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의 말들 - 사소한 것이 언제나 더 중요하다 문장 시리즈
엄지혜 지음 / 유유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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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쉽고 맘 편하게, 누군가에게 마구 권하기 좋은 책을 만났다. 내가 너무나 신뢰하는 ‘태도(態度)’라는 말. 교사 생활을 십몇 년 하면서 천 번쯤 하고 또 한 단어다. 진심보다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한창훈의 말.(“중요한 것은 진심보다 태도”)에 반한다. ‘태도’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이 책은 내게 충분히 호감을 줄 수 있었으리라.

책은 작고 얇지만 빨리 읽히지 않는다. 내가 아는 수많은 누군가를 생각하게 되었기에. 게다가 내가 개인적으로 만나고 이야기 나눠본 인터뷰이도 둘이나 있다. 그들을 대하는 저자 엄지혜의 마음과 나의 반응을 견주어 본다.

1부터 100까지의 문장, 백 개의 엄지혜의 인터뷰 조각들을 넘기며 나는 나는 수많은 ‘당신’들을 생각한다. 백 명의, 적어도 백 명의 당신을. 그리고 백 번을 마음먹는다.

당신(A)에게 인색하게 굴지 말아야지. 당신(B)과 당신(C)에게 “거절이라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 부탁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당신(D)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확실히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당신(E)처럼 일상을 예술처럼 살아야지. “존재감이 전무했을 때, 내 손을 잡아 준” 당신(F)을 내내 존경해야지.

그리고 꼭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사랑해 달라고 징징거려야지, 바로 당신에게.

그리고 이런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하는 연인이 아내가 되어야지, 언젠가.

이것이 나의 말들이고 나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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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구왕 서영
황유미 지음 / 빌리버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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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사람들은 참 살기 힘들다. 세상의 폭력적 흐름에 늘 의문을 제기하고 함께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대로 맞닥트리자니 그들은 너무 소수, 크게 티 안 내고 이 물결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다섯 개의 단편, ‘피구왕 서영’ ‘물 건너기 프로젝트’ ‘하이힐을 신지 않는 이유’ ‘까만 옷을 입는 여자’ ‘알레르기’는 모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굳이 정리하자면 그중에서 여자 사람의 이야기.

표제작인 《피구왕 서영》은 누구나 겪었음직한 예민한 교우관계를 다룬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주류의 권력, 여기서도 자아를 지닌 예민한 여자애들은 고통스러워하지만 자기 나름의 거부권을 행사한다. 무엇보다 이 단편을 인간관계로 고통스러워하는 사춘기 여자애들에게 권하고 싶었다. 무엇이 부끄러운 것이고 부끄럽지 않은 것인지 간접적으로 깨달으라고. 적어도 작중의 윤정이처럼 주류의 눈에 벗어나 고생하는 아이, 수현이처럼 모욕적인 별명으로 불리며 마음 상해 하는 아이들이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물 건너기 프로젝트》는 뻔하긴 했지만, 딸이어서 아들 동생에게 서러움을 겪은 세상의 모든 언니들에게 바치고 싶을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아들이어서 딸이어서 구분하는 남녀 차별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한 사람의 세계에서 한 세계의 차별은 세상의 전부라고. 그러한 세계가 분명 존재하는 현실에 이 단편은 약간의 의미 있다. 『82년생 김지영』이, 이 단편이 허구라고 하는 이들의 안녕이 부럽다는 이, 분명 존재하리라. 의외로 여럿.

《까만 옷을 입는 여자》는 내가 친절하던 우리 회화과의 선배 언니, 노량진 미술 임용계에서 ‘깜장드레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그녀를 떠올리게 했다. 옷에 신경 쓸 시간이 없고, 시선을 피하고 싶고, 자신을 공부에만 집중하게 하고 싶었던 늘 검은 긴 원피스의 언니. 아주 짧은 시간에 임용을 합격해 선배 교사가 된 그녀를 생각하며 조금 그리운 시간을 가졌다. 언니의 마음이 이 까만 옷의 여자와 꽤나 비슷하였으리라. 피구왕 서영의 윤정처럼 늘 조용히 구석에 처박힌 나에게 시선을 두고 격려하던 고마운 사람이 나에게도 있었다.

