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월 4주

우리에게는 옛부터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있었다. 직역하면 임금과, 스승과, 아비는 한 몸이라는 뜻의 이 말은 임금과 스승, 그리고 아비의 은혜가 똑같기 때문에 모두 동일하게 존경하고 따라야 한다는 속 뜻을 가지고 있다. 왕권시대가 아닌 지금에야 '임금' 부분을 이해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를 낳고 길러주시는 부모님과 나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님의 은혜가 같다고 말하는 부분은 늘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는 누구에게 어떤 가르침을 받았는가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 가르침이라는 것은 지식일 수도 있고, 기술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지혜나 혜안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마음가짐일 수도 있다. 어떤 가르침을 주고, 어떤 가르침을 받는 것이 옳은가의 문제는 시대와 상황, 그리고 개인의 모든 조건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문장이나 글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교육, 학교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스승과 제자의 교감보다는 효율성과 성과를 더 중시하게 된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마음 속에 이상적인 스승의 모습을 꿈꾼다. "오, 캡틴, 마이 캡틴!" 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스승의 모습을.

<죽은 시인의 사회> (피터 위어, 1989)

이제는 고전 명작이 되어, 전형적인 스승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키팅 선생(로빈 윌리암스 분)은 전형적인 반항아이다.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웰튼 고교Welton academy. 70%가 넘는 학생들이 아이비리그에 진학하는 이 학교는 전통과 규칙이 엄격하고, 꽉 막힌 환경 속에서 학생들에게 공부만 시키기로 유명한 기숙 학교다. 덕분에 학생들에게서는 "지옥 학교Hellton"라고 불리울 정도. 이런 학교에 영어 교사로 온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첫 시간부터 "현재를 즐겨라!(Carpe diem! Seize the day!)"라고 가르친다. "시"를 평가하는 수학적인 공식을 설명하는 교과서의 서문을 찢어버리라고 한다. 전통과 획일성을 경계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살리라고, 늘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보며, 인생을 뜨겁게 살라고 가르친다.

키팅이 학생들에게 가르친 건 시의 운율, 대상 따위를 분석하는 기계적인 기술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시를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여는 방법이었다. 획일화된 틀 속에서 부모와 학교, 사회라는 시스템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 걷기만 하는 아무런 느낌도 감정도 없는 존재가 아닌, 17살의 사색가가 되는 방법을 가르쳤다. 아이들은 서서히 자아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늘 형의 그늘에 가려져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우울하기만 하던 토드(에단 호크 분)가 모든 반 아이들에게 박수를 받는 멋진 시를 지어내고 부모님이 아무 생각없이 사주는 생일 선물을 던져버리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다. 녹스(조쉬 찰스 분)는 크리스라는 아이와 사랑에 빠지고, 달튼(게일 한센 분)은 학교의 시스템에 정면으로 대항한다. 아버지에게 늘 복종만 하고 살라고 배워왔던 닐(로버트 숀 레오나드 분)은 연극을 향상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고, 중요한 배역을 따낸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모습들이 아이들에게도 처음에는 낯설었다. 정해진 규칙을 따르고, 과제와 시험을 보는 것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갑자기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기 시작하기까지는 그 나름대로의 내면의 마찰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믿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사람이 바로 키팅 선생이었다. 독특한 괴짜 선생 정도로 생각하던 키팅 선생에게 "오, 캡틴, 마이 캡틴!"이라 부르는 학생들의 모습이 그토록 감동적인 이유는 바로 그 키팅 선생과 학생들 사이의 교감의 결정체였기 때문이다.

<프리덤 라이터> (리처드 라그라베니즈, 2007)

자유와 평등, 기회의 상징이라 일컬어지는 미국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인종차별과 관련된 부분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KKK단의 존재 등을 비롯해 역사적으로 많은 사건들이 있었는데, 이 영화는 학교 흑백 통합에 따른 인종차별을 받던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영화의 이야기는 실화를 배경으로 했다는 것이다.

