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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 문제다 - 대한민국 99%의 내일을 위한 전략
김윤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9월
평점 :
토요일인 오늘도 일찍 집을 나섰다. 주말 업무를 맡아 초과근무를 달고, 1층부터 4층까지 바삐 오르내리며 일하고, 초과근무 대장에 칼같이 시간을 적고 나간다. 퇴근길 신간 뉴스를 읽다가『과로노인』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평생 단 한 번도 제대로 쉬지 못한 보통 사람들의 정해진 미래’라는 부제를 읽으며 나 자신을 떠올렸다. 가끔 비는 주말에도 회의하러 또는 심사하러 멀리 출장을 간다. 11월 말까지는 한 주도 쉴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의 심사비는 ○원이었다. 어쩌다 보니 내일도 출장이 잡혀 있다.
“더 많은 소비와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사람들은 더 많이 일한다. 야근, 연장근로를 통해 한 푼이라도 더 많이 돈을 벌려는 것이다.” 일중독 사회를 설명하는 첫 문장에 가슴이 ‘쿵’ 떨어졌다. 더도 덜도 없이 바로 내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턱없이 부족한 월급 때문에 방과후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소문을 듣고) 들어오는 강의도 주저 없이 받았다. 이제는 거절할 수가 없다. 한 번 거절하면 다음 번에는 내가 원해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월급쟁이의 중간 연봉(2225만 원, 2017.01)에 비해 적지 않은 월급을 받지만 언제나 부족하다. 기사의 숫자가 정확하다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나마 나은 형편일 나 역시도 내 빠듯한 미래를 순간순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경제적 문제는 절대적이다. 세상 천지 두려움 없는 듯한 나도, 경제력 앞에서는 다르다. 생계의 문제에 자신감이란 생기지 않는다. 『불평등이 문제다』의 저자 김윤태는 ‘흙수저 집안의, 나이 많은, 여자인’ 나를 위로한다. 네가 능력이 없어서 불안한 것이 아니라고. 이 불안의 밑바닥에는 대한민국을 침투한 ‘불평등’이 있다고.
『불평등이 문제다』는 묵직하다. 엠보싱 처리된 두툼한 표지와 파란 은박 인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용 역시 밀도 높기는 마찬가지다. 내용은 낯설지 않고 문장은 유수라 읽어내리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왜 이렇게 속도가 안 나가는가, 페이지마다 빽빽한 최신 통계 때문이고 수많은 학자들의 어록과 이론 때문이다. 한편 이것은 장점이다. 차근차근 읽어내려가면서 부분적으로 알고 있었던 경제학 용어, 시장경제 이론의 틀이 다시 짜인다. 머릿속 하얀 노트에 파란색 펜으로 필기하며 한 페이지를 채우고 넘기는 느낌이 만족스럽다. 책은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현재, 불평등이 만든 사회 현상을, 2부는 원인을, 3부는 15가지의 대안을 제시한다. 작가의 말을 빌자면, ‘불평등이 어떻게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지, 왜 사회의 불평등이 커지는지, 어떻게 불평등과 싸워야 하는지’를 쓴 책이다.
먼저, 현실을 짚어본다. 한국인은 왜 모두(?) 불행한가. 가난이 빚을 만들고 부채가 불평등을 심화한다.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 새로운 신분제 사회가 등장한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순식간에 몰락한 나는 자신이 없다. 다시 중산층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사라진 지 오래다. 고백한다. 부자가 되면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이 내게 있다고.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다음, 김윤태 교수가 말하는 것은 구조의 문제다. 한국이 불평등해진 원인은 극단적인 세계화와 자유 시장주의 논리 때문이었다. 기업은 횡포를 부리고 노조는 망가졌다.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다. 민주화의 표면 아래 불평등은 감추어져 있었으니. 그는 순수한 능력주의는 없으며, 엘리트는 결코 선하지 않다는 것, 낙수효과는 허상이라는 것을 조목조목 밝힌다. 한때 내가 철저하게 속았던 자아도취적 자기계발과 멘토링, 힐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특히 이 부분에서 저자의 능력에 감탄했다. 저자는 사회의 구조 문제를 비난하지만, 나는 저자의 구조적 설명 능력에 환호한다. 머릿속에 잘 정리하지 못해 갑갑해하던 부분을 번호를 붙여가며 시원스레 설명해주는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불평등한 한국의 새판 짜기’라는 제목이 인상적이다. 정말 이것이 가능할까? 나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꿈꿔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 평등의 개념이 정리된다. 형식적 평등, 기회의 평등, 결과의 평등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은 중요하다. 자기가 원하는 평등과 자신에게 필요한 평등도 구분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노동권’을 강조한다. 제대로 일하고 제대로 대가를 받고, 인간다움을 누릴 수 있는 삶을 원하는 것이다. 저자가 부르짖는 것은 또한 ‘복지국가’다. 복지에는 돈이 든다. 모든 정책은 세금에서 나온다. 세금은 결국 정치다. 그래서 국민의 조세 인식은 중요하다. 복지 확대는 돈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한숨을 내쉰다. 월급명세서에 가장 잔인한 원천징수 세금이 늘어날 것이다. 감정과 머리는 별개다. 그래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어디에나 문제의 결론은 한 곳으로 흐른다. 해답은 오직 정치다.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정책과 조세정책밖에 없다. 저자가 정책으로 제안하는 15가지 방안이 이 책의 핵심이다. 누군가는 이 대안이 새로울 것 없다 할지 몰라도 나는 무척 의미 있다고 본다. 만약 책이 빽빽해서 포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전에 마지막 열 장 정도만 읽어보기를 긴히 권한다. 바로 이 열다섯 가지 과제가 제시된 부분이다. 누구나 책을 샀으면 책값은 뽑아내야 하지 않는가. 물론 『불평등이 문제다』를 제대로 읽으려면 끝도 없다. 나로 말하자면 조목조목 간결하게 정리된 학자들의 이론과 어록만으로도 책값은 하나 아깝지 않다.『불평등이 문제다』는 “완전 킹왕짱!”이다.
사회성 부족하고 게으른 내게 독서모임은 감정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무척 중요하다. 제대로 이해하려고 철저히 재독과 삼독을 하는 책이 매달 늘어난다. 재독을 위해 흰 커버를 다시 넘기고 머릿말을 읽는다. 첫 문장을 읽고 한번 더 웃었다. “지금 어떤 유령이 한국을 떠돌고 있다. ‘불평등’이라는 유령이.”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뛰어넘는 첫 문장은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같은 책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린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너희가 잃을 것은 오로지 쇠사슬이요 너희가 얻을 것은 전 세계다” 그러하니『불평등이 문제다』의 마지막 문단, “불평등과 싸우는 노력을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평등의 가치는 도덕적으로 훨씬 더 우월하다.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는 평등한 사회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아무리 세계화, 정보화, 유연화, 노동조합의 약화, 개인화의 추세가 평등의 정치를 가로막아도 평등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0년의 세계사에서 볼 수 있듯, 앞으로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든 평등의 정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역사에서도 평등을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불평등 사회를 만든 것처럼 그것을 바꿀 수도 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에 필히 한 문장을 덧붙여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민이여 단결하라. 너희가 잃을 것은 오로지 불평등이요 너희가 얻을 것은 평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