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의 역사 - 상속제도는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는가
백승종 지음 / 사우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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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마감시간에 늦지 않으려 허겁지겁 병원문을 열고 들어간 병원, 대기자 리스트에 ‘홍길동’이란 이름이 떠 있어 깜짝 놀랐다. 홍길동이라니, 본명인가? 의사 선생님 휴식시간을 위해 올린 이름인가? 진료를 마치고 간 약국, 역시 내 약봉투 앞에 선 약봉투의 주인공은 ‘홍길동’이었다. 조선 시대 사회적 지위와 상속에서 차별받은 서자의 대표자, 놀라움과 함께 서글픔이 올라왔다. 『상속의 역사』에서는 이런 서자의 사회차별은 ‘기득권층이 권력과 재산을 독점하기 위해 창안한 사회적 장치’라고 말한다. 물론 그러다가 서자들이 위인들 중 상당수가 되었다고 하니 ‘웃픈’ 이야기이다.

인간은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이므로 이들의 세계에서 차별과 배제는 본능이 아닌가 싶다. 사람 둘만 모여도 갑과 을이 생긴다. 자연히 서넛이 모이면 차별적 계급과 배제가 나타난다. 상속(相續)은 바로 이런 인간의 이기심과 자기 계급을 지키기 위한 재산권 이야기. 그리고 재산은 이기적 자연상태에서 나날이 격차가 나는 것이 당연지사. 『상속의 역사』를 서술하는 류승종 저자의 이야기는 강력하다.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는 악화일로에 있다. 그 문제를 역사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쓴다.” 즉, 이 책은 ‘상속’으로 바라본 역사서이다.

책은 모두 3부로, 1부 《상속의 민낯》, 2부 《상속의 전략》, 3부, 《상속과 젠더》로 분류. 각 부마다 사회계약과 다름없던 상속, 합리적이거나 전략적인 다양한 상속제도, 상속과 성차별을 다룬다. 연금제도가 시작될 때에야 사라진 부양계약서, 유언장 혹은 은퇴계약서 이야기로 시작된 이야기는 마지막 한국의 여성상속 미래예시 이야기로까지 소소하게 재미있다.

상속은 모두 ‘재산의 이동’ 이야기이다. 어떤 나라에서건 도시에서는 돈이 몰렸고 소수의 자수성가 부자가 탄생했고, 다수의 도시빈민이 늘어났다. 서양에서 꼬마신랑이 없는 이유는 동양과 상속 문화가 달랐기 때문이다. 동양에는 아주 어린나이에 결혼하여 부모 아래서 차츰 성인의 권리와 의무를 배웠다면 서양에서는 상속재산이 결정되어야 결혼할 수 있었기에 서른이 넘는 노총각들이 수 없었다. 한편 어린 여자들이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은 지참금으로 상속이 일찍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산상속을 못 받은 남자, 지참금 없는 여자들은 평생 홀로 살았다. 결혼과 재산‧상속과의 연관성은 이렇게 컸던 것이다. 그러니 부모와 자식, 친척간 법적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래서 입양이나 대부모 제도가 발달했고, 종가가 큰 권력을 가졌으며, 길드나 대학이 발생했다. 종교기관 역시 나름의 역할을 했다. 부부간의 관계 역시 재산을 지키는 데 중요했다. 이혼 금지에는 지참금 문제가 있었고,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 levirate marriage)에는 과부의 복지 문제가 있었다. 일부다처제와 일처다부제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을 지키는 건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도 중요했다. 물론, ‘여자’ 역시 재산의 일부다.

이 ‘상속의 역사’ 끝에 다다른 지금은 어떤 문화 가운데 있는가, 『상속의 역사』에서 말하듯 ‘지금도 자력으로 부자가 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니, 무엇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경제가 큰 폭으로 성장하는 격동의 시기에도 한 사람의 개인이 부자가 되는 데는 상속만큼 결정적인 요소는 없다. 한국 역사상 21세기처럼 경제활동의 기회와 종류가 다양한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요즘처럼 개인의 의지와 능력에 따라서 자수성가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갖추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자력으로 부자가 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저자는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는 악화일로에 있다. 그 문제를 역사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쓴다”고 말한다.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저자의 겸손한 소망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금수저’의 대물림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리곤 한다. 안타깝게도 부와 가난의 대물림은 유사 이래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온 오랜 관습이다. 지금 우리가 금수저의 불평등을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인식하는 것 자체가 실은 새로운 현상이다. 사회 정의에 대한 우리의 목마름이 그만큼 커졌다는 증좌다. 세상이 그만큼 좋아졌다거나 나빠졌다고 함부로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사회적 감수성이 높아진 것은 다행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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