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신화
닐 게이먼 지음, 박선령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거대한 세계’ 북유럽 신화를 읽으면서 얻은 감각이다. 왜일까, 그리스 로마 신화는 자부심을 느낄 만큼 샅샅이 알고 있으면서도 북유럽 신화를 접한 건 처음이다. 마블 영화에 나온다는 ‘토르’, 아날로그시계 브랜드인 ‘오딘’이 북유럽의 신 이름이라니 그간 전혀 몰랐다. 오래된 SNS 친구 ‘펜리르’의 얼굴을 상상한 적이 있다. 용사보다는 귀족의 이미지로 그를 기억했다. 그러나 그가 녹색 눈을 한 개의 이름을 빌어왔다니 친구의 취향이 새롭다. 세상은 이다지도 넓고 내가 선 곳은 이처럼 좁다. 소설가 닐 게이먼의 입담을 빌려 그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 겉핥기 했다.

그들의 세계는 거대하다. 낯선 이름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되어 몇 번이고 앞 페이지로 돌아가 확인해야 했다. 신의 세계 아스가르드, 인간 세계 미드가르드, 거인족 세계 요툰하임을 상상하느라 초반 책에 몰입하는 데 오랜 시간이 소모했다. 생각해보니 북유럽의 무엇도 아는 것이 없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화가 몇 명 아는 정도뿐. 그곳의 지형과 문화유산, 특히 건축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No No No Idea다. 자연히 내 머릿속 공간은 넓이도 높이도 색채도 장식도 제멋대로다. 신의 형상도 목소리도 내 마음대로다. 북유럽 신화의 영상물과 게임을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내 아쉬움이자 반대로 특권이랄까. 두 번 읽을 때까지 에너지를 꽤 썼다.

올림푸스의 신들과 다른 점은 명확하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보다 복합적이다. 힘의 강약이 절대적이지 않다. 무적의 신이 아니다, 지혜를 얻으려고 눈을 대가로 치를 정도로(오딘). 힘은 좋지만 어리석음의 캐릭터일 정도로(토르). 교활하기 그지없어 미움을 사면서도 사건 해결사로 활약할 정도로(로키). 완전한 선도 없고 완전한 악도 없다. 다들 그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수시로 타협한다. 보다 인간적이다. 스토리마다 주인공이 수시로 바뀐다. 상황에 휘말려 우왕좌왕하기 일쑤다. 사건은 몇 겹으로 꼬인다. 그래서 스토리가 길다. 그들이 지닌 능력 아이템도 굉장히 구체적이다.

그들은 멸망한다. 마지막 전쟁 라크나로르로 인해서. 말도 안 된다, 신도 재앙을 피하지 못하다니. 신조차도 바꿀 수 없는 재앙이 있다니 너무나 인간의 세계를 맛보고 있는 신이 아닌가. 어쩌면 이 신은 인간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의 고통을 기꺼이 도울지도 모른다. 


새로이 경험한 거대한 감각, 새로운 세계. 삶은 역시 살아볼 만한 건가, 세계가 확장되는 감각이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기쁘다. 그럴 때 조금 행복하다. 북유럽 신화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세다. 특히 영화·영상 분야에서 그래 보인다. 앞으로 만날 일상에서 북유럽 신화의 낯선 이름을 만날 때 반가웁지 않을까. 앞으로도 나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나고 확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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