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말은 누구나 접해봤을 것이다. 적어도 스릴러나 미스터리 쪽 영화, 소설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들어봤으리라 생각된다. 그 보편적인 말속엔 무언가 더 숨겨진 것이 있다고 시사하는 것만 같다. <눈은 진실을 알고 있다> 역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운을 떼었지만 사실 이 책은 무언가 더 숨겨진 것이 있음을 은연중에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시각'과 '각막'을 투영해 시각이 보는 현실과 각막을 통해 볼 수 있는 죽은 시간에 대해 말하고자 함이 아닐까 싶다.
<육체가 스스로 자신을 그릴 수 있는데 왜 캔버스 위에 육체를 그리느라 시간을 낭비해야 할까? 극단적인 의미로 육체가 캔버스 자체가 될 수 있는데 왜 쓸데없이 보조 도구를 낭비해야 하는 걸까?>
첫 장에서 등장해 가장 처음 목숨을 잃은 제리 코, 뉴욕 시장의 아들이기도 하며 촉망받는 보디 페인팅 아티스트 였던 제럴드 마샬리스의 미친 광기와도 같은 예술 행위는 육체 그 자체가 예술이라 말한다. 이 책에서, 적어도 제리 코에게 있어서 예술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손끝의 예술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인 것이다. 제리 코의 각막이 사고로 연인을 잃은 모린에게 운명적으로 이식되어 죽은 '제럴드 마샬리스'의 기억으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듯 기억은 뇌에서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이루고 있는 신경세포, 그 육체 자체가 기억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여름향기란 드라마와 엔젤하트라는 만화책에서도 '심장에 각인된 기억'으로 인해 사랑을 하기도 하며, 또 죽은 자의 기억을 쫓아간다. 그렇다면 기억이란 뇌 속에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심장이든 각막이든 우리의 몸 구석구석에 각인되었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사실적으로 짚고 넘어가자면 말도 안되는 상황이기는 하다. 실제로 심장을 이식 받은 사람이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을 알아보는 경우가 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픽션으로 만들어내어진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니 굳이 그러한 사실에 신경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나역시도 그다지 별다른 생각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사건은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재로 비상을 하듯 급격하게 솟구쳤다 추락하듯이 일어난다. 1권에서는 나오는 인물들의 소개나 사정에 대해 알아가는 편이었다면 2권부터는 범인과 수수께끼 같은 추격전이 시작된다. 자신있으면 어디 잡아봐, 라고 하는 것 같은 사이코 연쇄살인범과의 술래잡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찰스 슐츠의 만화 '피너츠'에 나오는 캐릭터 라이너스, 루시, 스누피, 피그펜을 둘러싼 채로.
각기 연관없는 이야기들이 한 템포씩 느려지다 맞물려 돌아가는 수레바퀴처럼 체머리를 흔들며 정신없이 굴러가는 동안 사이코 스릴러라고 하기엔 다소 밋밋한 사건 전개에 하품을 하다 채 입을 다물새도 없이 눈알이 빠지도록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만다. 그러나 깊게 파고 들어 갈 수록 어둠 속에서 조용히 몰아치고 있는 바람의 방향을 알아챌 수는 없었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단순 사이코 연쇄살인범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때 쯤 서서히 드러난 피그펜의 존재가 스누피의 죽음위로 결정적인 단서를 남기고 간 덕분에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안심을 하게되지만 그 역시도 찝찝하다.
책 두께가 아직 절반이나 남았다는 것이 말해주는 것은, 아직 진범이 잡히지 않았거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단조롭지만 나즈막한 목소리로 조용히 진행된 사건이 큰 파동도 없이 물 속에 가라앉는 것 처럼 찝찝함을 느끼며 막바지를 향해 갔다.
남자이기도 하며 여자이기도 한 아름다운 리자와 제리 코의 삼촌인 조던, 뉴욕 시장인 조던의 형과 연인을 잃은 모린이라는 여형사가 '제리 코'로 인해 서로 연관성을 가지기 이전 부터 진실은 철저하게 계산된 모습으로 훗날을 기약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도 싶었다. 10만 달러를 위해 피그펜과 잠자리를 한 리자와 라이너스의 모습 그대로 기괴한 죽음을 맞이한 제럴드 마샬리스의 삼촌인 조던, 그들의 만남 자체는 살인범이 예상하지 못했던 장치적 오류였는지는 몰라도 사건은 모린에게 이식된 '각막' 속 죽은 기억으로 인해 안개속에 갇혀있던 진범의 얼굴이 드러나게 된다. 물론 모린에게 이식된 제리 코의 각막 역시 살인범이 예상하지 못했던 오류일 것이다. 어쨌거나 죽은자의 기억으로 인해 연쇄살인사건은 끝을 맺는다.
만화 피너츠의 캐릭터에 빗대어진 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해보자면, 나는 무엇이 정의인지 알 수가 없어진다. 덴젤 워싱턴과 다코다 패닝이 나온 <맨온 파이어>에서 복수를 다짐하던 덴젤 워싱턴의 초연한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더욱더 알 수가 없어졌다.
"용서는 저들과 신 사이의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피그펜은 그 누구의 용서를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 모린의 총에 의해 동생을 잃은 아르벤 갈라니가 모린의 연인인 코너를 죽이고 모린에게 복수를 한다. 내심 나는 모린이 아르벤 갈라니에게 어떠한 복수를 할까 기대하고 있었지만, 모린이 손도 쓰기전에 세자르 황이 그 복수를 끝맺는다. 줄리어스 황, 피그펜의 아버지인 세자르 황은 모린이 줄리어스 황의 혐의를 풀어주어 그 보답으로 아르벤 갈라니를 죽여준 것 같지만 결국 줄리어스에겐 어떠한 벌도 내리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들의 목줄기를 조악한 집안에서 총구가 겨눠진 손을 덜덜 떨며 그저 살리기 위해 아무런 마취도 없이 메스로 그을 수 밖에 없었던 한 아버지의 처절한 복수, 그 끝이 서럽도록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