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구왕 서영
황유미 지음 / 빌리버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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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사람들은 참 살기 힘들다. 세상의 폭력적 흐름에 늘 의문을 제기하고 함께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대로 맞닥트리자니 그들은 너무 소수, 크게 티 안 내고 이 물결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다섯 개의 단편, ‘피구왕 서영’ ‘물 건너기 프로젝트’ ‘하이힐을 신지 않는 이유’ ‘까만 옷을 입는 여자’ ‘알레르기’는 모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굳이 정리하자면 그중에서 여자 사람의 이야기.

표제작인 《피구왕 서영》은 누구나 겪었음직한 예민한 교우관계를 다룬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주류의 권력, 여기서도 자아를 지닌 예민한 여자애들은 고통스러워하지만 자기 나름의 거부권을 행사한다. 무엇보다 이 단편을 인간관계로 고통스러워하는 사춘기 여자애들에게 권하고 싶었다. 무엇이 부끄러운 것이고 부끄럽지 않은 것인지 간접적으로 깨달으라고. 적어도 작중의 윤정이처럼 주류의 눈에 벗어나 고생하는 아이, 수현이처럼 모욕적인 별명으로 불리며 마음 상해 하는 아이들이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물 건너기 프로젝트》는 뻔하긴 했지만, 딸이어서 아들 동생에게 서러움을 겪은 세상의 모든 언니들에게 바치고 싶을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아들이어서 딸이어서 구분하는 남녀 차별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한 사람의 세계에서 한 세계의 차별은 세상의 전부라고. 그러한 세계가 분명 존재하는 현실에 이 단편은 약간의 의미 있다. 『82년생 김지영』이, 이 단편이 허구라고 하는 이들의 안녕이 부럽다는 이, 분명 존재하리라. 의외로 여럿.

《까만 옷을 입는 여자》는 내가 친절하던 우리 회화과의 선배 언니, 노량진 미술 임용계에서 ‘깜장드레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그녀를 떠올리게 했다. 옷에 신경 쓸 시간이 없고, 시선을 피하고 싶고, 자신을 공부에만 집중하게 하고 싶었던 늘 검은 긴 원피스의 언니. 아주 짧은 시간에 임용을 합격해 선배 교사가 된 그녀를 생각하며 조금 그리운 시간을 가졌다. 언니의 마음이 이 까만 옷의 여자와 꽤나 비슷하였으리라. 피구왕 서영의 윤정처럼 늘 조용히 구석에 처박힌 나에게 시선을 두고 격려하던 고마운 사람이 나에게도 있었다.

언제나 생각한다. 둔한 사람으로 산다면 얼마나 세상 사는 게 편안할까. 좋은 옷 입고 맛있는 것 먹고 잠 잘 자는 것만으로 행복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그게 안 돼서 전전긍긍하고 속을 끓인다. 세상에는 이런 예민한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조용히 숨어 있다가 이런 글을 쓴다. 『피구왕 서영』의 저자 황유미 역시 나와 같은 종족이다, 분명. 나는 십만 원을 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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