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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경기도민의 아침은 죽음과도 같다. 그 중에서도 주말 아침은 또 달리 그렇다. 토요일 아침 20분 간격으로 서을을 향하는 광역버스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두렵기 그지없다.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사람들 가운데서, 텁텁한 공기와 찌든 담배 냄새, 죽음을 생각하기 좋은 이 공간 안에서 나는 책을 읽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 아침은 정말 그랬다.
우리나라에서 ‘서울대’ 교수라는 명함은 지위 뿐 아니라 특권의 보증수표다. 공부하는 이들이 기대할 수 있는 위치의 최고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라. 그 단어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당연히 ‘꼰대’일 텐데, 그런 그들에게서 억지웃음이 아닌 진심어린 폭소를 얻어낼 수 있다니. 지난 가을, 김영민이라는 특색 없는 이름이 지닌 칼럼니스트는 그렇게 문자중독-신문을 읽는 우리들을 강타했다. 폭발적인 관심에 들뜰 만도 한데, 이 저자는 평화롭게 칼럼을 지속하더니 세련되게 또 칼럼을 마무리 지었다. 분명 부담스러웠으리라.
“그리하여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생활에서는 멀어지지만 어쩌면 생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같은 글줄을 보면 저자에게 더없는 호감이 간다. 언제나 죽음에게 말을 건네는 인간이며, 언제나 죽음에 등을 맞대고 살아가는 인간. 그래서 오늘 하루에 더 기를 쓰는 인간. 그 역시 나와 같은 종류의 인간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왜? 왜 내게는 유머가 없는가? 왜 나는 안 되는 것인가?
주로 ‘칼럼’을 묶은 이 에세이집의 장점은 역시 즐거움이다. 글을 읽는 내내 술술 읽히는 글의 ‘재미’를 생각했다. 어쩜 이렇게 예리한 유머를 구사할 수가 있는지 감탄을 그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용이 밝고 즐거운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죽음, 슬픔, 고통에 대한 위로가 이 책의 목적이며 정조다. 학교와 학생 사이에서 느꼈던 무력함과 지식에 대한 허무 역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사실, 뒤로 갈수록 책의 내용이 아쉬웠다. 오히려 칼럼으로 책을 모두 구성하고, 인터뷰는 부록으로 짧게 넣었으면 좋았을 것을, 저자의 신춘문예 당선 영화평론과 다른 평론, 저자의 인터뷰 기사가 너무 많은 분량을 차지하다 보니 책의 일관성이 깨져서 완성도가 떨어진 느낌이었다. 책을 읽으며 느낀 저자의 성격을 고려하자면 (더 기다려서 다른 글을 덧붙이더라도) 일관된 느낌의 책을 원했을 것 같은데, 출판사에서 약간 급하게 책을 낸 게 아닐까 싶었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 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지’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살아 있는 시체여, 죽음을 생각하며 재미와 의미를 찾아라.” 지금 살아 있는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즐겁지는 않아도, 적어도 괴롭지는 않은가? 소소한 근심을 감각하는 지금, 나는 살아 있다. 그 감각이 그렇게나 대단한 것이다. 어쩌면 나는 곧, 소소하니 웃을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