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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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초, 진보의 열차가 다시 정거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이 열차는 아마 호모 사피엔스라 불리는 정거장을 떠나는 막차가 될 것이다. 이 기차를 놓친 사람들에게는 다시 기회가 없을 것이다. 좌석을 얻기 위해 당신은 21세기의 기술을 이해해야 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생명공학과 컴퓨터 알고리즘의 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것들의 힘은 증기와 전신기계의 힘보다 훨씬 더 강하고, 이것들은 그저 식품, 섬유, 자동차, 무기를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21세기의 주력상품은 몸, 뇌, 마음이 될 것이고, 몸과 뇌를 설계할 줄 아는 사람들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격차는 디킨스의 영국과 마디의 수단 사이의 격차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실은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간의 격차보다 클 것이다. 21세기 진보의 열차에 올라탄 사람들은 창조와 파괴를 주관하는 신성을 획득하는 반면, 뒤처진 사람들은 절멸에 직면할 것이다. (유발 하라리,『호모 데우스』)”

두꺼운 책은 언제나 부담스럽다. 제아무리 재미있는 입담(?)의 작가가 썼다 해도 말이다. 술술 잘 쓰기로 유명한 로버트 그린이나 강신주의 책이라 해도 그렇다. 『사피엔스』 역시 재미는 있었지만 끝까지 뒷심을 발휘해 읽기 쉽지 않았다. 사피엔스의 후속작이라는 『호모 데우스』역시 마찬가지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책을 샀으니 일단 진지하게, 주의가 산만해지면 목차 구조를 손으로 콕콕 짚어가며 여러 번 읽어야겠지.

목차 상의 독특했던 점은 1장이 서문격으로 분리되어 있고, 2장부터 1부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도입부 1장에는 인류가 기아와 역병, 전쟁을 극복했던 것을 설명하고, 불멸과 신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농업혁명과 과학혁명을 설명하던 전작 『사피엔스』의 내용과 같은 흐름이다. 1부《호모 사피엔스 세계를 정복하다 》에서는 호모 사피엔스와 주변 생명과의 관계를, 2부《호모 사피엔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다》에서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사상의 종류와 관계성을 설명한다. 4,5,6장은 어떻게 경제적 사회적 의미가 결국 인본주의로 흘러가는가를 말하고, 그렇게 맞게 된 7장 ‘인본주의 혁명’이 2부의 핵심이리라. 3부《호모 사피엔스 지배력을 잃다》에서는 인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를 펼치는데, 인공지능과 데이터교를 제시하여 미래를 예지한다.

“이런 식으로 데이터교는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모든 동물들에게 했던 일을 호모 사피엔스에게 하겠다고 위협한다. 역사의 경로에서 인간은 전 지구적 네트워크를 창조했고, 모든 것을 그 네트워크 안에서 수행하는 기능에 따라 평가했다. 이것은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오만과 편견을 부추겼다. 인간이 이 네트워크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했으므로, 우리 인간이 네트워크의 업적을 가로채고 우리 자신을 창조의 정점으로 보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다른 모든 동물들은 네트워크 안에서 훨씬 덜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으므로 그들의 삶과 경험은 평가절하되었고, 수행하던 기능을 멈추는 동물은 멸종했다. 하지만 인간이 네트워크에서 수행하는 기능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될 때, 우리는 우리가 창조의 정점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신성시한 바로 그 잣대가 우리를 매머드와 양쯔강돌고래처럼 잊힌 존재로 만들 것이다. 먼 훗날 되돌아본다면, 인류는 그저 우주적 규모의 데이터 흐름 속 잔물결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유발 하라리,『호모 데우스』)”

데이터교(敎)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종교는 과거의 신을 섬기지 않는다. 인간을 섬기는 척하며 지배하는 종교다. 인간은 악한 존재인데, 이 인간을 샅샅이 뒤지고 지배하는 데이터교는 얼마나 잔악하기 쉽겠는가. 뻔뻔한 구글 신과 교활한 페이스북 요정은 어느새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구글은 유튜브를 통합해서 로그인 연동을 하지 않으면 기능을 제한할 것이라 으름장을 놓는다. 페이스북은 내 맘에 쏙 들 희한한 상품들을 눈앞에 가져다주며 사라고 유혹한다. 나 같은 구두쇠도 가끔은(혹은 자주) 넘어간다. 절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이의 사진을 디밀며 친하게 지내면 어떻겠냐고 놀래킨다. 다시 한 번 ‘잊힐 권리’를 주장하며 나는 비명을 지른다. 데이터 알고리즘의 세계에는 인간세계의 다정한 ‘망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망각은 아름다운 것이며 사라지는 것은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데이터는 ‘어글리’하다. 물론 데이터는 정확하다. 내 두뇌보다 훨씬 기억력이 뛰어나고 예리하고 몰인정하고 잔인하다. 확실한 약점을 찾아내 원한다면 얼마든지 나를 파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요리조리 피해 다닐 수 있지만 그게 언제까지 가능할까. 물론 나만이 가진 불만과 불안은 아니다.

