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2 - 1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2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모든 문학은 인간의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된다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속성은 드러난다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존재이며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수많은 단면들이 합하여 한 인간을 이룬다는 것이다우리는 이 인간에게 연민을 느끼고 정()을 주며끝내는 사랑하게 된다소설에서 익히는 인간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인간과 너무나 닮았다이것이 우리가 문학에 빠져드는 이유우리는 소설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던미처 알지 못하던 인간성을 발견하게 된다
 
박경리는 토지의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을 살갑게 빚었다어느 구석을 읽어봐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초반부에서는 용이의 기품이 특히 드러난다그 역시 최서희에게 매일 당하는 봉순이처럼 최치수에게 설움을 당하며 어린시절을 지냈다그를 달래던 어머니과 어린 시절 사망한 누이 서분의 이야기강청댁과 결혼하게 된 배경도최치수는 용이와 함께 자라며 그의 드높은 인간다움을 전적으로 깨닫게 된다사람의 신뢰(信賴)는 행동 하나하나로 설명하고 납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신뢰는 오직 함께함에서 나온다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용이는 나중에 월선이 머물던 주막의 지붕 이엉까지 갈아준다그녀의 집이 낡아가는 것이 마음이 아파서월선에게 옷을 입혀주는 것처럼그건 월선이 한시바삐 자신에게 돌아오기 바라는 주술이었는지도 모른다용이 같은 남자에게 끝까지 사랑받을 수 있다면 이 사랑이 아파도 세상을 얻은 것과 같으리라
 
사람이 존엄하다는 것을 용이 놈은 잘 알고 있지요그놈이 글을 배웠더라면 시인이 되었을 게고 말을 타고 창을 들었으면 앞장섰을 게고 부모 묘소에 벌초할 때마다 머리카락에까지 울음이 맺히고 여인을 보석으로 생각하는그렇지요복 많은 이 땅의 농부요.” 

사명감이라는 것도 식자깨나 배운 놈의 허울 좋은 겉옷이요헤치고 보면 크게 격차 나는 게 아니지사람의 존엄이란 능동에 있는 게 아니며 이치에 대한 피동에서 지켜져 나가는 게야.’‘학문이 진리를 찾는 것이기는 하되 반드시 진리가 이롭고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니네학문하는 태도 역시 이롭고 보탬이 된다는 생각이 앞선다면 장이 바치에 떨어지고 마는 법규격에 맞춰 틀에 끼울 것이 못 되지진리는 만인이 함께 가질 물건은 아니거든이 손 저 손 넘어가는 동안 쇠퇴되고 시체가 되고 썩어버리고 마른 허울만 남고 종국에는 얼토당토않게 본뜬 물건이 나타나서 만인을 호령하게 되는데 그것에 영합되면 학자는 학자가 아닌 동시 우중과 위정자들의 공범자가 될 수밖에 없지.’ 
 
윤씨부인 역시 말 못할 사연 있는 사람이다. “나를 용서하시오살아주어서 고맙소.” 이 한 마디로 늙은 여자의 눈에 늙은 남자는 소년 같은 미소와 부드럽고 가냘픈 몸집으로 변모한다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다남자의 일방적인 관계였지만 자신이 낳은 아이의 아버지라는 것 때문에 마음이 이렇게 변화하는가이 남자 때문에 그녀에게 비밀이 생겼으며아들에게 못할 짓을 하게 된 것이다어머니와 최치수의 갈등도 나타난다최치수 역시 마음이 불일듯하다. ‘가 어디 있는지 어느 정도 확신이 섰다알지만 모르는 척 해야 하는지끝까지 캐물어 확인해야 하는지두 사람 사이에서는 푸른 칼과 칼이 맞닿는 것처럼’ 긴장으로 불꽃이 튄다살다 보면 이렇게 애매한 채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서로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해야 옳다는 걸 두 사람 모두 안다그게 두 사람을 지키는 방법이다서로 아끼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이 문제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순간 이 소중한 거리는 깨어진다이 모자는 서로에게 끝까지 거리를 두었다누군가는 이 모자가 불행하다고 말할지 모르나나는 이것이 그들의 최선이었다고 믿는다도대체 그 누가 그 사람의 최선을 최선이 아니라 판단할 수 있는가사람의 세상은 그 어디에도 정답이 없다하동 평사리 하늘을 찌르는 윤씨부인과 최치수라 해도 뭘 어떻게 할 수 있었겠나그게 이 세상이 허무하도 두려우며 아프고 씁쓸한 이유다살기 싫은 이유다
 
