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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골의 서
로버트 실버버그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내게 있어 첫 SF소설인 '두개골의 서' 는 '영생'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SF라고 저자는 말한다. SF란 무엇인가, 부터 짚고 넘어가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긴 했으나 내겐 첫 SF 작품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나는 이것이 SF인지, 아니면 철학의 미학이 담긴 책인지에 대해서는 알길이 만무하다. 비교할 대상조차 없기에 본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넘쳐나는 철학적 메시지와 더불어 유대인의 사상, 종교적인 배경과 낮게 깔린 조소, 신랄한 독설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고 그 테두리 조차도 SF적인 판타지 요소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저자의 말대로 '영생'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므로 이 책은 SF인 것이다. 역자의 말을 빌어보자면 근본주의 하드코어 SF독자가 아니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라는 말이다.
다 읽고 난 후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저 먼 우주 속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나 혹은 E.T 의 자전거, 혹은 로보트 관련된 많은 SF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메마른 모래가 사각, 거리며 부서지는 것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듯 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점에서 이 책은 37도, 아니 40도를 웃도는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는 모래 사막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허망하고 덧없는 여행인 것이다.
이렇다할 사건 없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건이라면 '두개골의 서'를 발견했다는 것과 두개골의 서에 적힌 '영생'을 찾아 여행을 하는 중이라는것 정도라 할 수 있겠다.
두개골의 서를 가장 처음 접하게되고 '영생'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 큰 몫을 해낸 소심하고 자신의 생각에 갇혀있는 유대인과 세상에서 모자랄 것없이 자란 귀족 사회의 대표적인 오만함 그 자체인 티모시, 그리고 티모시의 친한 친구. 잘생기고 머리도 좋으며 완벽하지만 '죽음'에 대해서 만큼은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올리버와 올리버를 짝사랑하고 있는 게이 네드는 일리야의 말을 전적으로 믿기도 하며, 희망을 걸기도 하며, 또 하나의 기분풀이라 생각하며 그 여행에 동참한다. 마침 네명이었고 두개골의 서, 영생을 위한 여행의 필수 조건이 맞춰지는 것이니 마다할 게 무엇이겠는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면 해봐서 나쁠 것은 없다는게 그들의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뭐 나도 그 생각에는 어느 정도 동조한다. 하나 안하나 본전치기라면 해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고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며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읽다보면 네 명의 캐릭터가 가지는 선명한 개성과 인격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도통 어느 캐릭터에게도 정을 줄 수가 없다. 어딘가 비틀어진 것 같고 무엇인가 갈증을 일게하는 불완전한 요소들의 불협화음이 듣기 좋은 음악이 되어줄 수 없듯이 이들 네명은 처음부터 친구라는 느낌보다는, 타인과 타인이라는 느낌이 필연적으로 강하게 어필되어 온다. 결말을 향한 우연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사회적, 문화적 차이일수도 있겠다. 년대부터 다르니까. 아니면 여성과 남성의 차이일런지도 모른다는게 내 생각이다.

티모시와 올리버 그리고 일리야와 네드.
두 현실주의자와 두 이상주의愍?대립.
네 사람은 '영생'을 찾아 별다른 사건 없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그런데 의문이 생기는건 영생을 찾기 위한 아홉번째 비의때문인데. 그 비의가 무엇이냐 하면. 여행을 떠난 네 사람 중 두 사람이 죽어야만 최종적으로 '영생'을 두 사람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도 또 조건이 붙는데. 두 사람 중 하나는 자신을 버려 자멸해야 하며, 또 다른 하나는 누군가의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네 사람이 친구일때 제 아무리 '영생'에 대한 환상이 크다 하여도 굳이 두개골의 서를 찾아 떠날 필요가 있었을까. 만약 진실이라면 섬뜩한 일이 아닌가. 확실히 사실화 되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어느 정도 의중에 둘만큼 진지하게 내 친구의 죽음을 떠올려야 한다는 것인데. 장난으로라도 결코 떠올리기도 상상조차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어째서 이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서로에게 드러내지 않은채 속으로 그 죽음을 그려볼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그들의 마음 속에 내재된 시커먼 비밀의 덩어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티모시와 올리버. 그러나 올리버는 죽음자체를 기피하려 했으며 이들 네명 중 가장 '영생'을 믿고자 했고 얻기 위해서 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였다. 그렇기에 올리버는 죽을 수 없다. 희생양이나 자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티모시의 경우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그가 자멸할 이유는 없다. 세상은 티모시의 밥상이다. 차려진 밥상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두 사람. 자살의 미학에 심취해 있는 네드는 올리버와의 하룻밤이라면 자신의 목숨을 내줄수 있다 말하기에 이미 네드는 두 희생양 중 하나이고 일리야는 힘없고 약하기 때문에 약자생존 법칙에 의거해 자동적으로 두번째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네 사람은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죽는다면, 이란 가설을 세웠을때 누가 죽어야 하는지 또 누가 살아서 '영생'을 거머쥐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읽는 독자들은 이 트릭에 어김없이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나역시도 그러했고. 그렇다고 대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나약하고 비겁한 생각의 줄기로 이루어진 첫 시발점 부터 저자는 결말을 시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뒤늦게야 깨닫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된 이후부터 이야기는 치밀하게 클라이맥스로 치닫게 되고 그때서야 아, 내가 뒤통수를 맞았구나 싶어지는 것이다. 어쨌거나 처음 접한 SF소설이었지만, 장르가 모호하다 느껴지는 것은 지나치게 철학적인 이 분명한 캐릭터들 덕분이기도 하다. 흥미 유발과 더불어 긴장감을 부추기는 요소는 '영생' 이기도 하면서 또 '죽음'이기도 하다. 다른 말인데도 색이나 크기 무게가 같다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리고 그 '영생'이란 과연 '죽음'과 비례해 행복한 삶 자체를 꼬집어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처음 접한 SF 소설이었지만 재밌게 읽었다. 처음에는 철학적인 생각들의 무리 속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웠으나 점차적으로 주변환경에 적응되어 가듯 익숙해졌으며 이제는 책 속의 캐릭터들에게 저자가 선보이는 블랙유머처럼 나역시 그들에게 시덥잖은 농담을 던져볼 수 있었다.
뜨거운 태양이 살갗을 찢어낼 듯이 후두부를 내리칠때. 갈증에 허덕이며 사막의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가듯 죽음과 삶 역시 본디 흙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퇴화하고 변질되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며 이들의 '영생' 탐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지만 과다한 스포일러는 해롭기에 이쯤【?타이핑을 멈춰야 할 것 같다. 입안이 까끌거리는 모랫바람 속에서 한동안 헤매게 된다 할지라도, 신랄한 사회풍자적인 이 책 속에서 어떤 메시지를 찾아낼 수 있다면 네 사람의 떠난 '영생' 탐험처럼 본전치기는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