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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연인
김현경 지음 / 책읽는오두막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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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는 좋아하지만 김수영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김수영 김수영 하는 것도 이해한다, ‘시알못’ 내게도 그의 시 정신은 가히 강인하고 혁명적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가슴이 뜨거워서 버거운 인간이다. 나랑은 먼 인간이다. 내게 김수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이한 인간’이었다. 다른 인간과 어울려살면 안 되는. 사랑을 하면 할수록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인간. 굳이 화가와 비교하자면 ‘빈센트 반 고흐’나 ‘뭉크’ 같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들과 김수영이 다른 것이 딱 하나 있다. 김수영에게는 그를 전적으로 감당했던 아내가 있었다는 것. 단 한 사람의 존재 덕분에 김수영은 죽기 전날까지 아내와 새벽 세 시까지 충일한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마음에 아쉬움 없이 세상을 뜰 수 있었다는 것. 그는 명실공히 ‘설움’의 시인, 적어도 그에게 사랑을 못 받은 데 대한 서러움과 아쉬움은 없었을 거다.
『김수영의 연인』 김현경 여사는 첫 장에 《나는 시인의 아내다》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녀가 얼마나 그 호칭을 자랑스럽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2장은 《내가 읽은 김수영의 시》, 이후로 이어지는 내용들은 대개 김수영 시를 선정한 후 관련된 에피소드를 첨부한 것으로, 이 시를 쓸 때 김수영이 어떤 상태였는지를 알려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힘든 사람이었다는걸. 정말 김현경이 아니었으면 그 어떤 여자도 받아주지 않았을 거라는걸.
나는 김현경 여사도 김수영과 비슷한 부류의 인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김수영이 워낙 ‘똘기’를 감추지 못하니 상대적으로 자기 ‘똘기’를 남편을 다독이는 데 사용했을 뿐. 그래서 오직 그 여자만이 그 남자를 감당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보통 여자가 그게 가능했을 수 없다, 일 년도 못 견디고 도망쳤다는 데 십만 원 건다.
김현경은 김수영의 모든 기행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사랑한다, 그 행동들을 모두 아름답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행동을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아무리 좋게 봐 주려도 김수영의 삶은 아름답다 말 못 하겠다. 무엇보다 길거리에서 뜬금없이 아내를 마구 때렸던 것 (나는 강신주의 해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에게 어떤 설움이 있었을지 모르나 육체적 힘의 차이가 있는 남녀 간에 그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이유로라도.
김수영은 위대한 시인이었으나 남자로서는 참으로 이기적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상위 0.00000000000000001% 나쁜 남자다. 그런데 그가 한 여자에게 받아들여졌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기적이건 뭐건 희한한 사건이다. 첨언하자면 김현경 여사도 희한한 사람이 맞다. 온 동네 문인들이 다 그녀의 사랑을 얻고자 매달렸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사람과 사람의 화학 작용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내게도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말 것, 0.000000001% 어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