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 - 안견과 목효지 꿈속에서 노닐다
권정현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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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은 산 모퉁이를 돌아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한걸음씩 옮길 때마다 복숭아 꽃 내음이 그 만큼 짙어집니다. 살포시 흩날리는 복숭아 꽃에 실려온 내음은 코를 간지려 정신을 아득하게 만듭니다. 굽이치는 모퉁이를 돌아 펼쳐진 풍광은 어설픈 말이나 글로 옮기기 턱없이 부족합니다. 꿈에나 그리던 무릉도원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권정현씨의 '몽유도원'를 읽었습니다.

한번쯤은 무릉도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가 그리는 이상향, 도원의 풍광을 어설프게나마 살짝 그려봤습니다. 예로부터 도원을 꿈꿔 그 이상을 현실의 화폭에 담아내고자 하는 노력은 많습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 역시나 꿈에나 볼 법한 무릉도원의 풍경을 화폭에 힘차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일본의 국보로 우리가 쉽게 볼 수는 없지만, 자랑스런 우리 유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 책은 몽유도원을 모티브로 안평대군, 안견, 목효지란 세 주인공이 그리는 인간의 꿈과 욕망을 이야기 합니다. 무릇 나라를 돌봄에 있어 그 으뜸이 백성이 듯이 이 세 주인공의 뜻 또한 그러합니다. 그 뜻이 길로 순탄히 이어지면 좋겠습니다만, 역시나 소설속 배치된 상반된 인물과의 갈등이 소설의 큰 기둥입니다.

이룰 수 없는 꿈, 도원
태평성대의 시기라 자평하는 시대는 많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만인이 평화롭고, 자유로운, 그리고 경제적 자유가 보장된 시기란 역사이래 존재하지 않습니다. 요순시대인들 과연 태평성대라 단언할 수 있을까요? 단지 왕의 입지나 권력의 정당화를 탄탄히 하기 위한 하나의 모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꿈을 키우고 사는 존재이기에, 시대별로 태평성대, 무릉도원에 대한 꿈은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이 꿈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백성, 노동자, 국민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가진자의 편입니다. 너무 시니컬 하다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만, 가진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지금도 국민이 주인인 나라는 소원합니다.

놓을 수 없는 꿈, 욕망
가진자의 꿈, 인간이 결코 놓을 수 없는 꿈은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욕망입니다. 조금 더 가지기 위해, 그 목표가 돈이 됬든, 권력이 됬든 인간은 지금보다 조금 더, 조금 더 가지길 원합니다. 그 꿈이 욕망이란 얼굴로 나타납니다. 그 과정 속에 사회적 약자의 입지는 좁아집니다. 내 욕심이 그들을 포섭할 관용조차 용납치 않습니다. 현실은 그렇게 가진자의 놀이터로 전락하게 됩니다. 제왕 통치 체제에서도 그러하고, 인민을 위한다는 공산주의 또한 공산당의 부패에 놀아납니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란 허울 좋은 명패 뒤에 숨은 자본가의 힘 또한 현실입니다.

소설 속 이야기, 그리고 현실
가진자의 꿈과, 가지지 못한 자의 꿈은 늘 상충됩니다. 그 현실의 적나라함이 이 소설에 그득합니다. 수양대군, 한명회를 위시한 가진자의 권력, 스스로의 욕망을 위해 세상을 뒤엎으려는 자와, 안평대군, 목효지, 안견 그들의 음모를 막으려는 자의 한바탕 큰 싸움이 소설 속 이야기 입니다. 소설이지만, 소설 속 결말이 현실입니다. 결국 가진자의 승리로 끝맺음 합니다.

꿈틀대는 울분과 함께 탄탄한 줄거리와 재미로 몇 일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소설 속 이야기를 현실에 빗대어 보고, 현실의 이상향을 소설 속에서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한 폭 그림에 얼킨 소설 속 이야기라 하지만, 그 이야기는 재미 그 이상의 여운이 있습니다. 제겐 현실인지 소설인지 꿈인지 헛갈린 시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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