이 넘어가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각자에게 배치되는 테마음악과 같은 기법이 단편에 등장하게 되었을 때 사뭇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또한 진부한 조폭 소재 – 비루한 남성의 처지를 대변하고자 할 때 우리는 얼마나 손쉽게 이 소재에 손을 대고 마는가. 영화가 실패한 사랑에 대한 추상을 얘기하고자 할 때 그 결말은 언제나 실패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겠지만 (그리고 그것이 더욱 진실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질 예술적 성취마저 실패해서는 안 될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이청아에 대한 과도한 기대 – 불안한 마음으로 혁수를 바라볼 때의 서연(이청아 분)의 눈빛 연기는 너무도 일품이었지만, 그 장면을 위해서 희생된 억지스러운 전개들을 생각하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짧은 시간 안에 이 판타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너무도 억지스러운 도약을 시도하고자 하는 점들이 계속 눈에 띄어서 영화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두 번째 작품은 류현경 배우가 열연한 <한번만, 다음에> 라는 작품으로 전작이 드라마의 문법을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노력한 작품이라면, 오히려 이 작품은 코메디에 가깝다. 그것도 매우 실험적인 기법과 소재들을 대동한 작품이라서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이야말로 <실패한 사랑에 대한 추상은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논의를 아주 훌륭하게, 우리의 상상력을 마음껏 조롱하며 제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처음에, 첫사랑들이 겪게 되는 매우 흔한 소재 (첫경험)로 시작하게 된다. 이때까지는 이 영화가 평범하다. 하지만 곧 이어서 우리의 상상력과 익숙함을 배반하는 전개가 계속 연이어 나오게 된다. 이를테면 무려 3-4분이 넘는 long take로 술집에서의 대화를 담는 장면에서 계속하여 남/녀가 바뀌게 되는 구도, 그리고 그 속에서 빚어지는 순간적인 오해들이 관객을 헷갈리게 하면서 동시에 즐겁게 만드는 것인데, 결국 주인공들은 모종의 이유로 인해 자신의 사랑을 완결짓지 못한 채 (과연 그것이 완결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더라면 더욱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결별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 사랑이 다시 시작될 무렵 용식은 자신의 첫사랑이 완전히 복원 되었음에 기뻐한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진실은, 이 사랑은 이제 이전의 사랑과 완전히 질적으로 다른 사랑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여, 이 사랑은 복원된 것이 아니다. 실로 첫사랑에 대한 복원은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쾌하게 그려내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한번만 다음에>의 경우 반전이 강한 영화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코멘트를 남기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소소한 불만이 하나 있다면 촬영에 있어서 무슨 이유로 그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핸드헬드 촬영이 필요 이상으로 자주 나온 것 같다는 점이다. 특히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 된 long-take scene의 다수 등장에서 핸드헬드 촬영이 자주 대동되었는데, 아마도 ‘술 취한 상태에서의 몽롱함 – 그리고 그것이 종내에 선사할 반전효과’ 등을 노린 것이라 생각되었지만 오히려 이 영화가 줄 긴장감을 이런 기법만으로 성취하려고 한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보는 동안 긴장이 되기 보다 오히려 어지럽고 답답했다.

 
 
마지막 작품인 <설렘>의 경우 가장 완성도가 높은 수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하는 두 명의 여인이 있다. 이 영화는 문학에서 자주 재현된 서사적 자아의 <떠남 – 모험 – 귀환>의 원운동을 충실하게 묘사하는 작품인데, 재미있는 점은 이 모험의 주인공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서사의 원형으로 우리는 일리아드에서 나온 오디세우스의 모험과 이것을 현대적인 허무함으로 잘 표현해낸 무진기행 등을 떠올릴 수 있으며 이들 작품에서의 모험가는 언제나 남성이었다. 이러한 전형성에서 벗어난 작품을 은희경과 같은 작가가 제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이를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을 선뜻 떠올리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두 여성은 자신의 첫사랑을 가장 잘 떠올릴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영화가 세 편의 연작을 통해서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이 첫사랑의 편린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남아돌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면, 아마도 그것을 하기 가장 적절한 장소는 여행지가 될 것이다. 수희는 뜻하지 않게 자신의 첫사랑이 어떻게 상실되었는가를 여행지에서 알게 된다. <한번만 다음에>에서 교살당한 첫사랑이 그 비극성을 블랙 코메디로 승화시켰다면 <설렘>에서는 미묘한 긴장감을 갖고서 끝까지 지속된다고 볼 수 있다.
 
