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 후기청년 - 당신의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
송은주 지음 / 더난출판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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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 후기 청년』이란 제목은 너무나 정확하다. 제목이 내용을 다~담고 있는 대표적 책이 이것 아닐까. 솔직히 상상 그대로의 책이다. 1장에서는 ‘후기 청년’의 정의와 내용을 담고, 2장부터는 사례를 담아둔. 그러나 이 책의 좋은 점은 2장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여러 사례가 충분히 신선하고 알찼다는 데 있다.

저자는 20세기의 메인 아이디어였던 ‘위기의 중년’을 넘어서 ‘진격의 중년’을 제시한다. ‘꺾인 나이’였던 4050나이를 이제는 ‘중간지대’라 칭한다. “변신 가능하며 잇고 연결하고 열려 있다.” 언급하며 이 나이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수명이 길어지고 인생 다모작 시대에 이르다 보니 2030나이는 이제 시도의 시간이다. 4050에 이르러서야 “심장을 뛰게 하고 가슴에 따뜻한 훈풍이 스치는 뿌듯한 일”을 하기에 걸맞은 시기라고 강조한다. 한편 인생 중반기에는 그러한 인연을 만날 수 있는 시기라며 40대 중반 이후에 짝을 찾은 이들을 소개한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로 자신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진격의 중년’에 이른다면 충만한 일과 애정을 모두 얻을 수 있다는 것.

“모든 세대는 자신들만의 혁명을 갖는다. 후기 청년은 알만큼 성숙했고 저지를 만큼 젊다. 역사적으로 지금의 후기 청년들은 이전 어느 세대보다 학력이 높고 다양한 직업군을 경험하는 세대로 알려져 있다. 삶을 더 넓고 깊게 보는 눈이 뜨인, 그러면서 여전히 열정을 간직한, 또 그간 쌓아온 삶의 노하우와 인맥들로 인생의 성숙기를 이전 세대들과는 다르게 보내고 싶어 하는, 후기 청년들이 세계 곳곳에서 재미난 반란을 일으키는 소식도 자주 접하게 된다.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경험과 능력을 갖추었던 세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어떤 세대보다도 훨씬 다양한 재료와 양념들을 준비할 수 있고, 그 어떤 레시피도 구현해줄 도구를 구할 수 있는 주방에 들어선 것이다. 이제 어떤 요리를 할지 결정하는 일만 남았다. 발칙한 상상을 곁들여 자신만의 레시피를 완성해가면 된다. 새롭고 신선한 시도를 기피하지 않는, 오히려 그것을 추구하는 자세는 그 자체로 요리의 풍미를 배가시킬 것이다. 메소력은 생의 다른 시기에는 주어지지 않는 귀한 자산이다. 오직 인생 중반기에만 발휘되는 강력한 포스인 셈이다. 오해와 속설로 인해 봉인되었던 메소력을 부활시키는 후기 청년의 삶은, 인생을 의미 있고(Meaningful), 흥미진진하며(Exciting), 특별한(Special), 기회(Opportunity)로 만들어갈 때다.” (송은주,『4050 후기 청년』, 더난출판)

‘적령기’가 사라져버린 시대에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라는 ‘진격의 중년’ 이제 빼박캔트 40대가 되어버린 내게 힘이 되어야 하는 책이지만 그다지 의욕이 일어나지 않는 건 왜일까. 그들의 행운이 내게도 올 것이라는 기대가 일지 않는다. 내가 풀어야 하는 큰 문제다. 책은 정확하지만 내 삶은 애매하기 그지없다. 언제나처럼 생은 모호하고 도전은 실패하기 쉽고 기다림은 끝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은 지속된다. 원치 않아도 4050에 합류해버린 내 인생은 이미 ‘진격의 중년’이 되어버린 것. 왠지 벌써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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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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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목숨 이상으로 소중한 그 무엇이 있고, 그것이 손상되거나 부정당할 때 삶의 동기를 상실한다.” 김찬호, 「1장_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3, 치욕과 폭력의 악순환)」, 『모멸감』, 문학과지성사, 2015

