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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소녀 ㅣ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13
부희령 지음 / 생각과느낌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자신을 향한 나직한 고백
일본 소설이 책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작가의 소설보다 일본 소설을 주로 보고 있었다. 일본 소설이니까, 가 아니라 건조하고 간결한 문체를 즐기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로는 도통 맞지 않는 부분이 소설에서는 왜그리 죽이 잘 맞던지. 저번의 러시라이프도 일본 소설이었고, 안그래도 우리나라 작가의 소설을 접해봐야겠다 벼르고 있던 차 리뷰글을 올리기전 부희령의 고양이 소녀란 책을 알게되었다.
고양이 소녀, 라는 그 제목에 솔깃했지만 그때까지도 별 다른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만약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난 쓰레기통을 선택할 수 밖에 없어. 저 바깥세상이 내 자리라면, 힘들더라도 난 그걸 받아들일 거야."
란 대목을 몇 번이나 곱씹어 읽었는지 모른다.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난 쓰레기통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 지금의 나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쓰레기통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그 말이 어찌나 절절하게 다가오던지 그때부터 고양이 소녀를 보고싶다고 생각했다.
책이 오자마자 부희령의 고양이 소녀를 단숨에 읽어내렸다.
[고양이 소녀] 속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미신처럼 떠도는 이야기가 있는데 '민영'이처럼 고양이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유독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이 '민영'와 같은 고양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들 사이에 떠도는 미신이기에 명확하게 알 수는 없는 부분이다. 고양이는 한번도 키워본 적이 없고 고양이라고는 도둑 고양이 밖에 본 적이 없다.

책 본문중에 '야옹이'가 궁금이가 하는 말에 발끈해서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훔쳐먹지도 않고 버려진 음식을 먹을 뿐인데 왜 도둑고양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에 순간 멍해졌다. 분명 도둑 고양이는 무언가를 훔쳐간 적이 없었던 것이다. 도둑처럼 살금살금 다니기에 야생고양이를, 들고양이를 도둑 고양이라고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고양이의 입장에서보면 억울한 일이 아니던가. 그런데 소수의 도둑 고양이들은 내 어린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내가 먹고 있던 소세지를 빼앗아 가는일도 있었으며 우리 집 부엌으로 몰래 들어와 엄마가 끓여놓은 꽁치조림의 대가리를 물고 내빼던 기억이 있기에 '야옹이'가 덜 억울해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고양이의 시점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너무도 인간스러운 고양이로 인해 비식비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아아, 이런 부분은 고양이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며 수긍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입장의 차가 상대방을 향해 독이 될수도 또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볼 수 있었다.
부희령의 고양이 소녀는, 새끼 고양이의 홀로서기를 냉정하고도 동화적인 요소를 곁들여 즐거운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물론 새끼 고양이 '야옹이'만이 아니다. 고양이와 닮은 '민영' 역시 부모의 품이 아닌 현실 속에서 홀로서기를 해야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볼 수 있다. 그?우리 역시 나 자신의 나약함과 어리숙함에서 독립하고자 하는 홀로서기의 첫발을 내딛는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명 자아성찰의 여행이라고 할까.
감성적인 부분 뿐 아니라 사춘기로 접어든 소년 소녀들 역시 고양이와 닮지 않았던가. 나도 어렸을때에 내 어머니께 자존심만 쎈 고양이가 아니었나 싶어졌다. '민영'이 처럼 빽빽 소리나 치고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상처를 주고 그러다 등짝을 두들겨 맞고. 화를 풀어주려고 쓰다듬어주는 그 손길을 매정하게 뿌리치고 앵앵거리며 울던 그런 기억들. 어릴적에 난 엄마가 곁에 없으면 빽 울고 엄마 찾아 삼만리를 했다는데, 지금은 도둑 고양이처럼 엄마 곁이 아닌 다른 세상속을 헤매고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읽는 내내 고양이와 얽힌 에피소드 몇가지가 떠올라 더 즐겁게 읽지 않았던가 싶다. 그만큼 부희령 작가가 적어낸 고양이 소녀 속, 야옹이와 민영은 고양이를 닮아있다. 나도, 우리도 모두가 닮아있다. 그러나 닮아있을 뿐이다.
배고픈 고양이에게 과자 부스레기를 바닥에 던져주고 털을 죄다 헝클이길 바라는 이기적인 심보처럼, 이 책 역시 그렇다.
고양이 사람, 고양이가 좋아하는 사람, 고양이와 같은 사람이 나와 그 모습을 보여줄 뿐이지 무언가를 제시하거나 해결을 하기 위한 책은 아니다. 엄마찾아 삼만리를 하듯 긴 여정을 통해 무언의 깨달음을 얻고 그렇게 알아가는 길고 긴 여행이 아닐까.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어미 고양이의 심정으로 본다면 그 문제의 대안이 달라질 것이고, 또 내가 새끼 고양이의 심정으로 본다면 그 역시 문제에 대한 답이 다를 것이다. 정해진 답은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찾아야만 그것이 진정한 답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야옹이의 어미 고양이가 푹신한 쿠션과 맛있는 음식을 버리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생활을 택한 것처럼, 그것이 쓰레기통 일지라도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을 택해 홀로 걸어갈 수 있는 의지가 있지 않아야 하는가 싶다. 어미 고양이가 냉정하게 새끼 고양이를 내치는 듯이 힘들다고 기대고 주저앉는다면 그 답을 얻는 시간이 더욱 길어질 것이라 생각되었다.

재밌게 읽었고 한편의 동화처럼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해준 즐거운 헤프닝과도 같은 소설이었다. 다만 어린 친구들이 보기에는 찰리의 쵸콜릿 공장처럼 이해의 범위가 협소하지는 않을까 싶은 염려가 생긴다. 부희령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이 곳곳에 따뜻한 눈길처럼 남아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얼마만큼 전해지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동화는 동화일 뿐 그 감동을 갖는 순간은 생각이 자라난 후일 테니 말이다.
외롭지만 않다면, 가슴 속에 따뜻함을 간직할 수 있다면 어떤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처럼 부희령의 고양이 소녀가 가슴 속 한편에 따뜻함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눈으로 보는 것만이 다가 아님을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부희령의 고양이 소녀는 청소년 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읽기에도 썩히 나쁘지 않은 책이다.
한가로움 속의 충만한 여행을 위한 필독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 자신을 향한 나직한 고백처럼 가슴 한편을 따뜻하게 해줄 무언가를 찾는 사람이라면, 부희령, 그녀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해들을 수 있을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