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Apple > 거짓을 의지하며 살아가기
동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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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동굴 우화.
동굴에 결박당한 채 살아가는 인간은 고개도 돌리지 못한채 눈앞에 그림자만을 실체로 여긴다는 이야기.
오래전의 철학자의 이야기가 너무 현학적으로 여겨진다면,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떠올려보자.
그저 태어날때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있는 것.
그 밖에 어떤 진실이 숨겨진지 모른 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만 당연한듯 섭취하며 살아가고 있다.
플라톤의 동굴 우화에서 제목을 빌려온 주제 사라마구의 "동굴"은
무자비하게 쏟아내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너무도 빨리 변해버리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채
뒤켠으로 물러나버리는 아날로그적인 인간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서 주어지는 것을 안정적이고 올바른 것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인간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도자기를 구우며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시프리아노 알고르는
가업을 물려받은 딸과 함께 "센터"에 도자기를 구워 팔아가며 먹고살아가는 도공이다.
어느날, 센터는 그에게 더이상 당신의 도자기가 필요없다고 한다.
좀더 값싸고, 좀더 튼튼한 플라스틱 그릇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기 때문에.
몇대째 내려온 가업인데다가 60년인생을 모두 받쳐왔던 자신의 직업의 존패위기에 닥친 이 도공은
딸과 함께 새로운 아이템으로 도자기 인형을 내놓는다.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인생과 진실이 담겨져 있는 일.
그러나 재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속에서, 이제는 바다도 비도 모두 인공으로 만들수 있는 거대한 세상속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두 도공은 좌절한다.
 
경비원으로 일하는 사위덕에 이제는 센터에서 살게된 늙은 아버지와 딸은
첨단이다못해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센터안에서 생기를 잃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센터 지하동굴에서 발견된 여섯구의 시체.
플라톤의 동굴 우화에서처럼 결박당한체 죽어 해골만 남아버린 여섯구의 시체를 눈앞에 두고,
시프리아노 알고르는 깨닫는다.
마지막 피난처라고 생각했던 센터는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 어딘가에는 자신이 원하는 삶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그는 떠난다.
 
늙은 도공 시프리아노 알고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내 마음 졸이고 그들이 잘되기를 바랬던 것은
이제는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들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을
그들의 삶에서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루 살아가기 급급한, 그나마도 위협을 받고 있는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에서
정말로 중요했던 것은 진실따위가 아니라 생활의 안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눈을 가린체 살아가도 불편함을 느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진실을 보는 눈을 가리며 하루 살아가는 것을 고맙게 여기라며 노예처럼 부려먹는 거대한 사회.
그 거대한 사회 역시 언젠가는 세상에서 도태되고 말겠지.
하루 하루 유행이 바뀌듯이, 물건도 생각도 인간도 한낱 소모품으로 바뀌어버릴 것이다.
불과 몇십년전, 누구나 자기 전화를 들고 다닐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은 참 무섭다.
금방 일어서고, 금방 무너져버린다.
이런 세상 어디에서 인간적인 것을 찾을수 있을까.
책을 보는 내내 가슴이 아려왔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독자에게 친절한 작가는 아니다.
처음 그의 소설을 읽는 사람은,
따옴표하나 제대로 표시되지 않고 띄어쓰기조차 되어있지 않는 글에 갑갑함을 느낄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팔순을 넘긴 이 포르투갈 작가와 친해져야한다.
그는 독자에게 언제나 얘기하고 싶어한다.
그가 사랑하는 인간적인 가치를.
때로는 충고하며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위로하며....
 
주제 사라마구. 그는 진정한 인간이다.
삶의 가치를 알고, 인간의 가치를 알며, 삐딱하게 바라보는 동시에 따뜻하게 바라보는,
이 시대의 현자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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