언제나 생각한다. 둔한 사람으로 산다면 얼마나 세상 사는 게 편안할까. 좋은 옷 입고 맛있는 것 먹고 잠 잘 자는 것만으로 행복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그게 안 돼서 전전긍긍하고 속을 끓인다. 세상에는 이런 예민한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조용히 숨어 있다가 이런 글을 쓴다. 『피구왕 서영』의 저자 황유미 역시 나와 같은 종족이다, 분명. 나는 십만 원을 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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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우석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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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정확한 책이 좋다.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는 책 같은. 또박또박 책을 찍어내는 ‘책 공장장’ 우석훈의 최신작은 애매모호하지 않다. 두 가지만 초점에 맞춰 읽으면 된다. ‘기업’과 ‘민주주의’를 살펴 읽으면 된다. 월급 주는 곳, 내가 다니고 당신이 다니는 직장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경험하며 살고 있는가?

물론 그렇지 못하다는 게 우석훈이 이 책을 쓴 이유고 이 책의 내용이다. 서문에서 저자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사무실의 말단 여직원들’을 굳이 밝혔듯, 책의 초반부에서 ‘젠더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여성에 대한 비민주적 기업 현황이 먼저 서술된다. “여성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면 당연히 남성 비정규직의 처우도 나아진다.”라며 직장 내 여성 처우를 이야기하고, “이명박이 한 짓”을 까대며 기존 사원과 신입사원과의 차이지는 처우를 비난한다.

우석훈은 여성 이야기에 꽤나 많은 비중을 두었다. WASP를 노동의 기준으로 놓고 불리한 조건을 하나씩 붙여나가는 ‘핸디캡 노동’의 정확한 용어를 이전까지 몰랐다. 장애인 노동만인 줄 알았는데, 제2세계와 3세계, 여성까지도 핸디캡 노동의 범주에 넣는다는 걸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 김영란법과 주 52시간 근무로 일하는 방식에 변화가 옴으로 “은밀한 권력 체계에 접근하기 어려운” 직장 구성원들, 그중에서도 여성에게 유리한 방식이 올 것이라고 정리한다. 이런저런 애매한 앎을 확실히 하는 데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는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좋은 사회는 아버지가 자상하든 그렇지 않든, 부자든 아니든, 자식들의 삶이 일정 수준 이상은 유지할 수 있는 사회다. 롤스(John Rawls)가 얘기하는 정의론의 핵심이 바로 이 내용이다. 아버지가 누구냐에 따라 자식의 운명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최악의 경우도 너무 황당하지 않은 것, 그게 정의로운 사회의 기준이다.”

결국 이 책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는 롤스의 그것이다. 억울하지 않은 직장생활. 저자는 “직장 민주주의가 우리가 같이 일굴 수 있는 거의 유일하고 마지막인 희망”이라고 믿는다. ‘팀장 민주주의’, ‘젠더 민주주의’, ‘오너 리스크와 오너 민주주의’ 등을 지나 마지막을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끝맺는다. 삼성, 카카오, 전교조, 병원, 아시아나, 서울우유, 여행박사… 모두 ‘직장’이라는 면에서 동일하지만 노동자들이 겪는 민주적 현실은 달랐다. 먹고살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직장에 다닌다. 민주적이어도 민주적이지 않아도 그들은 다녀야만 한다. 살기 위해서다.

민주적인 직장을 세는 게 빠르다. 민주적이지 않은 직장이 훨씬 더 많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직장 민주주의를 이야기해야 한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구축하기 위해서. 저자는 이 희망은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가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우리가 만드는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얽히고설켜서 뒤죽박죽일 때, 기본을 다시 생각해보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사람들에게 너무 막 대해왔다. 먹고 사느라고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왔다. 모멸감을 참으면서 돈을 버는 시대가 너무 길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좀 오래된 개념이지만, 한국 경제가 그런 모습이라고 말하기는 민망스럽다. 여전히 우리 경제 상층부를 생각하면 ‘천민 자본주의’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고, ‘졸부’라는 표현이 입에 짝짝 붙는다.”

한 직장이라도 더 민주주의가 자리 잡혀야 한다. 한 잎이 누울 때 다른 여러 잎이 눕게 되듯 한 직장의 민주주의가 절대적인 민주주의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할 때 한 사람은 칼이 된다. 우리는 칼이 된다.

