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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난 참 온다 리쿠가 좋다.
이야기꾼다워서 좋다.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서 좋다.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인데도, 사실 그렇게 하기가 너무너무너무 어렵기 때문에. 경외감이 마구마구 솟는다. 난 온다 리쿠가 참 좋다.
내립다 읽어댄 까닭에 '온다 리쿠'의 독특한 스타일이 질릴 무렵, 더이상은 읽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완.소.책을 통해 다시, 온다 리쿠를.. 만났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책.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역자가.. 일본의 책 리뷰 사이트에서 봤다는 평처럼 말야.)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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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기다리는 사람들
제 2장 이즈모 야상곡
제 3장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
제 4장 회전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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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회전목마」의 다음 구절에 따르면 각 장은 큰 이야기를 위해 보이지 않게 연결된 또 하나의 플롯인 셈이다. 멋지다. 정말!
막연히 생각하던 기획방향은, 1장 「기다리는 사람들」에서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소설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2장 「이즈모 야상곡」에서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3장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에서는 앞으로 쓸 것이고, 4장 「회전목마」에서는 이 소설을 작가가 지금, 바로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P. 307)
너무 좋다. 여름 날, 재미난 이야기는 너무 끝내준다. 무더운 한 낮에 만난 소나기처럼.
>좋았던 구절 보기
이럴 땐 담배를 피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담배 냄새를 몹시 싫어한다. 늦은 밤 홀로 애를 끓이면서 워드 프로세서 앞에 앉아 있는 것이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일에 열중하고 있는 여성은 아름답지만, 소설을 쓰고 있는 여자는 추하다고 생각한다. (중략) 그래, 어차피 나 같은 거 재능도 없어, 하고 책상 위에 털썩 몸을 던져보다가도, 그렇다고 위로해 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스스로 바보 같은 기분이 들어서 몸을 일으키곤 한다.
몇 가지 기억. 세계는 돈다. 역사도, 공간도. 돌도 또 도는 세계의 틈새로 섞여 들어간다. 나도 언젠가 기억 속의 세계로 돌아간다.
출퇴근길 거리에, 홀로 먹는 저녁 밥그릇 속에, 영화관에서 나와 추위에 떨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지하철 입구에, 문득 잊고 있던 그리운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거기서 무엇을 발견해야 될까?
따스한 어둠 속에서 나는 눈을 감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