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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긴 만남 - 시인 마종기, 가수 루시드폴이 2년간 주고받은 교감의 기록
마종기.루시드폴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사람들에겐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서로의 비밀을 공유한 편지같은 흔적들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처럼 이메일이나 문자가 없던 시절엔 나도 편지를 참 많이 쓰고 받았더랬다. 곱게 딱지처럼 접은 편지를 교복 스커트 주머니 속에 슬쩍 넣어주면서 꼭 너만 봐야해 라고 당부하고는 도망가던 그런 시절이 아직 젊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도 있던 것이다. 그 편지들은 내 옷장 구석에 고이 자고 있지만 .
나에게 편지들이란 숨기고싶은 아이들인데 사적인 그들만의 교류를 대중에 공개한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이라는 멋지구리한 제목을 달고서 말이다. 솔직히 아주 많이 궁금하다. 시인과 가수의 교류도 궁금하고 대륙을 한국인인 두 사람이 각기 다른 나라에 머무르며 하는 이야기도 궁금하다. 거기다가 36살이라는 나이 차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궁금할 따름이다.
마종기 시인의 앞에는 항상 의사 시인이라는 말이 붙고 루시드 폴에겐 공학박사 가수라는 말이 붙는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공부를 많이 했다. 한 분야에서 채워지지 않는 부분들은 다른 분야에서 채운다. 서로 다른 일을 병행하고 같은 나이대에 나라를 떠나와 공부를 하고 그런 공통점들이 그 두 사람을 더욱 친밀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이메일이든 편지든 그 내용은 참 따뜻하다. 나라를 걱정하고 서로의 고민을 기탄없이 나누며 자신들의 일상을 나눈다. 각기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서로를 염려하며 자신의 결과물들과 선물을 나누기도 한다. 도중에 마종기 시인이 루시드 폴의 음악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던가 미래를 고민하는 루시드 폴에게 사심없이 충고를 하는 부분 등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모습도 보여준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한국에 잠깐 다녀가거나 귀국을 결정한 루시드 폴에게 한국의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던 시인의 문장에선 알게모르게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애착이 느껴지기도 한다. 젊은 공학박사 가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어찌했건 지금의 내 고민과 다를 바가 없어서 나를 조금 서글프게 했고 둘 다 하라고 이야기 해주는 시인의 문장에서 나도 조금 힘이 나게 했다.
모처럼 즐겁고 흥미로운 훔쳐보기를 한 것 같아 기쁘다. 마종기 시인과 루시드 폴의 서로에게 나눈 사적인 이야기이지만 그들의 시과 노래가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되서 더욱 즐겁다.
p. 818
나이가 어떠하든, 어떤 경험을 하고 산 사람이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해주시는 능력을 선생님은 지니고 계시지요.
p.226
아기자기한 퍼즐도 상징도 자유혼의 오체투지가 없이는
우리를 흔들고 신음하게 하는 살아있는 예술이 될 수 없다고 나는 믿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