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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판매중지
어머니, 세상 구경 시켜 드릴까요?
칠십의 아들이 아흔 아홉의 어머니에게 조심스레 여쭤봤다.
평생을 노동으로 시달리신 어머니에게, 세상 구경을 시켜 드리고 싶었다.
어머니는 처음엔, 아들에게 힘들지 않겠냐며 걱정을 하시지만 곧, 서장 까지 갈 수 있을지 물어본다.
서장.. 부자가 살고 있는 탑하에서 서장까지의 거리는 꽤 멀다.
얼마나 걸릴지, 갈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아들은, 갈 수 있겠다고 말한다.
어머니를 위한 자전거 수레를 만들고, 그곳에 사방으로 창을 내어, 어머니가 세상 풍경을 보실 수 있도록 했다.
칠십의 노인은 어머니를 위해 기나긴 여행을 준비한다.
평생 자신이 살아온 공간만이 세상인줄 알고 사셨던 어머니에게 더 좋은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더 예쁜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동네 주민들의 걱정과 격려를 받으며, 부자의 2년 반이 걸릴 여행이 시작 되었다.
세상 구경.
가만히 앉아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시간 낭비는 하고 싶지 않았다.
노동을 빼면 아무것도 남을 것 같지 않을 어머니의 인생에서 칠십의 아들은 세상 구경을 결심한다.
무엇이든, 어떻게 되겠지...
여행을 떠난다.
어머니, 좋으세요?
얼마나 좁은지.. 백세가 가까운 작은 몸집의 어머니가 들어서는것만으로도 꽉 차는 수레..
그 수레에 앉아 바깥 세상을 하는 백세가 다 된 어머니.
결코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의 아들이 어머니를 태운 수레를 끌면서 부자가 살고 있던 탑하에서
해남까지 여행을 한다.
처음엔 하루만 굴려도 다리가 붓고 딱딱해서 아플 정도로 긴 거리를 자전거 페달을 밟던 칠십의 노인도
나중엔 다리에 근육이 붙어서 젊은 청년들도
해내기 어려운 여행을 해낼 수 있게 된다. 자전거를 끌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길다란 밧줄을 어깨에 매고
수레를 끌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까지고 핏물로 물드는 밧줄이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굳은 살이
얹혀진 어깨 위에서 어머니를 태운 수레를 끌 수 있도록 도와준다.
2년 반의 여행을 하는동안 왕일민 할아버지의 밧줄은 몇 번이나 끊어졌다.
그럴때 마다 새로운 밧줄을 구해야 했다.
평탄한 길로만 여행을 할 수는 없었다.
때로는 산을 넘어야 했고 산을 넘는 시간이 길어지면 이틀이고 삼일이고,
깊은 산속에서 추위에 떨며 새우 잠을 자야했다.
추운 겨울날 수레에서 주무셔야 하는 어머니가 늘 마음에 걸린 왕일민 할아버지.
괜히 여행을 하자고 해서 어머니를 고생 시키는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길가에 핀 작은 꽃을 보고도 좋아하시고,
난생 처음 보는 바다를 두 눈 가득 담으시며,
그곳을 떠날땐 미련이 남아 자꾸만 뒤 돌아 보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되고,
고향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머니는 누구보다 반가워 하셨다.
고되고 힘든 여행이지만, 어머니는 '왜 이런 여행을 하느냐' 며
불평 한번 없이 그저 '좋다. 우리 효자 아들 덕분에 세상구경한다' 라며 좋아하셨다.
이 시대의 진정한 효.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여행 중 바다에 들른 적이 있다.
어머니는 수레에서 난생 처음 보는 바다를 보며 좋아하시고 계셨고, 할아버지는 바닷물에 잠시 몸을 담그고 계셨다.