그 미묘한 긴장감을 지속시키는 힘은 아마도 장소에의 집착일 것이다. 시행착오를 허락하지 않는 거창한 처음에의 기대는 이 사랑의 사소한 부분들에게까지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내가 당신을 알기 전, 당신이 한 공간을 추억하며 아련한 눈빛으로 빠져들 때 우리는 그 시간에 내가 존재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며, 그 공간을 탐하게 된다. 그리고 당신을 잃고 난 후 서성거려보는 그 곳에서 당신의 상실을 더욱 처절하게 깨닫는 것이다. 수희는 첫사랑이 머물렀던 민박집의 어느 한 방에 머무르고 싶어한다. 자신의 첫사랑이 그토록 자주 말했던 그 방에서 결혼을 앞두고 그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정리하고 싶은 것. 하지만, 먼저 온 혜정으로 인해 그 방에서 머물 수 없게 된다. 혜정은 남편을 잃고서 남편이 죽기 전 오고 싶어 했던 장소로 여행을 온 미망인이다. 혜정과의 대화를 통해 수희는 혜정과 사별한 남편이 바로 자신의 첫사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공간에의 집착이 묘한 질투심과 결합할 때 그녀는 더욱 과감해진다. 결국 혜정이 방을 비운 사이 그녀의 방에 몰래 들어가 첫사랑의 유골 단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상실이 준 고통을 잊기 위해 찾아온 여행에서 두 여인은 더 큰 상실감을 얻게 되며 영화는 마감하게 된다. 이러한 결말은 매우 자연스러우며 첫사랑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첫사랑은 쉬이 잊혀지지 않으며 첫사랑 이후에 우리가 달라진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다시 이 사랑을 떠올리게 될 때 무섭게도 동일한 상실감을 맛보게 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해소하려고 할수록 그 상실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아마도 첫사랑은 그것을 떠올릴 때 더 이상 아련한 것이 없다면 첫사랑이 아닌 것일지도 모른다. 망각함으로써 이 사랑의 상처를 극복하는데 성공해버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첫사랑이 아닌 것이다. 아련함에 대한 원조이자 향수로 우리 삶의 첫부분에 홀로 침잠한 첫사랑이 저기 울고 있을 때, 우리는 기억 저 편의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애쓰지만, 그 위로는 자주 삐걱거리며 실패하게 된다. 하물며 이제 그 첫사랑이 죽었다는 사실이 두 여인에게 가져다 줄 파장은 어떤 것일까. 감독이 <설렘>을 통해 첫사랑의 이후를 말하고자 했지만, 오히려 그 영화 이후 혜정과 수희의 삶이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 그 이유에서이다.

 
 
영화의 삼부작은 첫사랑에 관한 고전적인 세 국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연속적이다. <종이학>이 이루지 못한 ‘짝사랑’을, <한번만 다음에>가 첫경험을, <설렘>이 첫사랑 그 이후를 다루고 있는 것인데, 이렇게 상이한 세 가지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비교적 일관적인 듯 하다. 그것은 바로 실패한 사랑의 추상은 언제든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 하여, 우리는 이 세 편의 영화가 암묵적으로 ‘죽음’이라는 소재를 그 기저에 깔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죽지 못해 사는 우리가 그래도 삶을 반추하며 가장 순수해지는 순간은 아마도 첫사랑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랑은 계속 죽으려고만 한다. 우리는 마른 황어에 침을 뱉는 심정으로 이 펄떡이는 지나간 기억을 복원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이러한 성실함은 매번 실패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영화가 이를 도외시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첫사랑 열전은 성공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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