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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책을 읽을때 내겐 몇가지 버릇이 있다. 항상 소설 초반과 중반과 후반의 몇 장을 먼지 읽고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읽기를 시도 하는 것과 책머리를 훑어보다 액자식으로 쓰여진 소설임을 알게 되면 난 항상 띄엄띄엄 등장하는 액자 소설 먼저 읽는 버릇이다. 하나하나의 문장이 주는 감동과 묘사의 떨림들을 천천히 되새김질하기위해서 언제나 대강의 줄거리를 알고 시작해야 소설이 읽히는 이상한 버릇이다.
이번 달의 제단 역시 그랬다. 달의 제단을 읽는 동안 내내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닮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사람의 아들에서 주인공이 새로 만든 성서의 역할을 달의 제단에서는 상룡이 해석해야하는 어간이 대신해 주고 있다. 그래서 책 곳곳에 등장하는 어간의 내용을 찾아서 연결시켜 먼저 읽고, 사실 책장을 다시 처음으로 되돌리는 것이 겁이 났다.
상룡의 고종 할미와 그녀의 할미의 편지 마지막이 자진이라는 것, 할미의 편지에 대한 그녀의 할미의 답장이 없다는 더 우울한 어간의 결말이 상룡과 정실이 그리고 17대 종손 할아버지의 관계 역시 자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밖에 없는 다소 습습하고 어둑어둑한 서글픈 운명의 고리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딸을 낳은 고종할미가 자결의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듯이, 상룡의 아비가 효종어머니의 옷고름에 한번의 눈길도 주지 않고 옛 연인을 그리다 자결했듯이, 상룡 또한 효경당을 지키는 종손의 무게를 오롯하게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 되었을 쯤 전통을 지켜내야 하는 운명의 고리에서 한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다소 우울한 운명은 달의 제단이 다른 무엇인가를 말해 주지 위해 선택한 ‘돌아간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의 제단의 진정한 매력(?)은 종손의 무게, 전통과 현실의 괴리와 불협화음 속에 매몰되어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 단지 남성의 문제로만 다루지 않는 다는 점이다. 어간의 주인공은 고종할미의 우울한 희생이 효경당어미니 혹은 상룡의 친어미인 마법의 초콜릿 가게 여주인으로 그리고 다시 부엌데기, 불구 정실의 몸으로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들의 우울한 희생은 전통과 현실의 괴리나 불협화음이 가지고 오는 남성위주의 소음속에서 남성에 의해 아무렇지 않게 혹은 그녀들의 선택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종가집에 몸을 묻고 살아가는 그녀들의 몸을 사용한(?) 남성들을 통해 그녀들의 몸의 목소리로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순수하지 않은 출생과 전통을 할아버지에게 이젠 종교가 되어버린 전통을 계승해하는 상룡에게 지워진 무게 보다 정실의 몸이 들려주는 우울한 희생과 눈물섞인 아이의 발길질이 더 서글퍼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