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힘
원재훈 지음 / 홍익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 이 날은 타인이 나를 이해해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다시 한번 접은 날이었다. 정처없이 계속 걸었고, 괜찮다가도 문득문득 치밀어올라 계속 울었다. 해가 지고 오갈데 없어진 나는 도서관으로 갔고, 책은 어제 생각없이 빌리고 가방채로 그대로 들고 나와서 들어있었다. 웃겼다. 내가 내일 가장 고독하리라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려는 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고 다 읽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신기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제목에서 예상가능한 그대로에 충실한 내용이다. 가장 고독했던 시기에 가장 본연의 힘을 이끌어내 훌륭한 창조를 해냈던 인물들을 많이 알려준다. 당연히 작가, 미술가등의 예술가들이 대부분이다. 창조엔 필연적으로 고독한 시기를 지나야 하기 때문일까. 그 외의 고독한 직업인 종교인, 산악인, 철학자들이 왕왕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하나같이 이름 앞에 '위대한' 이란 수식어가 붙어있다.


 비단 '위대한'을 지향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살다보면 누구나 몸서리치게 고독한 때가 있기 마련이고, 그 때에는 주변에 사람이 있든 없든 혼자 인 것만 같다. 그 때 '위대한'이 될 사람과 나의 차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중할 무언가가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일 것이다. 그런 사람은 고독할 때에도 고독하지 않다. 단지 고독해 보일 뿐이다.


 작가에겐 글이 있고, 예술가에겐 그림이 있다. 산악가에겐 산이있고 철학가에겐 삶이 있다. 나에겐 무엇이 있는가. 그걸 생각해보면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자 슬퍼할 것도 없고 절망에 빠질 일도 없어졌다.


 사람마다 고독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 누군가는 고독과 외로움을 동의어로 생각할 지 모르고, 누군가는 너의 고독은 이런 사람들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라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 나보다 더 고독하다고 내가 힘들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이사람들에 비하면 사정이 낫네' 하는 상대적 위안을 받고자 한 것도 아니다. 내가 이런 책을 읽고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은 답이 없다는 답 뿐이다. 


 견디다보면 '위대한' 날이 올거라고 생각해서 '위대한' 자들은 그 지난한 날들을 견딘 것일까. 미래의 내가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을 보면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그들은 과연 당시의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을까? 똑같이 막연하고 막막했을 것이다. 젊은 시절의 릴케 또한 "힘내!"라는 말에 구원받는 사람이었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다. 똑같은 것이다.


 고독은 어차피 없어지지 않는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은 내버려두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야 한다. 책은 '견뎌내라'고 얘기한다. 그 위대한 자들도 그냥 '견뎠다'. 그렇다면 무얼 하며 견딜 것인가. 작가에겐 글이 있고 예술가에겐 그림이 있다. 나에겐 무엇이 있을까. 아직 없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