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
하미나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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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과거 세대의 고통의 영역이 현 세대의 것과 다르다면, 그것은 환경과 사회가 변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음 세대가 자신과 다르게 상대적으로 가벼워 보이는 것을 고통으로 느낀다면, 사실 과거 세대는 그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괴로웠던 순간, 틀림없이 내 자식에게는 나와 같은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해주리라 결심했을 그들의 다짐이 성공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의 눈에 젊은 세대들이 별 것 아닌 것으로 괴로워한다면, 질문은 '어째서 그들은 나약해졌는가'가 아니라 '어째서 고통은 근절되지 않는가'와 '그 다음 세대에게 닥칠 고통은 무엇이 될 것이며 그것를 줄이기 위해 현재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과거 세대의 '세상 좋아졌다'는 말에는 자신이 사회가 다른 고통을 느끼도록 기여했음을 알아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타인에게 자신과 똑같은 괴로움을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폭력적인 의도는 없으리라 믿는다. 

각 세대는 '고통의 크기'를 비교하려는 형태의 접근을 내려놓고 '고통을 느끼는 영역'에 대한 고찰을 시작해볼 필요가 있다. 
전쟁과 살육이라는 고통은 현 시대에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전 생애 동안 경험하지 않은 시대적 집단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고통' 자체는 여전히 존재하며, 그것을 감각하는 괴로움 역시 실재한다. 

그것을 보다 덜 괴로운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
그 방향에서 새롭게 생겨나는 고통들에 관해 관심을 가지는 것. 

그것이 보다 나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방향성이 아닌가 싶다. 현존하는 고통을 과거에는 없었으므로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덮는 것이 아니라, 감각하지 못했던 것을 인지하는 기회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우리가 품을 수 있는 희망이다.

 

   

 

 

나는 사람들이 고통과 공포, 그리고 혼란을 마주했을 때 그걸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는지에 관심이 있다. 사람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과, 그에 따라 실제로 다르게 존재(재현이 아니라)하는 세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싶다. - P49

고통을 해석하는 방식은 한 개인이 지닌 문화적·지적 자원에 따라 달라진다. 고통의 표현 역시 가족, 학교, 미디어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여러 개념이 작용한 결과이다. - P50

특정 사회에서 사람들이 호소하는 고통은 그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성과 관련이 있다. 이들이 고통을 표현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심적인 고통이 어떤 맥락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탐구할 수 있다. 커 메이어는 ‘우울증‘이라는 진단 역시 아주 미국적인, 독특한 형태라고 말한다. - P55

"나는 지금 아프다고 말하는데 "아니야, 너는 아프지 않고 유별난 거야" 이렇게 말한 거니까요. 저는 정말 해서는 안 되는 말은 상대방이 느끼는 걸 부정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 P214

‘누가 제일 아픈 사람인가?‘로 논의가 흘러가선 안 된다. 고통을 비교하는 일은 불가능할뿐더러 해롭다. 끊임없이 피해의 연대기를 나열하게 된다. 모두가 피해자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곳에선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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