신심이 없으면서 칠성이는 부처가 두려웠다촛불을 받으며 무수히 머리를 조아리는 귀녀의 옆모습은 처절하고 아름다웠다칠성이는 그 얼굴이 두려웠다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달려들어 초를 넘어뜨리고 싶었다그러나 옴짝할 수 없다이윽고 귀녀는 나긋한 손을 들어 마치 바람에 날리는 꽃잎같이 촛불을 껐다칠성이 입에서 깊고 긴 숨결이 토해졌다

음란도 이 여자에게는 죄가 아니었다거짓도 이 여자에게는 죄가 아니었다살인도 이 여자에게는 죄가 아니었다오로지 소망을 들어달라는 다짐만이 간절했을 뿐이다신은 이 여자에게는 악도 선도 아니었다오로지 소망을 풀어줄 수 있는 능력영험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한 일이었을 뿐이다.
 
한 여자의 욕망이 시커멓게 뜨거워서 눈에 띈다귀녀라는 여자최참판댁의 하녀인 그녀는 자기 처지를 미워하고 신분상승을 하려 불법을 저지른다부처님도 두렵지 않았다사랑도정조도 필요 없다이 여자를 이용해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남자들도 등장한다그녀를 이용하려고 했다가 나중에는 그녀에게 휘둘리지만 말이다
 
비단과 누더기를 구별하는 따위의 자존심야수 같은 강포수에의 허신과 인간쓰레기 같은 칠성이와의 동침을 거치면서 마지막까지 최치수에게 여자 대접을 받고자 하는 희망은 애정일까 허영일까 또는 집념일까악업(惡業)을 쌓기 위해 목욕재계하고 동자불 앞에서 도움의 기도를 올리던 귀녀모든 것은 밖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고귀함도 염원도 사랑도 밖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밖만 싱그러우면 마음속의 쓰레기는자기만이 아는 쓰레기에는 냄새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그래서 이 여자는 고독한 여자가 아니었던 것이다한밤중에 죽음을 생각해보는 여자도 아니었던 것이다부처님이 무섭지 않은 여자였던 것이다
 
욕망이 커지면 마력이 생기는지도 모른다귀녀는 마녀 같은 여자다놀랍게도 거기에 단 하나이런 (가치 없는여자를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남자가 나타난다이거야말로 기적이다강포수는 스무 살이나 차이나는 어린 귀녀 때문에 애가 닳아 한다어울리지 않아도 그녀가 자기를 돌아보지 않아도 이 마음을 어째야 할지 몰라 가슴이 녹는다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귀녀를 자기 사람으로 맞고 싶어 그녀의 주인 최치수에게 굽신굽신 충성을 다한다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메커니즘과 유효기간을 참 알 수 없다사랑은 하늘이 내리는 게 확실하다. (한숨
 
2권에서 드러나는 여성들은 참으로 하나하나 불행하다일찍 돌아간 용이의 동생부터 성희롱을 당하다가 자칫 죽은 것처럼 폭행을 당하는 봉순이사랑받지 못해 추하도록 발악하는 강청댁죄를 지은 남편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한 임이네와 함안댁까지상태 안좋은 남편을 보필하며 참고 참아가는 여자들은 그녀들의 삶이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을 실감하게 한다그래서 그녀들은 더욱 남편의 애정에 집착하였나남편을 (더 멋진 사람으로포장하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버텨야 했었나 싶다
 
사는 건 정말 알 수 없다당장 내일 일을 모르는 나 역시 같은 한숨을 쉰다겨우 2권까지 읽었지만 인간의 생은 제각각 너무 설명할 수 없어 슬프다이 알 수 없음이 인간의 생을 설명하는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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