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 - 선택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ㅣ 아우름 36
류대성 지음 / 샘터사 / 2019년 2월
평점 :
새로이 ○○보직 제의가 들어왔다. 전혀 해보지 않았던 일과 새로이 부딪쳐야 하는 상·하의 인간관계가 두렵다. 인간관계 재능 빵점인 나에게 이것처럼 부담스러운 일이 없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을 하기까지의 짧은 시간,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경우의 수와 사건들이 빙빙 돌았다. “아니 내가 왜?”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왔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대체 누가 나를 추천한 거지?” 받아들일 것인가 끝내 고집을 부려 거절할 것인가. 물론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그러나 고민할 만한 경우의 수는 엄청난 법. Yes 와 No,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선택’ 사이에 수많은 고민의 스펙트럼이 있다. 우연일까 우연이 아닐까, 이날 내가 『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는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는 제목은 지극히도 진부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진부하지 않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만나게 되는 “우리의 삶은 선택 가능한 것일까?”라는 질문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괴로워하는 우리의 삶과 그 안의 진실을 흔든다. “문제는 선택할 수 있는 것보다 어쩌면 선택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라는 ‘여는 글’의 한 문장이 아니었다면 이 작은 책을 한낱 편견으로 가벼이 넘겼을지도 모른다. ‘선택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인정 덕분에 포스트잇과 2B 연필을 꺼내들고 이 책에 의욕적으로 달려들었다.
『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선택해야 하는’ 혹은 ‘선택할 수 없는’ 삶의 조건들을 바라본다. 각 부는 또다시 두 장으로 구분되어 1,2,3,4장을 이루는데, 내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챕터는 1장,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였다. 세대별로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각각이 맞닿은 고민과 이를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하는 문제들을 ‘공부냐 놀이냐’, ‘남들이 가지 않은 길’, ‘낭만적 사랑과 결혼’, ‘무자식 상팔자의 시대’, ‘인생 이모작의 시작’,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준비’로 구분해 서술했는데 각 세대가 직면한 고민의 케이스가 나와 내 친구의 것, 내 동생과 부모의 것처럼 현실적이어서 쉽게 와닿았다. 가족을 모두 동원해 아이돌 가수 콘서트 표를 예매하는 십 대 소녀, 가수가 되고 싶지만 안정적인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이십 대 청년, 결혼의 조건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맞선 시장에서 사랑이 사치가 되어버린 삼십 대 여성, 딸의 교육 때문에 대안학교까지 알아보며 고민하지만 자녀의 성적 앞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확인하는 사십 대 여성, 눈앞에 어른거리는 ‘사오정’ 압박 앞에서 자격증을 따야 할지 자영업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오십 대 남성, 다행히 초기 암세포를 발견하고 철저히 건강 관리를 하는 육십 대 어르신의 모습이 너무 친밀했다. 채영, 연우, 태균, 혜진, 영기, 경화, 명옥처럼 흔하디흔한 이름의 캐릭터를 설정해 ‘가족’을 구성한 것도 현실감에 일조했다.
2장부터 가족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진다. 사실 ‘선택의 기준과 방법’이나 ‘선택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접근’도 중요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족의 이야기가 얽히고설키면서 생활감을 끝까지 유지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자잘한 ‘선택’의 에피소드가 캐릭터 성격상 일관성이 있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이 “선택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것들 속에는 더 많은 선택의 요소가 숨어 있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라 밝힌다. 서문에서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제학과 오류를 따져보는 심리학에서 선택을 다룬다고 하지만, 본문의 구석구석 철학, 사회학, 문학, 자기계발 등에서 발췌한 아이디어가 빼곡히 등장한다. 예상할 수 있다,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은 성실한 레퍼런스의 힘이라는걸.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는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이렇게 여러 면을 고려하고 많이 고민하고 직접 선택해 보라 한다. ‘선택할 수 없는 문제’는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 혹은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자기를 긍정하라 말한다. 명쾌한 해결책은 없지만 중요한 건 단 하나다. 무엇이든 선택의 주체가 ‘나’라는 것.
“모든 인간의 삶은 우연과 필연이 끊임없이 교차합니다. 그 불가해한 삶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철학으로 시작해서 문학 역사, 경제, 심리, 과학, 기술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고 내 삶을 시공간의 좌표 위에 올려놓으면 객관적 시선으로 자신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와 자학 대신 남은 시간을 향한 실천과 노력, 이것이 선택을 마주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과거를 향한 소모적 에너지를 미래로 돌려야 할 시간입니다. 바로 지금 당신의 선택이 필요합니다.” (류대성, 『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 샘터, 2019, P.193)
사실 그렇다. 처음 나의 공감이 ‘선택할 수 없음’이었던 것처럼 선택에 정답은 없다. 선택은 잔인하다. 선택의 주체는 별 수 없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느 한쪽에 상처를 입혀야 한다. 삶은 그저 우연과 필연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제멋대로의 세계. 그 혼란 가운데 꿋꿋하게 나를 세우며 긍정하는 것. 그것 하나만이 있지 않을까. Yes여도 No여도 내가 선택한다, 비록 도망치더라도 내가 달려간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