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 - 선택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아우름 36
류대성 지음 / 샘터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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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보직 제의가 들어왔다. 전혀 해보지 않았던 일과 새로이 부딪쳐야 하는 상·하의 인간관계가 두렵다. 인간관계 재능 빵점인 나에게 이것처럼 부담스러운 일이 없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을 하기까지의 짧은 시간,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경우의 수와 사건들이 빙빙 돌았다. “아니 내가 왜?”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왔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대체 누가 나를 추천한 거지?” 받아들일 것인가 끝내 고집을 부려 거절할 것인가. 물론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그러나 고민할 만한 경우의 수는 엄청난 법. Yes 와 No,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선택’ 사이에 수많은 고민의 스펙트럼이 있다. 우연일까 우연이 아닐까, 이날 내가 『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는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는 제목은 지극히도 진부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진부하지 않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만나게 되는 “우리의 삶은 선택 가능한 것일까?”라는 질문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괴로워하는 우리의 삶과 그 안의 진실을 흔든다. “문제는 선택할 수 있는 것보다 어쩌면 선택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라는 ‘여는 글’의 한 문장이 아니었다면 이 작은 책을 한낱 편견으로 가벼이 넘겼을지도 모른다. ‘선택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인정 덕분에 포스트잇과 2B 연필을 꺼내들고 이 책에 의욕적으로 달려들었다.


『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선택해야 하는’ 혹은 ‘선택할 수 없는’ 삶의 조건들을 바라본다. 각 부는 또다시 두 장으로 구분되어 1,2,3,4장을 이루는데, 내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챕터는 1장,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였다. 세대별로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각각이 맞닿은 고민과 이를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하는 문제들을 ‘공부냐 놀이냐’, ‘남들이 가지 않은 길’, ‘낭만적 사랑과 결혼’, ‘무자식 상팔자의 시대’, ‘인생 이모작의 시작’,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준비’로 구분해 서술했는데 각 세대가 직면한 고민의 케이스가 나와 내 친구의 것, 내 동생과 부모의 것처럼 현실적이어서 쉽게 와닿았다. 가족을 모두 동원해 아이돌 가수 콘서트 표를 예매하는 십 대 소녀, 가수가 되고 싶지만 안정적인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이십 대 청년, 결혼의 조건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맞선 시장에서 사랑이 사치가 되어버린 삼십 대 여성, 딸의 교육 때문에 대안학교까지 알아보며 고민하지만 자녀의 성적 앞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확인하는 사십 대 여성, 눈앞에 어른거리는 ‘사오정’ 압박 앞에서 자격증을 따야 할지 자영업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오십 대 남성, 다행히 초기 암세포를 발견하고 철저히 건강 관리를 하는 육십 대 어르신의 모습이 너무 친밀했다. 채영, 연우, 태균, 혜진, 영기, 경화, 명옥처럼 흔하디흔한 이름의 캐릭터를 설정해 ‘가족’을 구성한 것도 현실감에 일조했다.


2장부터 가족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진다. 사실 ‘선택의 기준과 방법’이나 ‘선택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접근’도 중요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족의 이야기가 얽히고설키면서 생활감을 끝까지 유지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자잘한 ‘선택’의 에피소드가 캐릭터 성격상 일관성이 있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이 “선택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것들 속에는 더 많은 선택의 요소가 숨어 있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라 밝힌다. 서문에서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제학과 오류를 따져보는 심리학에서 선택을 다룬다고 하지만, 본문의 구석구석 철학, 사회학, 문학, 자기계발 등에서 발췌한 아이디어가 빼곡히 등장한다. 예상할 수 있다,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은 성실한 레퍼런스의 힘이라는걸.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는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이렇게 여러 면을 고려하고 많이 고민하고 직접 선택해 보라 한다. ‘선택할 수 없는 문제’는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 혹은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자기를 긍정하라 말한다. 명쾌한 해결책은 없지만 중요한 건 단 하나다. 무엇이든 선택의 주체가 ‘나’라는 것.


