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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59
송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5월
평점 :
송찬호의 시. 점점 내가 좋아하는 시가 되어간다.「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에는 재밌는 시도 많다. 〈산토끼 똥〉이라는 시에서는, 유기물인 똥이, 자기를 내지른 산토끼가 지금 어느 산을 넘고 있을까? 를 생각한다.
산토끼가 똥을
누고 간 후에
혼자 남은 산토끼 똥은
그 까만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지금 토끼는
어느 산을 넘고 있을까? -〈산토끼 똥〉전문
상황묘사가 아주 재밌다. 이런 시에서는 시인의 생태적 세계관, 동화적 상상력, 우주적인 대화, 이를테면 바흐친의 대화, 모태가 되는 ‘토끼’와 파생된 ‘똥’이 갖는 우주적인 교응,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대인들의 사회와 근대인의 사회는 단절이 존재하지만, 그 단절은 계몽주의가 만들어 낸 허울인 것이다. 인간- 자연에 대한 근대적 기획을 걷어내고 나면, 우리 삶의 도처에는 동화적 세계, 마법의 세계, 애니미즘의 세계가 편재하고 있다. 송찬호의 시집에서 보여지는 세계가 바로 생태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세계다. 반면에, 이 시집의 주조에서 조금 비껴난 시도 있다.
지붕 밑 다락에 살던 두통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제 그 집은 빈집이 되었다
가구를 들어내 휑하니 드러난
벽들은 오랜 망설임 끝에
좌파로 남기로 결심했고
담쟁이덩굴들이 올라와 넘어다보던
아름답던 이층 창문들은
모두 천국으로 갔다
그리고, 거실에 홀로 남은 낡은 피아노의
건반을 고양이들이 밟고 지나다녀도
아무도 소리치며 달려오는 이 없다
이미 시간의 악어가 피아노 속을
다 뜯어먹고 늪으로 되돌아갔으니
구석에 버려져 울고 있던 어린 촛불도
빈집이 된 후의 최초의 밤이
그를 새벽으로 데려갔을 것이었다
벌써 어떻게 알았는지
노숙의 구름들이 몰려와
지붕에 창에 나무에 각다귀 떼처럼 들러붙어 있다
이따금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
그들의 퇴거를 종용해 보지만, 부력을 잃고
떠도는 자들에게 그게 무슨 소용 있으랴
철거반이 들이닥칠 때까지
한동안 그들은 꿈쩍도 않을 것이니 -〈빈집〉 전문
흔히 시는 메세지를 주거나, 그림을 주거나, 상황을 준다. 다락에 살던 두통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벽들은 좌파로 남고, 이층창문들은 천국으로 가고, 시간의 악어는 늪으로 되돌아가고, 어린 촛불도 최조의 밤이 새벽으로 데려가고. 이 시적인 상황에서 도대체 ‘빈집’이란 뭘까? ‘빈집’은 화자의 자아(自我)다. 화자의 내면풍경을 ‘빈집’이라는 조형으로 보여준다. 상징시는, 상징의 답이 없는 법. 이 시를 고른 건, 나의 내면풍경이 「빈집」을 닮아서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