직장에서 사건이 빵 터졌다. 원치 않는 일이고 마음 아픈 사건이다. 머리로는 정리해도 가슴으로는 정리하지 못한다. 감정, 그것은 무엇인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감정이 무엇이기에 사람을 쥐고 흔드는가. 살 수 없게 하는가. 가슴을 부여 쥐고 몇 번을 쓸어 보아도 이 마음은 가라앉지 않는다.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경험들을 하나하나 헤아려 보아도 그중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는 감정은 나 역시 ‘모멸감’이었다.

‘모멸감’이라는, 너무나 직관적이지만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感情)’ 김찬호의 『모멸감』은 이 감정을 세세하게 분석하는 데 1장을 할애한다. ‘수치심’과 연결된 이 감정, 치욕이 일으키는 폭력, 자본주의 하에서 이 감정이 어떻게 극에 달하는지. 돈 앞에서 감정을 굴복하는 감정 노동의 폭력까지 이 감정 하나에 주렁주렁 얽히고설킨 수많은 감정의 덩어리들을 보여주고야 이 ‘모멸감’은 정의된다.

곧이어 2장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왜 이 ‘모멸감’이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지를 사회, 문화, 역사적 근거를 들어 분석한다. 신분제가 붕괴되었으나 이것이 권력과 자본으로 대체되면서 또 다른 신분을 만든 상하 관계, 집단주의하에서 일어나는 비하와 차별을 3장까지 연결 지어가며 이야기한다. 곧이어 4장과 5장에서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자존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며 약간의 제안을 한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자존감. 자신과 타인에 대한 환대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환대할 것. 내게는 그것이 하늘에서 내게 준 지령(指令)처럼 보였다.

정성 들인 구조와 인간적인 문장들이 오래 남아서 한번 덮은 책을 다시 펼쳐본다.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이라는 부제는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이 책의 중요한 포인트는 한국인이 쓴, 한국 사회의 모멸 현황과 감정의 근원을 파헤친 책이라는 것. 이 나라에서 모멸감은 너무나 쉽게 느낄 수밖에 없는, 산재한 평범한 현상이며, 그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다양한 현상과 근거를 들어가며 서술한 김찬호의 성실함이 참 돋보인다. 적재적소에 인용한 사회학, 자기 계발서, 시, 고전문학 등에서 발췌한 글들 역시 감동이다. 무엇보다 문장이 너무나 쉽다. 게다가 따뜻하기까지 하다. 이런 글들은 참말이지, 닮고 싶을 뿐이다. (한숨)

책의 마지막에 첨부된 음악이 신선했다. 한 작곡가가 이 텍스트의 열 부분을 주제로 했다는 열 편의 음악을 아직 다 들어보지 못했지만 누군가의 공감을 음악으로 읽는다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이 역시 또 다른 이 책의 리뷰일 테니. 언제나 누군가의 리뷰는 나를 기쁘게 한다. 공감, 그것은 모멸감의 가장 대척점에 있는 강력한 감정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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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 - 선택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아우름 36
류대성 지음 / 샘터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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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보직 제의가 들어왔다. 전혀 해보지 않았던 일과 새로이 부딪쳐야 하는 상·하의 인간관계가 두렵다. 인간관계 재능 빵점인 나에게 이것처럼 부담스러운 일이 없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을 하기까지의 짧은 시간,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경우의 수와 사건들이 빙빙 돌았다. “아니 내가 왜?”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왔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대체 누가 나를 추천한 거지?” 받아들일 것인가 끝내 고집을 부려 거절할 것인가. 물론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그러나 고민할 만한 경우의 수는 엄청난 법. Yes 와 No,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선택’ 사이에 수많은 고민의 스펙트럼이 있다. 우연일까 우연이 아닐까, 이날 내가 『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는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는 제목은 지극히도 진부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진부하지 않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만나게 되는 “우리의 삶은 선택 가능한 것일까?”라는 질문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괴로워하는 우리의 삶과 그 안의 진실을 흔든다. “문제는 선택할 수 있는 것보다 어쩌면 선택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라는 ‘여는 글’의 한 문장이 아니었다면 이 작은 책을 한낱 편견으로 가벼이 넘겼을지도 모른다. ‘선택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인정 덕분에 포스트잇과 2B 연필을 꺼내들고 이 책에 의욕적으로 달려들었다.


