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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4 - 1부 4권 ㅣ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4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의 삶은 평화로운 적이 드물다. 앞서 윤씨 부인과 봉순네 등 서희의 방패가 되어주던 어른들이 호열자로 사망하자, 서희의 재종인 조준구가 최 참판 댁을 접수한다. 최 참판 댁은 조 참판 댁으로 불릴 정도로 과거의 영광을 잃고, 조준구는 무참하도록 악행을 저지른다. 그는 이미 망해버린 나라에서 친일파로서 자기 자리를 잘 잡는다. 절대 악이다, 그 누구도 그에게서 호의를 기대할 수 없다. 어느 날 수동이조차 사망하자 서희는 막다른 데 몰린다, 조준구가 자기 아들과 결혼시켜 그녀를 허수아비 만들려는 계략을 세우나 버티기가 힘들다. 봉순이와 길상이로는 무리다. 조금 컸다 해도 역부족이다. 봉순과 길상은 서로 끌리는 마음을 어찌할 줄 모르나,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지 모른다. 이 감정이 너무나 강력해서, 자기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도 모르는 게 사랑과의 첫 만남이다.
김훈장과 윤보, 이용은 의병을 일으킨다, 길상이도 이에 함께 한다. 조준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은 산으로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생겼다. 아무리 고민해도 방법이 없다, 여기를 떠나는 것밖에는. 그들은 간도행을 결심한다, 서희와 가족들을 설득하고자 한다.
월선이는 생사를 모르는 용이를 애달피 기다린다. 임이네는 남편 용이가 어찌 되었든 제 살 길 찾기에 바쁘다. 오히려 월선이를 이용해 배불리 먹고살려 한다. 용이의 아들 홍이는 월선이보고 ‘간도댁옴마’라고부른다. 용이를 닮은 홍이 손을 쥐어보며 월선이는 애틋함을 느낀다. 내 연적의 아이인데도 내가 사랑한 남자의 아이이기에 그런 애정을 느끼는가. 나는 월선의 마음이 조금 두려웠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큰마음이기에 그랬다.
“이자 다시는 떨어지지 말자.”
“야, 야.”
꿈결처럼 잠꼬대처럼 대답한다.
“이대로 죽어부맀이믄 싶다.”
눈물에 흠뻑 젖은 얼굴을 부비며 용이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잊은 듯, 풍랑의 바다에서 항구로 찾아온 듯 격렬하고 평화스럽게 희열하며 몸을 불태운다. 이윽고 사내는 재[灰] 속에 묻혀 들어가고 여자는 불안을 안고 일어서려 한다.
“임자.”
빠져나가려는 몸을 끌어당긴다. “많이 야빘구나.”
“늙어부맀소.”
“늙으믄 우떻노? 우리 함께 늙는데.”
용이와 월선은 재회한다. 월선이 그렇게 큰마음을 지닐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사랑받았던 경험 때문이며, 마지막까지 사랑받았다는 확신이 아니었을까. 이 답 없는 두 사람은 계속 한심한 사랑 노래를 부른다. 반란이 들켜 목숨이 위태하고 당장 간도로 도망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사람의 온기는 절대적인 거다. 사람은 그렇게 위태한 존재다.
“봉순아.”
“…….”
“우리 거기 가믄 호, 혼인하자. 어떡허든지 무사하게 진주로 가야 한다!”
“…….”
“내 맹세하라믄 하, 하지.”
그러나 봉순이는 뛰기 시작했다.
“봉순아!”
부르다가 풀이 죽어서 뒤돌아보았을 때 용이는 강가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용이 떠난 뒤 봉순이는 길상을 만나지 않았다. 월선을 사이에 두고 연락을 취했을 뿐, 길상은 여러 번 월선을 통해 봉순이를 만나려 했으나 허사였다. 백주에 나다닐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월선의 집을 낮에 다녀가는 봉순을 만날 도리가 없었다. 설마 한 번쯤 와주겠지 하는 기대 때문에 기회를 놓치기도 했었다.
봉순이는 길상을 못내 외면한다. 마음과 마음이 끝까지 마주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서로의 마음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이건 머리로가 아니라 혼으로써 아는 운명 때문이 아닐까.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정확해도 운명이 허락하지 않으면 생의 갈 길은 못 간다. 그건 알 수 없는 힘이다. 오해처럼 보여도 그건 정확한 힘이다. 지금 당장은 확신하지 못하지만 길상의 마음은 봉순에게 100퍼센트가 아니었으니. 봉순이도 길상이도 그리할 수밖에 없는 거였다고 생각한다. 조금 살아본 모두가 알지 않는가, 세상에는 얼마나 이러한 엇갈림이 많단 말인가.
천질인지 혹은 다만 병적 체구 탓인지 병수는 감수성이 빨랐다. 직감은 정확했고 본능적으로 상대방의 특질을 파악한다. 단순히 선악의 기준에서 파악한다기보다 사람들 성격의 빛깔이랄까 분위기랄까, 의식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 지극히 탐미적인 요소를 띤 느낌 같은 것이라 할까. 시원찮은 선생이었으나 이초시한테 소학(小學)을 배우고 통감(通鑑)을 떼고 사서(四書)를 배우면서 도덕률에 의한 가치를, 인간 행위의 존엄성을 헤아리는 의지를 지각하게 된다. 실로 병수는 조상이 남겼을 가풍에 접한 일이 없었고 부모의 훈도를 받은 일이 없었으며 스승의 인격을 느낀 바도 없었으나 옛날 성현의 글, 그 행간 행간에 배어난 위대한 사상을 가르치는 사람의 의도를 훨씬 넘어서 흡수하고 깨달으며 비약하고 상승해갔다. 물론 십오 세라는 나이의 한도에서 우수했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자질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석으로 함께 기거하는 이초시도 병수 내부에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엿보지 못했고 부모 역시 그러했다. 관심이 없었다는 것도 이유겠으나 그들은 모두 어느 면으로서든지 범속한 인물들이었으니까.
나는 사람이 날 때부터 종류가 정해진다고 믿는다.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과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의 종족이다. 병수는 몸이 부자유했지만 감각은 탁월했다. 그도 나처럼 사람을 색과 분위기로 읽는 사람이다. 무어라 정확히 분류할 수 없지만 수용과 비수용으로 감각하는 인간 종족. 그들의 삶은 둔하지 못해 편치 않다. 병수 역시 고단한 생을 살아가리라. 그는 고단한 몸을 넘어서 큰 그릇을 열어 살아가리라. 범속한 인물들은 그런 인간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아니 결코 알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