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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독서 - 그림으로 고전 읽기, 문학으로 인생 읽기
문소영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월
평점 :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를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햄릿』을 몇 번쯤 읽었지만 ‘오필리아의 죽음’은 그저 문서상의 일이었다. 이미지의 힘은 크다. 밀레이의 걸작은 내가 상상했던 단아한 여자의 미친 아름다움을 뛰어넘은 강력한 충격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오필리아는 붙들고 있던 버드나무 줄기에서 미끄러져 죽는다. 버드나무는 ‘버림받은 사랑’을 의미하며, 여자의 목에 걸린 제비꽃은 신의와 순결, 요절을 상징한다. 오필리어의 오빠 레어티스는 동생을 ‘오월의 장미’라고 불렀다. 그림의 한켠에는 흰 장미가 만발했다. 여자의 손에서 떠나가는 양귀비는 죽음과 잠을 의미한다. 오랑캐꽃은 헛된 희망을 의미한다.
화가는 그가 아는 모든 상징을 활용하여 그림을 완성한다. 그림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연결해 오필리어의 죽음을 뜻으로 채우기 바란 것이다. 밀레이가 속해 활동하던 라파엘 전파는 문학을 그림으로 옮기기 좋아했다. 자연히 화가의 상상별로 다양한 오필리아가 존재했다. ‘오필리아’를 경험할수록 나의 햄릿력(力)은 넓고 강해졌다. 다양한 오필리어가 여러 얼굴과 여러 표정을 하고 다양한 목소리로 연약한 생을 내던진다.
그림이 아니라면 몰랐을 문학은 더욱 많다. 그림을 보다가 반복해 나오는 이름들. ‘아리엘’을 통해 <템페스토>를 알게 되었고, ‘퍼크’를 통해 <한여름밤의 꿈>을 읽었다. 반복되는 주제 <무자비한 미녀>를 통해 요정의 시와 기사에 대한 인식을 알았다. 때로는 주먹구구로, 때로는 수박 겉핥기처럼, 때로는 기초부터 착실하게 그림과 문학을 배웠다.
미술사는 ‘인문학의 꽃’이다. 역사 뿐 아니라 사회와 경제 등 당시를 지배한 문화 맥락을 알아야 그림을 깊이 즐길 수 있다. 당연히 고전문학 역시 그림과 얽혀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림만 보았던 나보다 문학도 읽은 후의 내가 작품에 더 깊이 빠져들고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명화독서』에는 내가 사랑해 온 그림들이 그득히 들었다. 내가 몰랐던 그림도 여럿 있었다. 목차를 훑어보자, 빼곡이 문학의 이름이 들이차 있다. 구석구석 잘 데려온 인용도 볼만하다. 그림은 문학과 결합하여 넓고 깊은 공간을 만든다. 3D가 되고 4D가 된다. 연극 스틸컷도 나오고, 영화 포스터도 나오고 동화 일러스트레이션도 나온다. 일본의 우키요에도 중국의 책가도도, 당연히 우리 나라 전통회화와 근대유화도 등장한다. 머릿속 시각문화는 폭을 넓혀간다. 균형잡힌 이미지의 향연은 일종의 사치다.
문장은 명쾌하고 설명은 연결고리로서 적절하다. 그러나 나름 정보의 밀도가 높아서 초보독자에게 추천하기엔 부적절하다. 이미지와 문학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다면 힘겨울 수 있는 책이다. 이럴 때는 머리가 좀 빡빡하지만 잠시 쉬었다 보면 된다. 독서라는 게 즐거우라고 하는 건데 굳이 힘겨울 필요가 있나, 마음을 편하게 가져 보자. 한 번에 다 읽으려 안 해도 된다. 같은 주제로 엮인 여러 화가의 다양한 그림만 모아 보아도 좋다. 그 다음에 마음에 드는 그림의 주제부터 한 꼭지씩 읽어보는 방법도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세 꼭지나 등장하는 것이 참 좋았다. 역시 영국을 제패한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의 작가다. 박완서와 박수근의 이야기를 사랑한다. 특별히 새로울 것 없는 꼭지였지만 박수근의 다감한 인품을 강조한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오 헨리를 높게 평가한 것도 기뻤다. 가난에 시달리다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갔으나 아내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돌아온, 그리고 3년간의 감옥살이를 해낸 남자, 딸의 생활비를 위해 감옥에서 단편소설을 써서 발표한 사랑이 가득한 오 헨리를 나는 아주 편애한다. 읽다가 여러 번 눈물을 흘렸던 <마지막 잎새>를 트롱프외유와 연결할 줄은 몰랐다. 진실로 탁월하다.
성실한 저자는 성실한 책을 쓴다. 그가 읽고 쓰는 삶이 책이 된다. 밀도 높은 책은 저자의 밀도 높은 인생이다. 그런 면에서 『명화독서』의 저자와 그분의 인생이 부럽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성실을 이길 힘은 많이 없다. 더 성실치 못한 내 인생이 아쉬울 뿐. 아무래도 조만간 『명화독서』를 한 번 더 읽어야겠다. 나도 저 밀도있는 센 글을 좀 닮아갈 수 있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