“모든 인간의 삶은 우연과 필연이 끊임없이 교차합니다. 그 불가해한 삶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철학으로 시작해서 문학 역사, 경제, 심리, 과학, 기술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고 내 삶을 시공간의 좌표 위에 올려놓으면 객관적 시선으로 자신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와 자학 대신 남은 시간을 향한 실천과 노력, 이것이 선택을 마주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과거를 향한 소모적 에너지를 미래로 돌려야 할 시간입니다. 바로 지금 당신의 선택이 필요합니다.” (류대성, 『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 샘터, 2019, P.193)


사실 그렇다. 처음 나의 공감이 ‘선택할 수 없음’이었던 것처럼 선택에 정답은 없다. 선택은 잔인하다. 선택의 주체는 별 수 없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느 한쪽에 상처를 입혀야 한다. 삶은 그저 우연과 필연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제멋대로의 세계. 그 혼란 가운데 꿋꿋하게 나를 세우며 긍정하는 것. 그것 하나만이 있지 않을까. Yes여도 No여도 내가 선택한다, 비록 도망치더라도 내가 달려간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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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아닌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 - 선택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아우름 36
류대성 지음 / 샘터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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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술술 읽힌다. 책에 등장하는 ‘선택‘의 케이스들이 모두 일상이고 실제다. 맨 처음 나오는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앞에 선 ‘선택‘에의 과제와 조언이 무척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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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22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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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할 것처럼 많이 한 소개팅에서 한 번도 멀쩡한 인간을 못 만나봤다는 내게 사람들은 늘 뭐라고 한다. 눈이 높아서라는 둥, 현실을 모른다는 둥. 그 나이에 사랑이란 감정은 없다는 둥 다양한 말로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 내 비현실성을 뭐라 한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 많은 사람 중에 괜찮은 사람이 하나도 없을 수 있어?”라는 그들의 물음에 내가 하는 말은 비슷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 나를 원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문제는 ‘현실’이다. 이제는 애가 중학교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인생 과제를 수행하려면 급하기 그지없으니 ‘현실’에 맞는 연애와 결혼을 하는 게 당연한 건데. 나는 그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니 연애도 결혼도 안 되는 거다. 직업과 재산 조건과 자녀 계획보다 내 본질을 먼저 알아봐 달라는 조건을 거니 이건 될 수가 없는 거다. 기질과 현실의 비극이지.

『그 남자네 집』에서 내게 벼락처럼 다가온 두 가지는 ‘구슬’과 ‘현실’이다. 비현실적인 ‘그 남자’가 박완서의 본질을 알아보고 붙여준 별명과, 현실적인 ‘은행원 남편’이 준 경제적 안정감. 그 두 가지는 천칭의 반대 방향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다 결국 ‘현실’의 승리로 끝난다.

박완서의 젊은 시절 사진을 찾아보았다. 그 남자가 ‘구슬 같다’고 표현했던 생기를 보고 싶어서다. 정말이다. ‘구슬 같다’고 표현할 수 있었던 그 남자는 대체 얼마나 박완서의 진짜를 알아보는 사람이었던가. 한편 박완서의 바가지(?)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남편의 무거운 단단함은. 울타리가 되어 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배부르고 등 따신 방에서 사는 것도 사랑이지만 박완서 같은 사람이 정말 만족했을까. 물론 그래서 박완서가 첫사랑을 만나러 나가는 일탈을 하지만. 그것도 잔인한 비극으로 돌아서는 이건 대체 뭘까. 사람이 사람에게 인생이 사람에게 어쩜 이렇게 잔인한 걸까. 게다가 ‘카멜리’라 불리는 춘희의 이야기는 비참했다. ‘현실’ 때문에 언제나 있을 수밖에 없는 장녀의 흔한 이야기. 그 현실에 양공주가 되지 않는 게 이상할 따름이다. 그러니 박완서가 영악하기 그지없는 건가. 딱 치고 빠질 줄 잘 아는 박완서가? 그것도 결국 현실을 다루는 문제가 아닌가.

