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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인 자크 아탈리는 21세기의 변화를 주도할 패러다임으로 ‘노마디즘’을 꼽는다. 그에 의하면 유목민적 행위와 삶을 뜻하는 노마디즘이 인류 역사의 근간을 이뤄왔고 또 미래 사회를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인류의 역사를 노마디즘의 역사라고 명명하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팍스 아메리카나에 이르기까지 노마디즘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있다. 유목민이라는 뜻의 ‘노마드’는 들뢰즈가 처음 사용하였는데 자크 아탈리는 이 개념을 좀더 확대하여 이것을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삶을 탐구하며 살아가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 또는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현대인이 추구해야 할 노선’으로 여긴다. 그는 인류의 발명품들은 모두 노마드들의 산물로 생각한다. 불, 언어, 농경, 예술, 유일신, 시장, 민주주의 등의 노마디즘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기독교를 천국을 향해 뻗어나가는 ‘노마디즘’ 종교로 해석한 부분이다. 하나님이 양을 바쳤던 아벨의 제사는 받아들이고, 곡물을 바쳤던 카인의 제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성경의 구절을 볼 때 기독교는 확실히 유목민들의 종교였다.
또 작가나 여행가 등의 지식인들을 지식인 노마드라고 명명했던 것도 흥미로웠다. <걷기의 역사>란 책에서도 독서는 여행과 같다고 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공감가는 이야기였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착민과 노마드들은 끊임없이 충돌해왔는데 역사가들은 노마들이 문명화된 정착민 제국을 항상 멸망시켜왔다고 말한다.
중세 이후에 자본주의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정착민들이 노마드들을 핍박하고, 그들이 가진 방랑의 자유를 억압했는데 프랑스는 방랑하는 거지들을 악명높은 감옥에 가두거나 그들에게 강제 노역을 부과했다.
자크 아탈리는 마지막 정주민의 제국인 미국의 앞으로 세 개의 노마디즘과 충돌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시장과 민주주의, 이슬람 세력이다. 시장과 민주주의가 미국 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 그리고 이미 이슬람과의 충돌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건대 저자는 미국 제국의 종말이 머지 않았다고 믿는 것 같았다.
또 저자는 인류를 세가지 부류로 나눈다. 하이퍼 노마드는 창의적인 직업을 가지고 부유하게 살아가는 지식인 계층이며 농민들과 같은 정착민 그룹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고 한다. 또 노숙자, 이동자와 같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동해 다니는 인프라 노마드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자크 아탈 리가 제시하는 미래상은 트랜스 휴먼이다. 이것은 정착민과 노마드의 개념이 결합된 ‘노마드적 정주민’이다. 미래의 사회는 ‘노마디즘’이라는 이념이 지구촌 곳곳에 뻗어있는 거대한 세계화 제국이 될 것이라는 그의 예언은 일견 타당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노마디즘’도 서구의 지성들이 필요에 따라 왜곡, 확대, 조작하는 뉴 패러다임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