“내가 직장 민주주의가 우리가 같이 일굴 수 있는 거의 유일하고 마지막인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일해야 먹고사는 다음 세대에게 남겨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미래 세대에 최소한 한국에서 남의 돈 받고 일할 때 이 정도 대접은 받고 살 수 있다, 그런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일하면서 직장에서 받았던 대우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는 사회, 그 정도는 우리가 만들어 물려줄 수 있지 않은가? 그게 직장 민주주의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 경제가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거의 유일한 디딤돌일 듯싶다. 그렇게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 한국 경제를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을 걸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득도 오른다. 직장 민주주의, 혁명으로 하는 거 아니다. 제도로 하고, 대화로 하고, 투표로 하고, 분위기로 하는 거다. 한겨울 몇 달씩 광장을 채웠던 촛불집회보다 쉽다. 승리라는 표현 뒤의 공허한 일상보다는, 뭐 하나라도 나아진 생활 경제가 더 의미 있다. 지금 우리가 여기에서 하는 일이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에게 좀 더 인간다운 직장을 주는 일,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경쟁 속에서도 질서를 만드는 것, 그게 우리에게 필요한 직장 간 민주주의다. 직장 민주주의의 다음 단계로 직장 간 민주주의가 중요해지는 순간이 우리에게도 올 것이다. 기계적인 공정거래를 넘어 실질적인 직장 간 민주주의로, 우리의 경쟁 제도를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희망의 씨앗이 틔워 올린 새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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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 후기청년 - 당신의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
송은주 지음 / 더난출판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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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 후기 청년』이란 제목은 너무나 정확하다. 제목이 내용을 다~담고 있는 대표적 책이 이것 아닐까. 솔직히 상상 그대로의 책이다. 1장에서는 ‘후기 청년’의 정의와 내용을 담고, 2장부터는 사례를 담아둔. 그러나 이 책의 좋은 점은 2장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여러 사례가 충분히 신선하고 알찼다는 데 있다.

저자는 20세기의 메인 아이디어였던 ‘위기의 중년’을 넘어서 ‘진격의 중년’을 제시한다. ‘꺾인 나이’였던 4050나이를 이제는 ‘중간지대’라 칭한다. “변신 가능하며 잇고 연결하고 열려 있다.” 언급하며 이 나이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수명이 길어지고 인생 다모작 시대에 이르다 보니 2030나이는 이제 시도의 시간이다. 4050에 이르러서야 “심장을 뛰게 하고 가슴에 따뜻한 훈풍이 스치는 뿌듯한 일”을 하기에 걸맞은 시기라고 강조한다. 한편 인생 중반기에는 그러한 인연을 만날 수 있는 시기라며 40대 중반 이후에 짝을 찾은 이들을 소개한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로 자신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진격의 중년’에 이른다면 충만한 일과 애정을 모두 얻을 수 있다는 것.

“모든 세대는 자신들만의 혁명을 갖는다. 후기 청년은 알만큼 성숙했고 저지를 만큼 젊다. 역사적으로 지금의 후기 청년들은 이전 어느 세대보다 학력이 높고 다양한 직업군을 경험하는 세대로 알려져 있다. 삶을 더 넓고 깊게 보는 눈이 뜨인, 그러면서 여전히 열정을 간직한, 또 그간 쌓아온 삶의 노하우와 인맥들로 인생의 성숙기를 이전 세대들과는 다르게 보내고 싶어 하는, 후기 청년들이 세계 곳곳에서 재미난 반란을 일으키는 소식도 자주 접하게 된다.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경험과 능력을 갖추었던 세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어떤 세대보다도 훨씬 다양한 재료와 양념들을 준비할 수 있고, 그 어떤 레시피도 구현해줄 도구를 구할 수 있는 주방에 들어선 것이다. 이제 어떤 요리를 할지 결정하는 일만 남았다. 발칙한 상상을 곁들여 자신만의 레시피를 완성해가면 된다. 새롭고 신선한 시도를 기피하지 않는, 오히려 그것을 추구하는 자세는 그 자체로 요리의 풍미를 배가시킬 것이다. 메소력은 생의 다른 시기에는 주어지지 않는 귀한 자산이다. 오직 인생 중반기에만 발휘되는 강력한 포스인 셈이다. 오해와 속설로 인해 봉인되었던 메소력을 부활시키는 후기 청년의 삶은, 인생을 의미 있고(Meaningful), 흥미진진하며(Exciting), 특별한(Special), 기회(Opportunity)로 만들어갈 때다.” (송은주,『4050 후기 청년』, 더난출판)