대체 ‘현실’이라는 건 뭘까. 현실이 뭐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뒤로하고, 혹은 사랑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결혼을 하는 걸까. 현실이 얼마나 대단한 거기에 박완서같이 감수성 넘치고 똑똑한 사람도 자기를 ‘구슬 같은 여자’라고 말하던 부잣집 어린 남자를 뒤로하고, ‘골이 비었거나 무식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나이 많은 은행원과 결혼한 걸까? 아직도 여기 답을 못 찾아 답답해하는 나는 철이 들려면 멀었던가, 친구들 다 품절되고 후배들도 거의 다 결혼해가고, 돌아온 친구들도 하나둘 결혼하는 지금까지도 허우적거리는 나의 결혼은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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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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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연애소설’에 대해 묻는다면 ‘내 영혼의 연애소설’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마티네의 끝에서』라고 말할 테다. 그러나 이제는 한 문장을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내 영혼을 가장 아프게 한 연애소설’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이라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작품 치고는 너무 평이한 가독성에 신나서 읽다가, 주인공 스티븐스의 집사(직업) 의식과 영국 귀족의 엘리트 문화, 당시 세계의 패권과 영국을 둘러싼 서유럽의 외교 상황, 스티븐스의 자아 죽임(생각하지 않음?), 품위에의 신념을 생각하며 인간성과 사회를 고민하다가, 마지막 챕터에 이르러 뒤집어졌다. 이건 남과 여의 이야기였다. 슬픔의 총을 맞은 듯 마음이 녹아내렸다. 이렇게 큰 슬픔이 있을 수 없다. 너무나 슬퍼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주인공 스티븐스는 영국 외교의 숨은 실력자 달링턴 경의 저택에서 일하는 수석 집사장이다. 일 잘하고 책임감 넘치는 총무(하녀장?) 켄턴 양과 티격태격하며 일과 마음을 맞춰간다. 이미 한참 전에 노처녀 대열에 들어온 켄턴 양은 일에 대한 태도나 절제 등의 기질이 비슷한 스티븐스에게 호감을 갖고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만, 자기감정보다 일이 먼저인 스티븐스는 켄턴 양을 놓치고 만다. 심지어 켄턴이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겠다 선포하고 울고 있을 때도, 그녀의 눈물을 뻔히 알면서도 일을 우선하느라 외면한다. 이건 일 때문에 부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을 때와도 똑같다. 이미 한번, 소중한 기회를 놓쳤는데도 또다시 극적인 기회를 알면서도 보내버린다.

달링턴 경은 나름대로 영국의 외교를 위해 독일과의 관계를 잘 해 보려 하지만, 어느 순간 독일 나치에 경도되어 정치인으로서 주인으로서 인간으로서 큰 실수를 하게 된다. 자기 생각은 최대한 누르고 주인의 생각을 앵무새처럼 읊는 스티븐스나, 주변에 휘둘리는 주인 달링턴이나 똑같다. 달링턴은 가고 새 주인이 왔다. 미국인 패러데이는 합리성에 입각하여 하인들 수를 경제적으로 재구성하고, 수고한 스티븐스에게 포드 자동차를 내주며 휴가를 준다. 여기서도 일만 생각하는 스티븐스는 마침 도착한 켄턴 양의 편지를 읽고 그녀를 만나러 간다. 함께 일하자 제안하기 위해서. 편지에 쓰인 “내 인생의 남은 부분을 어떻게 유용하게 채울 것인지 비록 알지 못하지만…” “남은 내 인생이 텅 빈 허공처럼 내 앞에 펼쳐집니다.”라는 문장을 붙들고서. 분명 그녀는 절망감으로 이 편지를 썼다 믿으며, 그녀의 결혼이 불행했다는 걸 예감하며. 그리고 먼 길을 떠나 여섯째 날에 지금은 벤 부인이 된 켄턴 양을 드디어 만난다.

“이제 와서 뭘 숨기겠는가? 실제로 그 순간,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 이 문장에 닿는 순간 감정이 폭발해 곡을 하며 울었다. 인간의 타이밍이라는 게 너무 잔인해서, 인간에게 너무나 잔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30년이 지나서야 드러낼 수 있는 감정이라니. 슬프고 허망하고. 게다가 폭발한 감정을 곧 추스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정의 행복을 비는 남자라니. 이건 슬퍼도 너무 슬프다.

