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부터 독특한 이 책은 일단 표지가 맘에 들었다. 뭔가 아련하고 따뜻한 느낌이 나는 표지였다. 음.. 이 책은 정말 잘 짠 성긴 망토 같았다.
독특한 아이디어 - 8시간밖에 기억을 못하는 천재 수학자, 야구를 미친 듯이 좋아하는 아들, 드라마틱하게 파출부가 된 미모의 젊은 미혼모.
매력적이고 이상적인 캐릭터들 - 모든 걸 수식으로만 기억하는 천재 수학자와 예쁘고 마음 따뜻한 미혼모 파출부, 어리지만 일찍 철이 든 초등학교 4학년의 파출부 아들, 그리고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미망인...
그리고 타이밍 정확하게 터지는 에피소드 - 수학자와 파출부의 인상적인 만남, 파출부가 미혼모가 되기까지의 드라마틱한 사연, 아이에 대한 수학자의 절대적 애정을 발견하고 파출부가 감동하게 되는 일, 생전 처음 야구장에 가게 된 수학자와 아들, 수학자의 실신과 파출부의 극진한 간병, 미망인의 질투로 해고되는 파출부, 미망인과 수학자 사이의 숨겨진 관계, 아들의 아버지가 수학자로 유명해진 걸 신문을 통해 파출부가 발견하게 되는 사건, 파출부의 진심을 알고 다시 고용하는 미망인, 생일날 수학자가 가장 좋아했던 야구선수의 글러브 카드를 어렵게 찾아내 파출부와 아들이 선물하는 사건, 그리고 결국 자라서 아들이 수학선생님이 되고...
절묘하게 수식과 야구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
뭐 하나 빈틈이 없는 글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완벽한 소설은 정말 소설일 뿐임을 절실히 느끼고 말았다. 성긴 망토처럼 보기엔 따뜻하고 예뻐 보이지만 전혀 따뜻하지는 않았다. 그저 잘 짜여진 각본만 있을 뿐이었다.
현실적인 구석은 하나도 없다. 수학자는 정말 모든 것을 수로 풀어낼 수 있는 천재다. 게다가 기억상실증에, 노구를 지녔음에도 너무나 훌륭한 인격과 순수를 갖고 있다. 미혼모 파출부는 너무나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파출부라는 직업에 전혀 불평이 없고, 등이 굽고 이빨도 생전 안 닦고 자기도 수시로 기억하지 못하는, 오직 수밖에 모르는 할아버지 수학자를 사랑한다. 겨우 초등학생 아들은 사람 사이의 신뢰에 대해 너무 잘 이해하고 있다. 또한 형수인 미망인과 수학자는 과거의 연인이었으며 천재 수학자는 가슴 깊이 그 마음을 품고 있다. 대체 이걸 어떻게 공감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디어로 승부한 소설이라고밖에는 그리고 감동을 주기 위해 작위적으로 만든 소설이라고밖에... 정말 소설이 원래 이런 거라면 더 이상 소설로서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