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넘어서 - 도마의 비밀 복음서
일레인 페이절스 지음, 권영주 옮김 / 루비박스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1. 

    P.10 "기독교 전통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고, 사랑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P.34 "친한 친구가 열여섯 살에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때, 신자들은 그의 죽음을 가엾게 여기면서도 그가 유대인이고 '새로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영원한 벌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고, 그들의 해석에 찬성할 수 없었다. ~~ 더 이상 내가 머물 곳이 아님을 깨닫고 그 교회에서 나왔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아마도 작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기독교를 좋아하지만 뭔가 답답하다는 것.                                                                   

   이미 영지주의에 관심을 가졌으니 이 책을 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영지주의와 정통가르침이 서로 대립하던 초기 기독교회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이 책의 목적을 이렇게 밝힌다. p.43 "신약성경의 사중복음을 옹호하는 기독교도들은 도마복음 같은 가르침을 공격하고 신자들에게 그런 가르침을 이단으로 배격하기를 요구했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것이 기독교 전통의 역사에서 의미하는 바를 살펴보는 것."

2. 영지주의와 정통적 가르침이 혼합되어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 있는게 아닐까

  절에 가기를 더 좋아하면서 집안 식구들이 모두 성당을 다니기 때문에 주말마다 반강제적으로 성당에 가고 있다. 그래서 늘상 두 가르침을 비교하고 있다. 그런데  과거 가톨릭 성인들의 행적이나 가르침들을 보면 불교가르침과 그 영적구도의 자세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때가 있다. 결국은 모든 종교가 하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그냥 방식이 다른 것 뿐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P.75 에 이런 서술이 있다.  '

 선수련을 하는 미국인 노사가 "도마복음을 알았더라면 불교 신자가 될 필요가 없었을 것" 이라고 하자 다른 베네딕투스회 데이비드 수사는  도마복음을 비롯한 몇몇 비정통적 복음은 신비주의적 면이 있기는 해도 본질적으로는 교회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고 하면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모두 아빌라의 성테레사나 십자가의 성 요한네스 같은 위대한 신비주의자들의 저술에 나옵니다."        그러나 일레인은 성테레사나 성요한네스 등은 정통적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적어도 일치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녀의 간결한 진술에 지금까지의 고민이 뚜렷이 보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의무적이고 강제적으로 그런 방식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행동이 정통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게 아닐까. 즉, 데이비드 수사의 말처럼 본질적으로 같은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성요한네스등도 굳이 새롭게 영지주의를 주장하며 교회의 분열을 조장할 필요가 없고, 가르침을 널리 실천하는데 굳이 그런 방식을 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초기기독교회에서는 영지주의를 분리시켰지만 끊임없이 영지주의는 교회내로 스물스물 끼어들어왔던 것이다. 다만, 일레인은 이제 더 강력하게 영지주의를 교회내로 편입시키려는 노력 중 인 것이다.

  현재의 가톨릭교회 또한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며 끊임없이 혁신했기 때문에 그 거대한 몸집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다양한 종파의 기독교회들은 말할 것도 없다. 영지주의자들과 같은 구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분명히 현재의 교회는  중세와 다르다.   유대교회의 주류 조차도 기독교와의 공존과 조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미사시간에도 요한복음에 관한 영지주의적 해석을 들은 적이 여러번 있다. 난 당연히 가톨릭은 신비주의적 해석을 경계하니까 요한복음도 합리적으로 해석했다고 생각했는데...  요즈음의 성당의 가르침이나 태도를 보면 영지주의적 해석을 넘나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현재 가톨릭교회의 주류 해석이 뭔지 도대체 궁금하다. 내가 들은 것들은 신부님의 독단적인 해석이었을까... 한 신부님에게 들은 얘기가 아닌데...

  3. 이 책을 읽었더니 고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깊이 신학적 탐구의 길을 열어준 것 같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가톨릭과 기타교회가 영지주의적 해석을 널리 받아들이길 간절히 바랄 필요가 없이, 불교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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