켄턴 양은 “이제는 남편을 사랑하게 되었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남편 곁이라는 사실을 안다” 했지만, 나는 그녀가 그 순간까지도 전혀, 남편을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확신한다. 바로 얼마 전에 남편을 떠나 가출했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바로 얼마 전에 “남은 내 인생이 텅 빈 허공처럼 내 앞에 펼쳐집니다.”라고 쓰지 않았던가. 딱 열흘만 먼저, 켄튼이 가출했던 날에 스티븐스를 만났다면 정말 저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타이밍이란 게 짧아도 너무 짧다. 이걸 맞출 수 있는 이 인간 세계에 몇이나 있겠는가? 이 타이밍을 맞출 수 없어서 수많은 사랑이 시치미 아래 묻힌다.

가정해본다, 스티븐스가 “이제 와서 뭘 숨기겠는가? 실제로 그 순간,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라는 말을 실제 소리 내어 켄턴 양에게 했다면. 정말 켄턴 양이 “이제는 남편을 사랑하게 되었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남편 곁이다”라고 이야기했을까? 나는, 내가 켄턴 양이었다면 무어라 말할 수 있었을까.

만약 언젠가 내게 기회가 온다면 훌륭한 문학 같은 사랑은 결코 하고 싶지 않다. 삼류 연애소설 같을지라도 모든 걸 버리고 만나는, 지질한 한 쌍의 바퀴벌레처럼 지지고 볶는 사랑이면 좋겠다. 서로 행복하지 않은 현실을 알면서, 한번 함께할 수 있는 삶을 상상해 왔으면서, 소리 없이 점잖고 아름답게 인사하며 뒤돌아서는 사랑은… 너무 슬프다. “이제 헤어지면 오래도록 다시 못 보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린 오래도록 다신 못 볼지도 모르니까요” “혹시 다시 못 보게 될까 싶어” 같은 말들이 아프게 오간다.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책을 덮은 후에도 내내, 여운이 차갑고 오래 길다. ‘남아있는 나날’ 영화에서처럼 비에 물씬 젖은 듯, 너무 외롭고 허망하고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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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만이 무기다 - 읽기에서 시작하는 어른들의 공부법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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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에 성공한 후 새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얼마 후, 이전에 가르치던 여학생 SY의 연락이 왔다. 언제나처럼 애교 넘치는 수다가 끝난 후 SY는 말했다. 너무 성실해서 피곤하기까지 했던 선생님 수업에서 잊지 못하는 건 하나라고. 언젠가의 쉬는 시간, 언제나처럼 책을 보는 선생님이 신기해서 놀리는 아이들에게 나는 “공부는 평생 하는 거야”라고 대답했다 한다.

『지성만이 무기다』는 각오하고 시작한 성인의 공부, 평생 해야 하는 유일한 생의 무기를 다룬다. 이 ‘공부’에 필요한 도구는 100퍼센트에 가깝게 ‘책’이다. 생(生)에의 무기인 지성과, 그 핵심인 공부를 좌지우지하는 유일한 방법이 어디에서나 얻을 수 있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접근성이 좋은, 묵직한 종이 뭉치, 책인 것이다.

『지성만이 무기다』의 가장 중요한 줄기는 ‘읽기’다. 저자의 말을 빌자면 “생각하는 것은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읽기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알아내려는 뇌의 작동이며, 의지를 가지고 지속하는 반(反) 본능 행위이기 때문이다. 즉,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공부는 ‘탐구’에 가깝다. 이런 면에서 현재 나의 독서법에 시사점이 크다. 지금 나의 독서는 탐구라기보다 취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나는 전혀… 적극적으로 힘겹게 읽고 있지 않다. “탐구가 인생을 재미있게 한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가 우수한 책이다. 책의 재미란, 독자로 하여금 저자가 이끌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게 하면서 탐구의 복잡한 길을 더듬어 결국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지평에 서게 해주는 것에서 생겨난다.”

