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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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소설이나 문학작품을 잘 읽지 않는다. 이야기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갈 만큼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삶의 굴곡을 지나가고 있다. 나에게는 해야 할 일이 아주 많고, 내게로 온 그 일에 애정을 쏟아주어야 한다. 이 삶을 가꾸는 데에만도 시간이 부족하다. 게다가 냉정한 나는 타인의 삶에 별 관심이 없다. 별로 궁금하지 않다.

스토너에 대한 찬사를 족히 들었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이 책의 미문이었다. 아름다운 인물이나 풍경의 묘사를 필사나 하고자 고르고 펼쳤다. 한 사람이 문학을 사랑하게 되고 고난 가운데 삶을 극복한다. 읽다 보면 고통스럽겠지. 인간의 삶이란 게 뭐 그런... 원래 슬픈 거니까. 슬픈 건 당연한 거니까.

스토너의 공부는 진지했지만 엄청난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았으며, 결혼생활도 서툴렀다. 너무나 보통의 삶을 하루 하루 세어가는 나날들이었다. 나쁘게 표현하면 지겨운, 아름답게 표현하면 잔잔한. 그러나 삶은 가끔씩 반짝이고 그 반짝임은 온도로 남아 삶을 오래 버티게 한다.

마흔을 앞두고 있는 나는 자주 생각한다. 진정한 삶은 마흔부터인지도 모르겠다고. 삶이 그저 ‘살아가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순간부터야 삶은 한 겹 한 겹 쌓이기 시작하며, 그 겹겹이 온기가 머물러 붙는 것이다.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렇기에 내 삶에 이미 보잘것없는 모습의 사랑이 주어져 있으며, 나의 역할대로 그 사랑을 재설정해 나가는 매일이 빛나는 삶으로 남는다. 은총도 환상도 내가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임을 새겨둔다. 사랑은 삶을 몇 번이고 재설정한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제한 없이 변화되고야 만다. 과거의 사랑이 있어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내가 아니며, 미래의 사랑이 없을 것이라면 나는 결국 아무 것도 아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오래 계속된다.

“이것이 나의 인생이다.” 잠시 뒤돌아 삶을 세어볼 때면 단단히 삼키는 문장 하나이다. 스토너는 자신의 삶을 재설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몇 번이고 돌아서 “이것이 나의 인생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리라 믿는다. 스토너의 인생을 빌려 읽었다. 어떤 사람은 스토너의 인생이 실패한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특별한 희망도 목표도 없고, 권력 싸움에서 밀려났고, 사랑했던 여자도 (그녀의 커리어를 짓밟아버리고) 떠나보냈다. 너무나 사랑했던 딸의 인생도 상처 가득한데 어찌 도와줄 수도 없다. 그저그런 삶처럼 보여도 할 수 없다. 마지막에 다가갈수록 먹먹하고 경건해졌다. 내가 경건하게 여기는 내 삶의 굴곡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생겼다. 나의 인생도 이렇게 숭고하게 서술될 수 있는 삶이다. 그리고 나의 삶은 내가 직접 서술해 나간다.

이제 곧 마흔이다. 나는 아름답게 살 것이고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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