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크 라이프 - 제127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히비야 교차점 지하에는 세 개의 선로가 달리고 있다. - 「파크 라이프」첫 문장 
그 사람, 모치즈키 간단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첫눈에 그에게 빨려들었다. - 「플라워스」첫 문장

☞『분노』로 요시다 슈이치를 처음 접하고 도서관에서 그의 다른 책을 찾아봤다. 유명한『악인』이나『퍼레이드』는 아껴두고 이 책이 끌렸다. 얇으니까. 가볍게 요시다 슈이치 월드에 입성해볼까 하고 골랐던 책인데 너무 좋아서 몇 장 읽다가 덮었다. 안돼 이건 사서 봐야해. 

 나는 단편소설을 못 읽는다. 정말 글자를 읽을 수 없어서 못 읽는다는 게 아니라, 재미를 못 찾는다. 소설이라면 응당 다른 세계에 들어갔다 나오는 재미로 읽는건데 단편소설은 인물 파악 좀 할라치면 벌써 끝이었다. 도대체 뭘 얘기하고 싶은건지를 몰랐다. 시작했나 싶으면 끝나버리고 끝날 것 같지 않은데 끝나버리니까.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임에도 장편에 비해 단편은 실망하기 일쑤였고 수상작이라도 느낌은 마찬가지였다. 단편소설은 단순히 활자를 읽기만 했고 당연히 기억에 남지 않았다(간혹 열에 한 두편 정도만 인상에 남는다. 김애란이나 이기호 같은 단편 특화 작가). 그렇게 몇 번 시도해보다 나와는 안맞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소설책을 살때 '장편'이 붙어있는지 여부만 확인하고, 없다면 사지 않았다. 몇 년을 그렇게 장편소설만 편독했다.

 그런데, 간만에 읽는 단편소설임에도 이 책은 너무나 좋았다. 이제야 단편소설 읽는 맛을 알 것 같았다. 읽으면서 이거 뭔데 이렇게 좋지. 별 거 없는데 좋네. 아니, 별 거 없어서 좋은건가 생각했다. 다 읽어도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 다 열려있다. 벌려놓기만 하고 주워담지 않은 채 글이 끝난다. 그렇게 그 세상은 끝나지 않고 열려 있는 것이다. 내 안에서도.

 그 점이 싫어 단편에 재미를 못 붙였는데 이제는 그 점 때문에 단편이 재미난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든 결말을 내린 이야기는 책을 덮은 순간 내 안에서도 끝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닫지 않고 끝났다. 소설이 끝났다고 인물의 삶도 내 안에서 끝난 게 아니라 그냥 계속된다. 마치 우리네 진짜 삶처럼 평범하게 그냥 계속 살아간다. 

 표현 같은게 엄청 좋다. 이 짧은 책에 포스트잇을 엄청 붙였다. 명대사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표현들이 좋았다. 풍경을 묘사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말들이 엄청 담담한데 감정이 느껴진다.『분노』에서도 특정 장면에서 감정이 무너지는 표현이 참 좋았는데 이 책의 두 번째 단편 「플라워즈」에서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의 표현이 엄청 좋았다. 이 아저씨는 뭔가가 안에서 무너질 때의 느낌을 기가막히게 표현한다. 아름답게. 간간이 개그 아닌 개그도 있는데 담담한 어조와 맞물려서 (난) 엄청 웃겼다. 「파크 라이프」에서는 그와 그녀의 지하철 첫 만남 상황이 너무 웃겼고, 「플라워스」에서는 '토종 고추'에서 빵터졌다.

 책 말미에 작품을 해설한 [옮긴이의 말]이 있는데 마치 서로 다른 소설을 읽은 듯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런 기법과 장치에 대해 몰라도 읽을 때 재미있고 좋았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좋아하는 일본 작가가 한 명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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