저자 시라토리 하루히코의 이름은 사실 낯설었다. 책의 후반부 경 『초역 니체의 말』을 썼다는 정보를 얻고서야 ‘아하!’하며 그의 이야기가 맞아떨어졌다. 한편 공부를 도와줄 메모나 노트법의 이야기도 곁가지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문득 떠오르는 것을 짧은 문장으로 자질구레하게 기록하는 니체의 메모법이며 한편 그의 철학을 자기의 문장으로 바꾸어 읽는 이해 방법이다. 즉, 이 책에서도 결국 ‘읽기’와 ‘쓰기’가 모두 들어있다. 하긴 읽기와 쓰기가 어떻게 한 몸이 아닐 수 있겠는가. 이외에도 유학 상황이나 벼락치기 상황에서의 공부법, 재능에 대한 이야기, 시간과 행동법 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이 ‘성인의 공부’는 ‘인식의 변화’다. “책을 읽음으로써 사람이 변하고, 인격이 변용되는 이유는 그 책에 의해 인식, 즉 사물을 보는 방식이 훨씬 크게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애당초 인간은 전 생애에 걸쳐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생물이 아닐까.”

이 책의 ‘읽기’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도전을 하나 꼽자면 ‘정독(精讀)’이다. “그런 수준으로는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환상밖에 생기지 않을 것이다. 보통은 많이 읽을수록 이해력과 통찰력이 늘어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역시나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최소한의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역시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책을 많이 읽었다고 양을 자랑할 필요는 없다. 일단 한 권의 책을 시간을 들여 정독精讀해야 한다. 정독한다는 것은 한 글자 한 구절에 눈길을 주고 거기에 쓰여 있는 모든 내용을 알고자 하는 읽기 방법이다. 지명이 나오면 지도를 펼치고, 인명이 나오면 인명사전을 펼치며, 모르는 도구나 식물이 나오면 도감이나 백과사전을 찾아 용어의 의미를 하나씩 확인한다. 그러면서 책의 여백에 기록하고, 표현의 의미를 조사하며, 종합적으로 문체, 즉 문장의 특징을 토대로 작성된 글의 사상적 핵심을 파악하고 더 나아가 시대 배경까지 캐내는 것이다.” “이런 정독은 반드시 우수한 지도자 밑에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하루에 열 줄에서 몇 십 줄 정도밖에 진척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느린 행보는 처음 한두 달뿐이다. 미리 조사한 지식이 축적되고 뒷받침되다 보면 점점 가속이 붙어 반년에서 1년 정도면 한 권의 정독이 끝날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정독은 이토록 부담스럽다. 나처럼 에너지가 부족한 인간은 시라토리 하루히코법 정독은 엄두도 안 난다. 책을 들추다가 현기증이 날지도 모른다. 그런 내 손사래를 어떻게 아는지 저자는 벌써 적어두었다. “이런 정독은 많은 이득을 가져다준다. 우선 하나의 일과 진득하게 마주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을 배양해 준다. 그런 힘을 가진 사람이 결코 많다고 할 수는 없다.”​ “만약 양서로 여기는 고전을 100권 아니 50권을 정독하지 않고 평범하게 읽는다고 치자. 물론 감동과 발견, 경이, 지식을 얻을 수 있고 특별한 체험도 할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경제활동으로 가족을 부양하지 않아도 되는 이 시기에 반드시 이런 체험을 해야만 한다. 앞으로 그런 독서 체험이 여러 방면에서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조금 더 천천히 짚어가며 읽기를. 책 읽는 일은 본능에 반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제대로 읽고 싶다면 힘들게 읽어야 한다. 내가 변할 수 있다면 그건 힘듦을 딛고 읽어가는 하루하루일 것이다. “요컨대 정독이란 개별적인 하나하나의 책이라는 나뭇가지를 응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사상과 문화로서의 나무 전체를 조감하는 읽기 방식이다. 그래서 정말 성가시게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요령 좋은 읽기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단 한 번만이라도 1년에 걸쳐 정독한다면 다음에 읽는 책부터는 꼭 정독해야만 하는 부분이 서서히 줄어든다. 그 저자의 독자적인 사상에 대한 조사 정도만 필요하다. 게다가 책을 읽는 속도가 몰라보게 빨라진다. 결과적으로 한결같이 일반적인 독서 방법만 따르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풍부하고 정확한 지식을 단기간에 흡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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