롱 비치에 있는 윌슨고교. 예전에는 우수한 학생들만 다니는 학교였지만, 통합 이후 들어온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 때문에 시쳇말로 학교 물이 흐려져 눈엣가시로 여긴다. 길거리를 걸을 때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싸움에 휘말리고 피살될 수도 있는 환경 속에서 거칠어질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 때문에 화가 나기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수업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고, 교실 안에서도 끼리끼리 모여 앉아 서로를 위협하고, 패싸움이 일상화 된 아이들.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에린 그루웰(힐러리 스웽크 분)이 처음 학교에 왔을 때, 고학년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3학년 정도 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상황이 좀 나아질 것"이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받는다.

아이들까지도 "다음 주면 그만 둘"거라고 생각했던 그루웰 선생은 끈기 있게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홀로코스트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사비를 모아 역사 박물관과 당시 생존자들을 초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고, 서로 다른 인종의, 서로 다른 패거리의 아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한다.

<프리덤 라이터>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루웰 선생이 쓴 가장 중요한 방법은 '글쓰기'였다. 어느 정도 아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이 전달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아이들에게 내 준 과제 아닌 과제. 매일,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편하게 일기 적듯이 적어 오라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글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생활, 지금의 느낌, 놀라운 사건 등을 적으며 스스로 변화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 외에도 서로를 이해하고 기쁨과 아픔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장이 열렸다. 새삼스럽게 느낀 글쓰기의 놀라운 힘이다.

"오늘 길거리에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아이들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계획하고,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들의 인생은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겨우 글쓰기"가 아니다. 글쓰기가 가지고 있는 그 놀라운 힘에, 아이들을 끝까지 믿고, 아이들을 위해 노력한 그루웰 선생의 놀라운 믿음, 집념, 용기가 더해져 이루어진 놀라운 결과다.

(아이들의 글이 엮어져, 1999년 미국에서 <The Freedom Writers Diary>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고, 우리나라에도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출판되어 있다.)

<글러브> (강우석, 2011)

처음부터 바람직한 스승의 모습이었던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글러브>의 김상남(정재영 분)처럼 아이들 때문에 함께 성장하는 스승의 모습도 있다.

폭행 사건으로 KBO에서 퇴출 될 위기에 처한 김상남은 주변의 권유로 면죄부를 얻기 위해 청각장애인들로 구성된 성심고등학교의 야구부 코치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렇다 할 제대로 된 훈련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아이들, 게다가 청각장애 때문에 중학생을 상대로도 힘겨워하는 이들의 목표는 전국대회 1승. 1위가 아니라 1승이었다. 하지만 김상남 선수, 아니 코치는 딱 잘라 불가능하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야구를 위해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안해서라도 그런 소리를 하면 안"된단다. 거친 말이지만 누구보다 야구를 사랑했기에 가능한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정말 야구를 좋아한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고, 그런 열정에 휩싸여 있던 자신의 예전 모습들을 떠올리면서 본격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기술이나 전략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 오기와 끈기, 집념, 세상을 향한 분노와 스스로를 향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포효하는 방법이었다. 보통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시작한 야구였지만, 선수들 스스로도, 또 그들을 끔찍히 아끼는 나선생(유선 분)도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마음 한구석에 가지고 있었다. 중학생을 상대로 져도 허허 웃을 뿐이었다. 진짜 전국대회 레벨의 고교 야구팀과 친선 경기를 갖는다는 말에는 모두 두려워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마음 한 구석에 도망칠 구석을 만들어 놓은 그들에게 진짜 경기가, 스포츠가, 전투가 무엇인지 알게 해 준 사람이 바로 김상남이었다. 정정당당히 싸우고, 또 그러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팀웍을 쌓는 방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 김상남이었다. 세상에서는 한물 간 퇴물 야구선수라는 평 밖에 받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진짜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해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

사랑으로 아이를 감싼다는 명목하에 때로는 아이들이 진짜 세상의 모습을 알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때로는 아이들이 거친 들판으로 내몰리고, 상처받고 쓰러지는 것도 경험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있어 악역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을 진정으로 위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한계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게 진짜로 필요한 때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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