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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여자의 역사
클로딘느 사게르 지음, 김미진 옮김 / 호밀밭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1. 대학생 때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 주연의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줄리 델피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었다. 그런데 그 영화를 다 보고 바로 이어서 후속작인 <비포 선셋>을 봤는데, 같은 배우들의 10년 후 모습을 보며 에단 호크는 더 멋있어졌고, 줄리 델피는 외모가 빛바랬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에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이 똑같이 나이를 먹었는데, 어째서 남자 배우의 나이 든 외모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여자 배우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했을까? 나이 든 여성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고 느끼는 감정은 자연적인 것일까, 사회적인 것일까? 이 책을 보면서 그때 고민했던 기억이 생각났다.


2. 이 책은 고대, 근대, 현대 서양 사회가 추함(특히 여성의 추함)을 규정하고 다루는 방식을 연구한 것이다. 사람이 ‘추함’을 대할 때 얼마나 가차없어지는지 볼 수 있었다. 사람은 약한 것에 대해서는 더러 안쓰러워하고 보호해야 한다거나 자비심을 발휘해야 한다고 여기지만, 추한 것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인권의식이 없었던 고대에는 여성 자체가 추하다고 여겼고, 못생긴 여자의 역사 그 자체가 잔혹사에 가깝다 보니, 솔직히 서술이 끔찍해서 읽기 어려웠다. 그리고 현대로 오면, 미에 관해 현대 여성이 받는 여러 형태의 구속에 대한 설명이 너무 공감이 돼서 읽기 어려웠다. 특히 사람들의 사고가 ‘여성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그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도록 변했다는 부분에서, 이러한 사회적 인식이 여성의 자기혐오에 영향을 미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여성인 내 입장에서도 외모의 미추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주제인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이 뚱뚱하다는 생각을 6살 때부터 했고, 20대 때는 얼굴에 BB크림이나 파운데이션 같은 기초화장을 하지 않고서는 누굴 만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화장기 없는 모습으로 다니는 지금도 조금이라도 안면을 튼 여성 대부분은 어김없이 ‘화장 좀 하고 다니라’고 충고하고, 나 스스로도 약간 격식 있는 자리에 나갈 때는 여전히 깔끔한 옷을 차려입듯 화장을 한다. 때로는 동일한 능력을 지닌 남녀에게 동일한 고용 기회를 보장하라든지, 동일한 업무를 하는 남녀에게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라는 말보다, 남녀의 외모 관리에 평등한 기준을 부여하라는 주장이 더 받아들여지기 어려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판단은 대체로 무언가를 보는 순간에 내려지고, 그 생각이 윤리적인지 생각하기 전에 먼저 결정이 돼 버린다는 생각도 든다.


4. 그런데 만약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아름다움이나 추함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의심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누군가를 보고 ‘예쁘다’ 혹은 ‘못생겼다’고 즉각적으로 판단하는 걸 멈출 수 없더라도, 그렇게 판단한 다음에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묻는 과정에서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사회적 기준에 맞춰진 좁디좁은 기준을 넓혀 나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예전에 그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에 비하면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범위는 조금 더 넓어졌고, ‘추함’의 기준도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 생각’이라고 생각한 것이 실제로는 내 생각이 아닐 수 있고, 그렇다면 내 생각은 뭘까라고 자기 자신에게 되묻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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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키즈의 생애 - 안은별 인터뷰집
안은별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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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트위터에서 누가 추천하는 걸 보고 관심 가졌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 보다 보니 그때 트위터에서 추천한 사람이 이 책 인터뷰이 중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2. 막상 읽다 보니, 같은 세대라는 이유만으로 선뜻 공감하기에는 인터뷰이들 이력이 많이 독특했다. 직업이 다양한 건 물론 그렇겠지만, 특히 학력 면에서 민사고니 대안학교니 하는 단어가 수시로 나오는 점이 그랬다. 반대로 가정사가 아주 복잡했던 경우도 있다. 대체로 중간이 없다고 느꼈다.(어쩌면 ‘중간이 없다’는 것조차도 의도한 것일까?) 그나마 공감할 수 있었던 사람이 뒤의 2명인데, ‘지방’과 ‘여성’이라는 키워드에 공감한 것이었고, 나머지 이야기는 ‘이럴 수도 있구나’ 하고 봤다. 피차 아직 젊은 사람들인데도 이런데, 나이를 더 먹으면 이들은 내게 얼마나 낯선 사람들이 될까.


3. 신기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나와 공통되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특유의 정서가 있다는 점이다. 예술/문화 분야에 대한 열정(문화개방시기 어린이였던 사람들의 특징일까?)이 제일 비슷하고, 그보다는 간접적이지만, ‘어찌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같은 삶을 좀 막연하게 느끼는 감각도 비슷하다. 뭔가 선택할 때 좋은 것을 고르기보단 싫은 것을 피하는 방향으로 선택하고, 장기 계획을 세우지 못하거나/않고, 자기 자신도 자신을 둘러싼 환경도 현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믿지 않고... 사실 나는 나만 이런 줄 알았다. 특히 계획을 못 짜는 것과 생활기반을 불안하게 느끼는 건 오로지 내 문제라고 생각했고, 좀 더 나가 봐야 젊은이의 특성일 거라 생각했다. 근데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이런 감각이 IMF 시기 미성년이었던 세대의 특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국민이 별안간 신자유주의의 파도에 휩쓸리며 자기가 알아서 위기를 돌파해야 했던 그런 시기에, 양육자에게 생존권을 의탁해야 했던 세대의 특성. 안정된 직업의 인기도, 단순한 불황 때문이 아니라 좀 더 심리적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4. 이 책을 이해하는 데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도 도움이 됐다. IMF가 단순히 돈 빌려주는 중립적인 국제기구가 아니었고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국가안전망 자체를 무너뜨려 버렸다는 걸 그 영화에서 배웠고, 그 시절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같은 걸 당시는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체험했었지만 지금은 어른의 눈으로 새롭게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이 인터뷰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5. 여전히 좀 더 내용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인터뷰를 보고 싶었다는 아쉬움이 있고, 이 세대를 다룬, 모범이 될 만한 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내 또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늘 흥미가 가고 궁금한 주제이기도 하고, 이걸 읽음으로써 적어도 불안한 게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위로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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