‘적령기’가 사라져버린 시대에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라는 ‘진격의 중년’ 이제 빼박캔트 40대가 되어버린 내게 힘이 되어야 하는 책이지만 그다지 의욕이 일어나지 않는 건 왜일까. 그들의 행운이 내게도 올 것이라는 기대가 일지 않는다. 내가 풀어야 하는 큰 문제다. 책은 정확하지만 내 삶은 애매하기 그지없다. 언제나처럼 생은 모호하고 도전은 실패하기 쉽고 기다림은 끝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은 지속된다. 원치 않아도 4050에 합류해버린 내 인생은 이미 ‘진격의 중년’이 되어버린 것. 왠지 벌써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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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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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목숨 이상으로 소중한 그 무엇이 있고, 그것이 손상되거나 부정당할 때 삶의 동기를 상실한다.” 김찬호, 「1장_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3, 치욕과 폭력의 악순환)」, 『모멸감』, 문학과지성사, 2015

직장에서 사건이 빵 터졌다. 원치 않는 일이고 마음 아픈 사건이다. 머리로는 정리해도 가슴으로는 정리하지 못한다. 감정, 그것은 무엇인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감정이 무엇이기에 사람을 쥐고 흔드는가. 살 수 없게 하는가. 가슴을 부여 쥐고 몇 번을 쓸어 보아도 이 마음은 가라앉지 않는다.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경험들을 하나하나 헤아려 보아도 그중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는 감정은 나 역시 ‘모멸감’이었다.

‘모멸감’이라는, 너무나 직관적이지만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感情)’ 김찬호의 『모멸감』은 이 감정을 세세하게 분석하는 데 1장을 할애한다. ‘수치심’과 연결된 이 감정, 치욕이 일으키는 폭력, 자본주의 하에서 이 감정이 어떻게 극에 달하는지. 돈 앞에서 감정을 굴복하는 감정 노동의 폭력까지 이 감정 하나에 주렁주렁 얽히고설킨 수많은 감정의 덩어리들을 보여주고야 이 ‘모멸감’은 정의된다.

곧이어 2장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왜 이 ‘모멸감’이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지를 사회, 문화, 역사적 근거를 들어 분석한다. 신분제가 붕괴되었으나 이것이 권력과 자본으로 대체되면서 또 다른 신분을 만든 상하 관계, 집단주의하에서 일어나는 비하와 차별을 3장까지 연결 지어가며 이야기한다. 곧이어 4장과 5장에서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자존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며 약간의 제안을 한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자존감. 자신과 타인에 대한 환대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환대할 것. 내게는 그것이 하늘에서 내게 준 지령(指令)처럼 보였다.

정성 들인 구조와 인간적인 문장들이 오래 남아서 한번 덮은 책을 다시 펼쳐본다.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이라는 부제는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이 책의 중요한 포인트는 한국인이 쓴, 한국 사회의 모멸 현황과 감정의 근원을 파헤친 책이라는 것. 이 나라에서 모멸감은 너무나 쉽게 느낄 수밖에 없는, 산재한 평범한 현상이며, 그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다양한 현상과 근거를 들어가며 서술한 김찬호의 성실함이 참 돋보인다. 적재적소에 인용한 사회학, 자기 계발서, 시, 고전문학 등에서 발췌한 글들 역시 감동이다. 무엇보다 문장이 너무나 쉽다. 게다가 따뜻하기까지 하다. 이런 글들은 참말이지, 닮고 싶을 뿐이다. (한숨)

책의 마지막에 첨부된 음악이 신선했다. 한 작곡가가 이 텍스트의 열 부분을 주제로 했다는 열 편의 음악을 아직 다 들어보지 못했지만 누군가의 공감을 음악으로 읽는다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이 역시 또 다른 이 책의 리뷰일 테니. 언제나 누군가의 리뷰는 나를 기쁘게 한다. 공감, 그것은 모멸감의 가장 대척점에 있는 강력한 감정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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