『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선택해야 하는’ 혹은 ‘선택할 수 없는’ 삶의 조건들을 바라본다. 각 부는 또다시 두 장으로 구분되어 1,2,3,4장을 이루는데, 내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챕터는 1장,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였다. 세대별로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각각이 맞닿은 고민과 이를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하는 문제들을 ‘공부냐 놀이냐’, ‘남들이 가지 않은 길’, ‘낭만적 사랑과 결혼’, ‘무자식 상팔자의 시대’, ‘인생 이모작의 시작’,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준비’로 구분해 서술했는데 각 세대가 직면한 고민의 케이스가 나와 내 친구의 것, 내 동생과 부모의 것처럼 현실적이어서 쉽게 와닿았다. 가족을 모두 동원해 아이돌 가수 콘서트 표를 예매하는 십 대 소녀, 가수가 되고 싶지만 안정적인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이십 대 청년, 결혼의 조건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맞선 시장에서 사랑이 사치가 되어버린 삼십 대 여성, 딸의 교육 때문에 대안학교까지 알아보며 고민하지만 자녀의 성적 앞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확인하는 사십 대 여성, 눈앞에 어른거리는 ‘사오정’ 압박 앞에서 자격증을 따야 할지 자영업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오십 대 남성, 다행히 초기 암세포를 발견하고 철저히 건강 관리를 하는 육십 대 어르신의 모습이 너무 친밀했다. 채영, 연우, 태균, 혜진, 영기, 경화, 명옥처럼 흔하디흔한 이름의 캐릭터를 설정해 ‘가족’을 구성한 것도 현실감에 일조했다.


2장부터 가족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진다. 사실 ‘선택의 기준과 방법’이나 ‘선택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접근’도 중요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족의 이야기가 얽히고설키면서 생활감을 끝까지 유지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자잘한 ‘선택’의 에피소드가 캐릭터 성격상 일관성이 있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이 “선택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것들 속에는 더 많은 선택의 요소가 숨어 있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라 밝힌다. 서문에서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제학과 오류를 따져보는 심리학에서 선택을 다룬다고 하지만, 본문의 구석구석 철학, 사회학, 문학, 자기계발 등에서 발췌한 아이디어가 빼곡히 등장한다. 예상할 수 있다,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은 성실한 레퍼런스의 힘이라는걸.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는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이렇게 여러 면을 고려하고 많이 고민하고 직접 선택해 보라 한다. ‘선택할 수 없는 문제’는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 혹은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자기를 긍정하라 말한다. 명쾌한 해결책은 없지만 중요한 건 단 하나다. 무엇이든 선택의 주체가 ‘나’라는 것.


“모든 인간의 삶은 우연과 필연이 끊임없이 교차합니다. 그 불가해한 삶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철학으로 시작해서 문학 역사, 경제, 심리, 과학, 기술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고 내 삶을 시공간의 좌표 위에 올려놓으면 객관적 시선으로 자신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와 자학 대신 남은 시간을 향한 실천과 노력, 이것이 선택을 마주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과거를 향한 소모적 에너지를 미래로 돌려야 할 시간입니다. 바로 지금 당신의 선택이 필요합니다.” (류대성, 『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 샘터, 2019, P.193)


