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
이덕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정의는 승리한다, 죽어서라도 정의는 밝혀진다~ 등등의 말들을 점차 믿지 못하고 있다.
아니, 믿지 못한다기 보다 그냥 '믿고 싶은 말'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진 말이 되어가고 있다.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는 역사의 그늘에서, 잘 가려져 보이지 않는 사람들, 당대에 버림을 받았던 사람들,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우리 역사에 이렇게 멋있고 고집센(?)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가슴에 쏙쏙 들어오는 역사가 있다는 것을 역사 교과서는 왜 들려주지 않았을까. 고등학교 때 역사는 참 재미 없었다.


p202, 유수원 편을 보면 “유수원은 노론에 의해 사형당한 소론 강경파였다. 노론도 어떤 업적을 남겼음을 강조하기 위한 구차한 기술에 불과하다.” 같은 국사 교과서를 비판한 부분도 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에게 듣는 교과서 외 이야기 같다. 자가다도 깨어나 관심을 가질 것 같다. ^^;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혹은 읽으면서도)에 마음은 왜 갑갑한가. 당대에 버림을 받았던 사람들의 역사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처럼 마무리 되기를 기대했던 것일까. 나중에라도 잘 되었다는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불행하게도, 그렇게 살다가신 분들이나 그의 가족과 후손까지도 힘들게 살고 있는 것 같다.

독립과 대한민국 건국 시기의 김창숙편은 근대사여서 이야기가 더욱 와 닿는다. 자신과 가족 보다 조국을 돌보느라 온갖 고생을 했지만 너무 힘들게 살다 가셨다. 물론 가족들 까지도. 일제에 충실했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현재 살고 있는 모습과 비교하면 참 가슴 아프다.

"잘난 척 나서봤자 알아주는 사람 하나도 없다, 괜히 나섰다가 너만 손해본다"라는 말들이 현실에 찌들 수록 더 와 닿는다. 다음 달 월세에 할부 값만 생각해도 감히 회사에 대항할 엄두를 내겠는가. 내게 주어진 권리를 행사하면서도 눈치를 보는 직딩에겐 정말 역사 속의 일이기만 하고, 나와는 완전 다른 남의 일 같기만 하다. '살다 보니 그게 아니더라', '너도 살아봐라, 세상은 교과서 같지 않다', '말이야 좋지~' 같은 먼저 살아 본 사람들의 "어쩔 수 없다"는 핑계는 참 듣기 싫은 말이었는데도, 어느새 내 입에서도 그런 말들을 하고 산다.
 
기득권층의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은 상상이상이다. 이 책의 곳곳에도 나타나 있고, 현실에서도 어렵지 않게 보고 느낄 수 있다. 잘못된 것을 보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나약한 직딩이지만, 마음 약해질 때마다 콕콕 가슴을 찌르며 떠 오르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더 노련하게 그렇지만 비겁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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