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룸 - 영원한 이방인, 내 아버지의 닫힌 문 앞에서 Philos Feminism 6
수전 팔루디 지음, 손희정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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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페미니스트들은 아버지를 이해하려 할까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나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나는 질문받기 전까지는 그런 경향성이 있는지 모르다가 질문을 받고서야 왜 그럴까 궁금해졌다. 모르긴 몰라도, 페미니스트가 되는 데 아버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클 것이다. 아버지가 긍정적 영향을 주지는 않았으리란 것도 어렵잖게 추측할 수 있다. 그 질문은 그러니까 왜 뺨 맞은 사람이 때린 사람을 이해해야 하냐는 질문이다. 그 반대가 아니라.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든다. 저자의 아버지는 헝가리계 유대인으로, 어머니와 이혼하고 헝가리에 돌아간 뒤 저자와 연락이 단절된 채 살았다. 어느 날 저자는 아버지가 70대의 나이에 성전환 수술을 하여 생물학적 여성이 되었다는 메일을 받고, 헝가리에 가 아버지와 재회한다. 그 후 10년에 걸쳐 아버지를 인터뷰하고 그의 삶을 조사한 결과물이 이 책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가 얼마나 가부장적인 인물이었는지 선명히 드러난다. 특히 부모의 이혼 때는 저자도 어머니도 아버지의 폭력, 스토킹, 살해 협박 등에 노출되어 고초를 겪었다. 연구 대상에 애정이 생겨야 책이 쉽게 읽히는 법인데 읽을수록 저자의 부친에 대한 반감만 커진다. 저자의 아버지가 그때 왜 그랬는지, 지금은 또 왜 이런지 저자가 꼭 다 알 필요가 있을까? 그거야말로 세상의 역학이 작용하는 방식,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이해하고, 약자가 강자를 이해하는 방식 그대로가 아닐까? 


아버지는 인터뷰에 매우 비협조적이기까지 하다. 저자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트랜스젠더를 탐구하고, 헝가리 역사를 탐구하고,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헝가리계 유대인을 탐구하고, 아버지의 친척, 친구,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듣는다.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전 인류를 이해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 과정에서 ‘여성’도 ‘남성’도 아닌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로서의 트랜스젠더 정체성에 대한 분석이 나오는데 매우 흥미롭다. 이는 유대인(나아가 소수자 전반)에게 적대적인 헝가리에서 그 자신과 부모를 지키기 위해 정체성을 연기하곤 했던 아버지의 특성과 느슨하게 연결된다. 이런 식의 탐구를 통해, 비록 아버지의 생각과 선택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다.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는 건 어쩌면 이 책의 미덕인 것 같다. 한 사람의 생각은 그 자신도 다 이해할 수 없다.(이 책의 아버지처럼 정체성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하물며 타인이 모두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저자의 말처럼, 불가해함을 존중하는 것이 최선일지 모른다. 완전한 이해보다는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저자의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는 분명 가해자였다. 그러나 이후 아버지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함으로써 저자 또한 아버지를 상처입혔다. 저자는 그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 저자가 아버지를 이해하려 애쓰는 건 아버지가 이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다름 아닌 저자 자신에게 꼭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나도 독립한 뒤에야 아버지에 대한 인상이 전과 달라졌다. 함께 있을 땐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벗어난 뒤에야 아버지의 다른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버지를 이해하려 시도하면 아버지도 내 쪽으로 마음을 기울여 준다. 저자가 느꼈을 감각을 내가 이해할 수 있다는 데 감사한다. 역시 부모를 대하는 것은 운명을 대하는 것과 비슷한 점이 있다.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이해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스톤은 그들 자신을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무언가 잡종적인 것으로 규정하자고 제안한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두 개의 성에 고정되어 있는 이 세계의 근본적인 가정을 위협하는, 비결정적이거나 다층적인 젠더의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은 ‘괴물의 약속’을 수용해야 한다. - P231

나치 유럽을 살아가는 젊은 유대인 남성으로서, 그의 연기가 얼마나 훌륭하건 간에, 그리고 그가 얼마나 확신에 차서 화살십자당 완장을 차고 "하일 살러시!" 경례를 하건 간에, 아버지는 그의 적이 늘 트럼프 카드를 쥐고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들이 그에게 저 뒷방으로 들어가 바지를 벗으라고 말하는 순간, 게임은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여자라고 선언한 지금에는 설사 젠더 경찰이 그녀를 뒷방으로 데려간다고 해도, 그녀는 자신이 여자임을 증명할 수 있다. - P570

스테피, 당신을 낳기 전 갓 태어난 두 아이를 잃고 비탄에 빠졌던, 그러나 끝내 얻은 독자를 유모에게 맡겨 놓고 밤마다 시내로 놀러 나갔던 당신의 어머니는 어떻게 되었나요? 그리고 당신의 아버지는요? 전쟁 중 부다페스트에서 당신 스스로 당신을 지킬 수밖에 없도록 길에 버려 둔 사람, 바르 미츠바에 오지 않았고, "내 아들, 이슈트반 팔루디에게는 1리라를"이라고 유언장에 썼던 그 아버지 말이에요. 그리고 당신의 딸은요? 당신이 바라는 손주도 낳지 않고, 이토록 특별한 재발명 혹은 재주장의 행위에 당신이 초대하기 전까지는 당신 삶에서 스스로 추방돼 버렸던 딸은요? - P603

살아 있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유대교도인가 기독교도인가? 헝가리인인가 미국인인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너무 많은 상반되는 것들이 함께 존재했다. 하지만 그녀의 누워 있는 몸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우주에는 단 하나의 구분, 단 하나의 진정한 이분법이 있구나. 삶과 죽음. 다른 모든 것들은 그저 녹아 없어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 P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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