『호모 데우스』라는 제목은 당연히 반어적이다. ‘신이 된 인간’일지, ‘신이 되려다 몰락하여 노예가 된 인간’일지 아직은 모른다. 미래는 복불복이다. 낙원이 아니면 지옥일 것이고, 미래만 떠올리면 불안한 인간이 예상하는 쪽은 분명 후자이리라. 특히 유발 하라리가 강조(혹은 경고)하고 싶어 하는 것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힘이며, 종교에 가까운 데이터교에 대한 신뢰(?)다. 데이터교를 활용하여 인간은 신이 되려고 하나 그럴수록 인간은 추해질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데이터 알고리즘이 정확해질수록 인간의 판단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실수는 적나라하게 표출될 것이다. 그렇다고 믿을만한 초인간, 데이터 귀족에게 미래를 의탁할 것인가. 데이터 엘리트는 지금의 정치가와는 상대가 되지 않을 권력을 가질 것이다. 이제 인간은 색다른 고민을 해야 한다. 보잘것없어진 인간의 격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뇌를 조작하여 많은 것을 극복하는 미래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인간은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가’ 과제를 제시한다. 인간성은 지금과는 크게 다른 양상을 띠게 되리라. 인간은 어디까지 자신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어디까지 자신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글쎄, 적어도 나는 그런 작아진 인간의 나를 비추어 보고 싶지 않다.

자주 소리 없이 탄식한다. “얼마나 오래 살지 몰라서 오늘만 생각하고 살 수가 없다.”라고. 진심으로 고민한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일할 수 있을까? 내가 공부한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 쓸모 있을까. 백 세 시대에 나는 어떻게 60을 맞이하고 100세까지 살아갈 수 있을까. 너무 잘 안다. 수첩에 꼼꼼히 세워놓은 계획도 사실 다 쓸모없는 것이라는걸. 그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써보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게 미래를 살아야 하는 인간의 불안이다. 안 보려다가도『호모 데우스』같은 책을 읽어버리는 인간의 불안이다. 책을 덮으며 저자에게 묻는다. “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거야? 겁만 주고 말이야!”

책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조지 오웰의 『1984』를 여러 번 떠올렸다. 데이터 엘리트이자 ‘호모 데우스’인 빅 브라더가 아니라 그저 ‘사피엔스’인 다른 사람들이. 윈스턴과 줄리아의 연약한 투쟁이 생각난 것은 오버일까. 인간의 뜻이나 의지는 애초에 지워지고, 인간의 욕망마저도 왜곡시켜 마음대로 조종해낼 수 있는 시대에, 거기에 값하는 인간성은 더 희귀해질 것이다. 무엇이든 지불해보려 하다가도 또한 패배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슬프지만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이 실은 물질적이고 물리적인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책, 그러한 인간의 미래를 예측하는 책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동일하다. (저 무서운 꼴을 다 보도록) 너무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는 것. 책에서 비추어주는 실로 정확한 미래가 오기 전에, 아니 온 이후에라도 내가 뜻하고 사랑하는 방식을 고집하며 살고 싶다. ‘호모 데우스’의 세상에서 불가촉천민인 ‘사피엔스’로 살게 되더라도 내가 원하는 모습을 잊고 싶지는 않다. 나 자신을 ‘나는 절대적인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 내가 바라는 사람을 ‘나의 절대적인 사람’으로 정의하는 것. 패배의 마지막까지 고집하고픈 내 미래가 있다면 분명 그것일 것이다. 물론 윈스턴과 줄리아는 패배했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데이터교와 알고리즘의 세상에서도 ‘만에 하나’ 양립할 수 있는 미래일지 모르지만, 더욱 내게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신념, 시선과 온도다.

다짐한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와 당신에 관한 우선순위만큼은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적어도 내게 ‘인간’은 가장 아프고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므로. 세계를 정복할 듯 완벽한 ‘호모 데우스’의 세상에서도 ‘사피엔스’로 연약한 당신만큼은 절대 내게 그러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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