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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김애란의 천진한 슬픔을 부러워했다. 산만한 언어놀이로 슬픔을 짓고 노는 달인, 그게 내게는 김애란이었다. 이 산만함이 개성을 불러일으켰고, 천천히 글줄을 따라갈 때 한숨을 내쉬었다. 불편한 가독성이 주는 환상이 있었다. 허나 최신작 『바깥은 여름』은 어떠한가, 첫 에피소드부터 나는 부드러운 슬픔에 매끄럽게 빠져들었다. 아들을 잃은 첫 작품 「입동」부터 남편을 잃은 끝 작품 「어디로 가고 싶으신지요」까지, 나는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상실(喪失)’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에피소드는 지극히도 현실적이고 그럴 만하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건과 사고와 깨달음과 터져나오는 고통이 지극하다. 아들을 잃은 부부가 받은 보험금으로 받을 수 있는 오해(쑥덕거림), 아이의 흔적을 발견했을 때 무너지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아픔과 위로. (「입동」) 따뜻한 강아지에게서 받는 절대적 위로, 그러면서 ‘죽는 게 아플 정도로 아픈 건 도대체 얼마나 아픈’ 건지 몰라, 생활 때문에 그의 고통을 배신한 욕망과 어리석음. (「노찬성과 에반」) 현실 앞에 선 남녀의 남루함, 어려움을 함께 겪은 사랑이 희미해질 때 배신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기를 쓰는 한 사람의 변명 아닌 안도감. 헤어진 부모를 각각 모시며 지친, 거기에 자기 뒷통수를 친 교수 때문에 배신감을 느끼는 아들이 아버지의 남루함과 남들 다 하는 전형적 연애를 하는 모습을 보고 (전형적) 풍경의 쓸모가 무엇인지 웃는 순간 (「풍경의 쓸모」) 계곡물에 휩쓸린 아이를 구하려다 함께 떠나간 남편에게 느낀 배신감에서 ‘장미색 비강진’으로 몸까지 휩쓸어버린 원망, 다시 사랑을 발견할 때의 무너짐, ‘당신이 보고 싶은’ 그리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들이 담백한 슬픔을 촘촘하게 드러낸다.
나는 문학의 처음과 끝이 슬픔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슬픔에 뿌리박고 피어나는 꽃이라고 믿는다. 중앙쯤 삽입된 「침묵의 미래」가 전체 흐름상 약간 튀는 느낌이었지만 앞뒤를 빼곡이 채운 잔잔한 슬픔의 단편들이 이 책을 투명한 눈물 빛 BLUE이게 한다.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 그것이 슬픔이고 또한 기쁨이다. 일상은 무미건조하지만 그렇기에 슬픔은 깨어지듯 아프고 기쁨은 눈부시도록 환희에 넘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이 지금 내게 고통이나,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삶이 그들에게는 평화였다. 이 모든 것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제멋대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대개, 그런 일이 이러날 때 우리는 슬픔을 겪는다. 기쁨 뒤에는 꼭 슬픔이 따라오는 법이므로. 그리하지 아니할 수 없다. 우리의 삶에서 눈에 띄는 것은 대개 슬픔과 기쁨이다. 그리고 내가 상실한 많은 사랑들이 너무나 그리워졌다. 눈가가 흐려졌다.
편지지 위 삐뚤빼뚤한 글씨를 좇다 나도 모르게 눈가가 흐려졌다. 눈앞에 얼룩진 문장 위로 지용이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살려주세요. 소리도 못 지르고 연신 계곡물을 들이키며 세상을 향해 길게 손 내밀었을 그 아이의 눈이 아른댔다. 당신을 보낸 후 줄곧 보지 않으려 한 눈이었다. 나는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아직 화가 나 있었다. 잠시라도, 정말이지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생각은 안 했을까. 내 생각은 안 났을까. 떠난 사람 마음을 자르고 저울질했다. 그런데 거기 내 앞에 놓인 말들과 마주하자니 그날 그곳에서 제자를 발견했을 당신 모습이 떠올랐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당신을 보낸 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중략) 허물이 덮였다 벗어졌다 다시 돋은 내 반점 위로. 도무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얼룩 위로 투두둑 퍼져나갔다. 당신이 보고 싶었다. (김애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바깥은 여름』, P.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