그때, 그 바닷가에 다른 취재차 나왔던 기자가 수레에 계신 어머니를 궁금하게 여겨
이것 저것 물으시다가 인터뷰 까지 하게 되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부자의 여행은 중국 전역에 소개 되었고,
이시대의 진정한 효 라니 어쩌니 하는 달콤한 말들로 도시민들의 마음을 자극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라면 해낼 수 없는 여행을 하고 있는 왕일민 할아버지를 보며,
존경심을 표하며 자신들이 해 줄수 있는 모든 도움을 주려고 한다.
처음엔 ' 어떤 노인이 노모를 모시고 이런 여행을 한다더라 '
하며 감동해 마지 않던 사람들이 점점 호텔이며 식당이며 부자가 그 지역을 여행하고 있다고 하면
서로 모셔 가려고 안달이 되었다.
결국 '더 좋은 더 넓은 세상을 보여드리고자' 했던 할아버지의 마음을 자신들의 기업 홍보에 쓰려고 여러 업체에서
부자를 모지려고 안달이 났다. 처음엔 그들의 호의를 좋게 받아 들이던 할아버지도 나중엔 그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워 지고 호의가 그냥 호의가 아닌걸 알게 되고 나서는
점점 도시 보다는 시골길로 여행길을 선택했다.
어머니도 그들의 호의는 싫지 않으셨던지, 자꾸만 시골길로만 수레를 이끄는 할아버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신다.
부자는 도심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인심 좋고 정 많은 시골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때로는 한번 본 인연인데도 여행을 하면서 쓰라며 노잣돈을 챙겨 주기도 한다.
자신들이 하고 있지 못하는 효를 왕일민 할아버지가 대신 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일까?
무엇하나 아끼지 않고 도와주고 내주는 사람들..
2년 반의 여행.
어머니는 처음 여행 이야기를 꺼냈을때 부터 서장으로 가자고 하셨다.
어머니가 가고 싶으시다고 하니, 서장으로 가야 하는 왕일민 할아버지..
하지만 조금 더 젊지 못한 나이와 체력 탓에 왕일민 할아버지는 결국 중간에 행로를 바꿔야 했다.
서장까지 가다가는 어머니를 길에서 돌아가시게 할 것만 같은 불안감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안그래도 1년이 넘는 여행길에 많이 지치시고 고단하신 어머니이신데 이길로 서장을 갔다가
다시 탑하로 돌아가는건 아무래도 무리이다.
결국 왕일민 할아버지는 의사선생님과 여러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수레를 돌린다.
'그래 돌아가는 길을 다른 지역으로 해서 또다른 여행길로 만들면 되는거야'
할아버지는 그렇게 죄스런 마음을 달랜다.
다행이도 어머니는 서장으로 가는줄 아시면서 지나는 모든 여행지를 좋아하셨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어머니는 서장으로 가는게 아닌걸 눈치 채게 되셨고, 왕일민 할아버지는 모든걸 말씀드리고 용서를 빌어야 했다.
어머니는 그래도 지금까지의 여행 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다고 말씀하신다.
진작에 말씀드릴껄 하는 왕일민 할아버지는 마음의 짐을 내려 놓았다.
어머니께 더 좋은 곳을 보여 드리고 싶은 왕일민 할아버지..
그렇게 부자의 여행은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2년이 넘는 시간을 여행을 하고 다시 탑하로 돌아가게 된 부자.
참 좋았던 여행.
여행.
나도 여행을 하다보면 엄마 생각이 날때가 많았다.
대도시를 누비고 있을때 보다는 한적한 골목길을 걸을때나,
유적지를 찾아갔을때 유난히 엄마 생각이 많았던것 같다.
이번 여름에 '오사카' 교토에 갔을때도, 나라에 갔을때도 엄마생각이 너무 많이 났다.
엄마와 함께 왔으면 좋았을텐데.. 엄마한테 이런곳도 있다고 보여 주고 싶은데..
다음 여행은 엄마와 함께 해야겠구나..
나만 좋은곳을 보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음식을 먹는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든다.
언제 어떤 기회가 생겨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엔 엄마와 함께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