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드 - 기후 위기 시대, 제2의 전기 인프라 혁명이 온다
그레천 바크 지음, 김선교 외 옮김 / 동아시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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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술도 더러운 잔에 따른다면 그 맛이 변질될 것이다. 

하물며 그 잔이 깨어져 새는 잔이라면 어떨까?


저자는 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것과도 다르며, 그것을 전달하는 인프라인 '그리드' 역시 흔히 연상하는 수도관 같은 개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에 그만한 비유도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전기가 없는 삶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다. 

휴대폰 배터리가 10% 남짓 남았는데 충전할 방법이 없을 때 덜컥 불안해지는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온수, 가스 또는 하이라이트 불꽃, 냉장고, 휴대폰과 각종 전자기기 및 자동차까지 우리는 거의 모든 순간 전기를 소비하며 살고 있다. 그럼에도 실체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은 콘센트나 충전단자, 혹은 스위치 정도로만 겨우 존재가 인식될 뿐이다. 




요약


이 책은 2015년에 쓰여진 책이지만 21년의 지금 읽어도 전혀 시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의 특수한 지역적 특성이나 세세한 수치들이 약간의 장벽이 될 수 있겠지만, 그런 부분을 과감히 흘려 읽는다 해도 저자의 핵심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놀라운 부분들은 그 외부에 있다. 


그렇다면 '그리드'란 어떤 것인가?


먼저 1장에서 우리가 풍력 발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뒤집으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더 효율이 좋고 발전량이 큰 풍력발전기를 쓸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만들어낸 전력을 제대로 받아낼 수 있는 '그리드'가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장에서는 우리가 '전선' 또는 이제는 조금씩 드물어지고 있는 '전봇대' 정도로만 생각하는 전기의 길, '그리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고, 지금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서. 그러다보면 전기의 발견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다. 


3장 인설의 법칙에서는 토마스 에디슨 밖에 떠올리지 못했던 내게 그것을 상용화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사업가 '인설'에 대해 설명해준다. 어째서 지금의 그리드가 그렇게 조각 조각 이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럼에도 거대 그리드가 중심을 차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4장은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겠지만 그만큼 충격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점은, 애초에 저자가 이 책의 독자층을 좀 더 확실히 했으면 좋았겠다는 점이다. 학술서라고 보기에는 들고 있는 예시나 농담 등이 대중적인데, 그렇다면 수치보다는 도표와 V=IR 정도의 가벼운 기본 수식을 통해 "왜!?" 그런 상황이 되는지에 대해 더 설명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루고 있는 내용은 무척 흥미로웠다.


리뷰 


예전에 읽었던 <경제 저격수의 고백>이 많이 생각나는 책이었다. 거대 다국적 회사들의 방식과 국가 간의 알력 및 경제적 이해 관계의 첨예한 대립도 그러했지만, 무엇보다 그 책의 저자였던 '존 퍼킨스'가 은퇴 후 에너지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드>의 저자는 전기를 아껴쓰자거나, 불편을 감수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현재와 같은 소비를 유지하되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더 많이 만들어 더 많이 소비하자!!고는 하지 않았다)

 

역자들이 역자 후기에서도 한국의 상황과 잘 비교하여 설명해주었지만, 한 때 우리나라도 세금 지원 혜택 등으로 태양광 패널 설치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 (현재는 아파트의 경우 미관 및 낙하 위험성 등으로 주민 합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당연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원의 공급이 실상 얼마나 쉽게 끊어질 수 있는지, 그때 대체재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 현대인이 얼마나 무력한지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떨었다. 한국의 환경상 미국처럼 개인용 발전기를 준비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점점 소형화되고 상용화되고 있는 휴대용 태양광 패널 등은 몇 년 안에 구매할지도 모르겠다. (초와 라이터 몇 개 정도는 준비해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조금씩 발전의 형태가 다양해질 경우에도, 개인이 생산한 전기 역시 실사용을 위해서는 전력 회사의 전선망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전기의 생산자로서 얻을 수 있었던 이익마저 줄어들고 있는 '유틸리티'가 '그리드'의 개보수의 유일한 관리자가 된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에 대해 묻는다. 또한 스스로 생산할 수 없는 '그리드' 의존자들은 점차 증가할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도 경고한다. 매우 인상 깊은 부분들이었다. 


또 한 가지, 스마트 그리드가 사용자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정보의 양을 생각하면 다소 우려스럽지만, 그 편리함과 유용성에 대해서는 상상 이상이었다. 확실히 볼더에서의 사례처럼 '유틸리티'가 지나치게 과한 결정권을 갖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정전이 일어나기 전에 실시간으로 수요를 계산하고 대기 전력으로 전환해 브라운 아웃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은 괜찮은 방안이다. 그에 더해 테슬라 등의 대형 모바일(움직이는) 배터리들이 사람들의 전기 사용이 많은 시간에는 일종의 마이크로 그리드 역할을 수행해주고, 요구량이 줄어드는-그래서 '유틸리티' 측에서는 더 저렴하게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시간대에 충전함으로써 모두의 이익을 추구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겠지만, 이미 전기가 '공유재'의 성격으로 인식되고 있다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특히나 무선 전달 기술이 보다 원거리를 받쳐주게 된다면 말이다.


전기는 그 어떤 것도 닮지 않았다. 전기는 고체도, 액체도, 기체도 아니다. 빛이나 열과도 아주 다르다. 바람이나 파도처럼 움직이지도 않는다. 우리가 아는 것 중에서 전기와 닮은 것을 굳이 꼽자면, 중력 정도일 것이다. 말하자면, 전기는 일종의 힘이다. - P73

변덕스러운 이 지역의 바람이 완전히 멈추면, 이 거대한 장치로 공기 중에서 수확한 전자들은 사라져 버린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리드는 균형을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는 언제나 생산과 일치해야 한다. 전기를 나중에 사용하려고 저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은 없다. 만일 전력이 지금 당장, 어디서든, 어떤 방법으로든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이를 사용할 수 없다. - P45

이들은 전기신호 패턴으로 실험대상 가구에서 <라이온 킹The Lion King>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슈렉 2 Shrek 2>를 보고 있는지 판별할 수 있었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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