사실 그렇다. 처음 나의 공감이 ‘선택할 수 없음’이었던 것처럼 선택에 정답은 없다. 선택은 잔인하다. 선택의 주체는 별 수 없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느 한쪽에 상처를 입혀야 한다. 삶은 그저 우연과 필연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제멋대로의 세계. 그 혼란 가운데 꿋꿋하게 나를 세우며 긍정하는 것. 그것 하나만이 있지 않을까. Yes여도 No여도 내가 선택한다, 비록 도망치더라도 내가 달려간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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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 - 선택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아우름 36
류대성 지음 / 샘터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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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술술 읽힌다. 책에 등장하는 ‘선택‘의 케이스들이 모두 일상이고 실제다. 맨 처음 나오는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앞에 선 ‘선택‘에의 과제와 조언이 무척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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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22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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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할 것처럼 많이 한 소개팅에서 한 번도 멀쩡한 인간을 못 만나봤다는 내게 사람들은 늘 뭐라고 한다. 눈이 높아서라는 둥, 현실을 모른다는 둥. 그 나이에 사랑이란 감정은 없다는 둥 다양한 말로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 내 비현실성을 뭐라 한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 많은 사람 중에 괜찮은 사람이 하나도 없을 수 있어?”라는 그들의 물음에 내가 하는 말은 비슷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 나를 원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문제는 ‘현실’이다. 이제는 애가 중학교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인생 과제를 수행하려면 급하기 그지없으니 ‘현실’에 맞는 연애와 결혼을 하는 게 당연한 건데. 나는 그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니 연애도 결혼도 안 되는 거다. 직업과 재산 조건과 자녀 계획보다 내 본질을 먼저 알아봐 달라는 조건을 거니 이건 될 수가 없는 거다. 기질과 현실의 비극이지.

『그 남자네 집』에서 내게 벼락처럼 다가온 두 가지는 ‘구슬’과 ‘현실’이다. 비현실적인 ‘그 남자’가 박완서의 본질을 알아보고 붙여준 별명과, 현실적인 ‘은행원 남편’이 준 경제적 안정감. 그 두 가지는 천칭의 반대 방향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다 결국 ‘현실’의 승리로 끝난다.

박완서의 젊은 시절 사진을 찾아보았다. 그 남자가 ‘구슬 같다’고 표현했던 생기를 보고 싶어서다. 정말이다. ‘구슬 같다’고 표현할 수 있었던 그 남자는 대체 얼마나 박완서의 진짜를 알아보는 사람이었던가. 한편 박완서의 바가지(?)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남편의 무거운 단단함은. 울타리가 되어 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배부르고 등 따신 방에서 사는 것도 사랑이지만 박완서 같은 사람이 정말 만족했을까. 물론 그래서 박완서가 첫사랑을 만나러 나가는 일탈을 하지만. 그것도 잔인한 비극으로 돌아서는 이건 대체 뭘까. 사람이 사람에게 인생이 사람에게 어쩜 이렇게 잔인한 걸까. 게다가 ‘카멜리’라 불리는 춘희의 이야기는 비참했다. ‘현실’ 때문에 언제나 있을 수밖에 없는 장녀의 흔한 이야기. 그 현실에 양공주가 되지 않는 게 이상할 따름이다. 그러니 박완서가 영악하기 그지없는 건가. 딱 치고 빠질 줄 잘 아는 박완서가? 그것도 결국 현실을 다루는 문제가 아닌가.

대체 ‘현실’이라는 건 뭘까. 현실이 뭐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뒤로하고, 혹은 사랑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결혼을 하는 걸까. 현실이 얼마나 대단한 거기에 박완서같이 감수성 넘치고 똑똑한 사람도 자기를 ‘구슬 같은 여자’라고 말하던 부잣집 어린 남자를 뒤로하고, ‘골이 비었거나 무식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나이 많은 은행원과 결혼한 걸까? 아직도 여기 답을 못 찾아 답답해하는 나는 철이 들려면 멀었던가, 친구들 다 품절되고 후배들도 거의 다 결혼해가고, 돌아온 친구들도 하나둘 결혼하는 지금까지도 허우적거리는 나의 결혼은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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