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기원과 진보, 불평등에 관한 거대한 서사]
이 책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조류학자 및 생물학자로, 뉴기니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그곳 생물과 원주민들의 삶을 관찰했다. 뉴기니는 오스트레일리아 북쪽에 있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열대 섬으로(파푸아뉴기니로 더 잘 알려진), 다양한 생물과 희귀종들이 살고 있어 생태적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높은 섬이다.
어느 날 그가 뉴기니의 해변을 걷고 있을 때, 그곳의 남다른 정치가로 알려진 ‘얄리’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 만남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을까. 얄리가 던진 질문이 바로 이 책 <총, 균, 쇠>를 탄생하게 했기 때문이다.
얄리는 그에게 “자기 민족의 조상들이 과거 수만년 동안 어떤 경로를 통해 뉴기니에 도착했으며, 또 유럽의 백인들은 어떻게 지난 200년 사이에 뉴기니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200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뉴기니인은 아직 ‘석기시대’에 살고 있었다. 그곳은 세계의 진보와 발전과는 동떨어진 곳이었다. 그러나 백인들이 그곳에 들어왔고, 그들에게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백인들에게는 이미 익숙한)를 강요하면서 의약품, 의복, 음료 등 새로운 문물을 잔뜩 들여왔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간단해 보이는 얄리의 이 질문은 사실 인류의 발전에 대한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그 질문을 ‘부와 힘은 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분포하게 되었을까?, 인류의 발전은 어째서 각 대륙에서 다른 속도로 진행되었을까?, 어째서 아프리카인 또는 아메리카 원주민이 아니라 유럽인들이 총기, 병원균, 그리고 쇠를 갖게 되었을까?’와 같은 물음으로 확장시켰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한 하나의 여정이 담긴 결과물이다.
이 책의 핵심 요지를 한 마디로 압축하면,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세계의 불평등이 기원한 이유는)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고 할 수 있다.
즉, 어떤 이들은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기 때문에(유전적 혹은 지능적으로) 현재 아프리카를 비롯한 흑인들의 대륙이 못 살게 된 것은 필연적 결과라고 말한다. 태생이 그렇다는 얘기다. 하지만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를 절대 부정하며, (인류를 흑과 백으로 나누는 것도 우습지만 굳이 나눈다면) 둘 사이는 생물학적으로 결코 우열을 따질 수 없고, 이들의 조상이 살았던 대륙의 지리, 환경적 차이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 지리, 환경 차이로는 우선 식량 생산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비옥한 땅이 전제조건이 된다. 사막지대보다 고온다습한 환경이 인류에게 풍성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그런 조건을 우연히 갖게 된 사람들은 악조건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기 때문에 인구밀도도 높아진다. 인구밀도가 높아지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계급을 형성하고, 이 때 낮은 계층 사람들이 높은 계층 사람들을 먹여 살리면서 기술도 발전하게 된다. 높은 계층 사람들은 농사 걱정 하지 않아도 되니, 그 시간에 새로운 기술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발전된 기술은 대륙에서 대륙으로 퍼져나가게 되는데, 아메리카처럼 수직으로 긴 땅보다, 유라시아처럼 수평으로 긴 땅이 전파 속도에 더 유리하다. 무엇보다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의 중간에 자리하고 있는 사막은 기술을 전파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었다. 따라서 유라시아가 다른 대륙보다 더욱 빨리 기술을 습득해 발전할 수 있었고, 그 기술은 인류에게 총과 쇠를 가져다주었다.
한편 균은 가축동물에서 인류에게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 또한 비옥한 땅이 전제되어야 한다. 척박한 땅에서는 가축동물을 키울 수 없을뿐더러, 그러한 동물들이 생기거나 살아남을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옥한 땅 사람들은 가축을 통해 각종 세균에 감염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균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돼, 다른 대륙을 정복할 때 의도치 않게 유리한 조건을 지니게 된 것이다.
나는 사실 책의 목차를 봤을 때 잠깐 혼란스러웠다. 책 내용은 당연히 제목에 따라 ‘총과 균과 쇠’ 파트로 나뉘어져, 각각이 인류와 세계 불평등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살펴보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본문은 총, 균, 쇠를 자세히 다루기보다, 그 세 가지가 어떤 경유로 어느 대륙에 먼저 생기게 되었는지를 살핀다. 그리고 저자는 책의 말미에 파격적인 말까지 덧붙인다. ‘만약 과거에 유럽이 아니라 아프리카 흑인들이 먼저 총, 균, 쇠를 다룰 수 있었다면, 그런 환경적 요건들이 허락되었다면, 지금 이 세계는 그들이 주도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역사책은 그 책을 쓴 학자의 관점과 주관에 따라 천차만별로 해석된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한 책만 읽고서는 온전히 그 책이 기록한 주제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두고서도 다양한 관점, 해설, 의견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더욱 많은 책을 읽고, 많은 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총, 균, 쇠>를 읽으면서 기뻤던 것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역사적 관점이 내게 충분히 납득될 만했다는 점이고, 무엇보다 번역이 무척 깔끔해 이 두꺼운 책을 막힘없이 술술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거듭 반복하며 관철해 나가기 때문에, 독자는 이 방대한 책의 주제가 무엇인지 중간 중간 잊어버리지 않으면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한 사람(얄리)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시작된 여정. 그 여정이 인류 기원과 진보의 역사,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대륙 간 불평등의 본질을 파헤쳐주었다.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그 지식을 섬세하게 풀어내는 능력, 인류에 대한 사랑과 뛰어난 관찰력,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번역이 빛난다는 점에서 별 다섯 개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