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여행기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이동진 옮김 / 해누리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걸리버 여행기의 완역판이다. 아동용으로 편집되어 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재치와 유머, 그리고 날카로운 풍자정신이살아 있었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걸리버 여행기가 텍스트로 정해지면서 걸리버 여행기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배우게 되었다. 그때 걸리버 여행기의 완역판을 꼭 읽어보리라 다짐했었다.

여행의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내가 가진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내가 속한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나야 한다. 만약 걸리버가 거인국의 나라인 브롭딩나그를 가지않았다면 자신과 자신의 조국 영국이 한낱 벌레에 지나지 않는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어떻게 인식했겠는가?
또한 조국의 사고와 가치관에 물들어 있는 그가 타국을 방문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신념이 명백한 오류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수치스럽게 괴물 취급을 받으며 끌려다닌 일은 나 자신이 그 나라에서는 철저한 외계인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영국에 돌아갈 경우, 내가 그 나라에서 받은 치욕은 결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대영제국의 왕인들 나의 처지에 놓였더라면 마찬가지의 불운을 면하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흔히 작가의 자아가 투영된 것이 작품 속의 인물이라고 말한다. 그런 전제를 깔다면 스위프트의 분신은 바로 걸리버이다.
스위프트는 유명한 정치 논객이었다고 한다. 걸리버 여행기는 영국의 왕궁과 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이다. 특히 뒷 부분으로 갈 수록 걸리버나 휴이넘의 입을 통해 영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강도 있는 비판을 한다. 이런 면에서 걸리버는 확실히 조나단 스위프트의 정치 혐오 및 인간 혐오 사상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걸리버 또한 여성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 물론 그런 걸리버가 여성을 비하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아직 걸리버가 여성에 대해 자각하지 못한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분야에서 선구자적 자질을 보여주면 가장 좋겠지만,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던가?

걸리버는 영국의 정당 정치나 의회 정치를 비판하고, 시대를 이끌어갈 뉴 패러다임으로 급부상한 과학에 펀치를 날린다.
적어도 걸리버는 한 두 분야에 있어 선구자적 시각을 지니고 있다.
결국 이 책이 걸리버 '여행기'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걸리버가 시대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풍요와 안락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고생을 자처하며
길을 떠난다.
그것은 자신이 속해있는 시대, 시공간 속에서는 진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걸리버는 오직 여행을 통해서만 자신의 '오만과 편견'을 인식할 수 있었다.

현대의 대중 문화와 철학, 인터넷은 <걸리버 여행기>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야후는 바로 <걸리버 여행기> 4부에 나오는 인간의 외형을 지닌 비이성적 동물을 일컫는 말이고
3부의 하늘은 나는 섬 '라퓨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섬 라퓨타>의 모티브가 되었다.

걸리버 여행기는 우리의 본성을 깨닫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싼 오만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가 안락하게 자고 있는 침대에서 걸어나오라고 일깨워준다. 꼭 두발로 걸어야하는 물리적인 여행이 아니라도
좋다. 그러나 안락함에 취해 보는 것을, 듣는 것을, 생각하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설사 그것이
도망자의 삶으로 이어진다고 해도(조나단 스위프트는 도망자 신세였다고 한다)- 이것이 진정한 노마드였던
걸리버가 건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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