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김미월 외 지음 / 열림원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비’에 대한 일곱 명의 여성 작가들의 시선은 어떤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죽음, 누군가에게는 추억, 누군가에게는 고독,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상임을 각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에서 치밀한 스토리와 개성 있는 표현력으로 묘사하고 있다.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들이 모여 ‘테마 소설집’이라 불리는 이 책은 한동안 읽지 않았던 한국작가들의 소설에 이렇게 반짝이는 감성이 들어 있는 줄 새삼 느끼게 하였다.
소설이란, 글이란, 사람에게 어떤 형태로든 무언가를 전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충실한 글들이 여기 모여 있다.

‘비’라는 주제 외에 여기 소설들이 담고 있는 공통적인 주제를 하나 더 들자면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세상의 모든 것이 ‘관계’의 시작에서 끝으로 -태어나자마자 부여 받는 가족 관계부터, 새로운 사람들과 부대끼며 새로이 맺는 관계들과, 병원 대기실의 일회성 관계부터,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과 이별이라는 형태로 끝맺는 관계까지- 이루어져 있으니, 모든 소설에서 그걸 발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책 속에 그런 ‘관계’를 표현하는 문장에는 밑줄을 그어가며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구절들이 있었다.
“나는 세 번째가 되었다. 세 번째였던 남자는 지금쯤 빗속을 걷고 있겠군. 나는 생각했다.” – 김숨,「대기자들」
“그러나 결국 그는 선을 그었다. 가늘지만, 그에게는 단단한 결계와도 같은 선이었다. 그는 작은 손바닥을 자꾸만 들여다보고 탓하는 대신 그 손바닥이 할 수 있는 일을 지키고 싶었다. 그것마저 잃을 수는 없었다.” – 윤이형, 「엘로」
“애초 빗방울이란 허공을 떨어져 내리고 있을 뿐이니 사람들이 빗소리 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빗소리라기보다는 빗방울에 얻어 맞는 물질의 소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황정은, 「낙하하다」
“나는 빗방울이 되어 땅으로 떨어지고 있는 죽은 사람들을 보았다. 무수히 많은 죽은 사람들을. 죽은 사람들은 둥글고 뽀족하고 작고 크고 투명하고 아름답고 더러운 빗방울이 되어 하나씩 둘씩, 수백수천수만, 수백수천수만, 지상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속도로. 그러나 동시에.” – 한유주, 「멸종의 기원」

여기 일곱 개의 소설들은 전혀 다른 내용임에도 어딘가 연결고리가 있다. 그 연속성을 찾는 것 또한 이 책의 묘미다.

새삼스럽게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되었다. ‘나의 비’는 어떤 색깔일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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