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
이윤기 외 대담 / 민음사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신문이나 월간지에서 아주 가끔 접하게 되는 대담을 제외하고 이런 형식의 대담집은 처음이다. 제복부터 범상치 않아 엄청난 흥미를 끌었던 이 책은 실로 엄청났다. 이 '엄청나다'는 것은 서로 상반된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하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할 수 있었던 엄청나게 다양한 주제들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엄청나게 실망스러운 대담. 즉, 서로의 이야기 듣기의 엄청난 실패이다.

형식상으로는 13가지 주제에 대해서 26명의 대담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지만 이 책이 담아내고 있는 주제는 13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이 어찌보면 대담이라는 글이 아닌 말을 통해 하나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서 오는 필연적인 혜택일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동안 잠시도 열린 사고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는 엄청난 장점을 지니는 것만은 사실이다. 알아간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충족시키는데는 일단 성공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을 다루었다는 책 광고가 그다지 허무하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이 책의 대담가운데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대담은 두어편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열린 사고 즉, 개방적이고 총체적인 기본적 사고를 형성해주고 이를 끈임없이 요구하는 인문학의 필요성을 내포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문학의 거장이라고 불리시는 고대 김우창 교수님과 철학가 김상환씨의 대담 <오렌지 주스에 대한 명상>은 문학, 예술, 철학, 신화, 디지털, 책, 정치, 종교 등등 엄청난 경계들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이루어져 지식인(?)을 준비하는 대학생으로써 엄청난 반성을 하게 했고 그와 더불어 알아가야 하는 것들에 대한 엄청난 동기부여를 해주었다. 
 
하지만 내가 이 책에 기대했던 것은 이러한 주제의 다양함을 통한 인식의 폭의 확장에 있었다기보다는 <대담> 자체에 거는 기대였다.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때 필연적으로 아니, 글이라는 틀 자체에 의지한 나머지 발생하는 가식이나 자기 포장하기로부터 말을 통한 사고의 표현은 보다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
았기 때문이다. 말을 통한 생각의 전달, 특히나 이러한 형식의 대담은 두 명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자신의 생각에 도전도 받아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수정해보거나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눈앞의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소위 '지식인 그들만의 잔치'에서 벗어나 표현과 전달에 다른 양상을 띨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말을 글처럼 표현하는 그들(?) 앞에서 이러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둘 사이에 대담 아니 대화조차 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 서로 자신의 분야에 대한 혹은 자신이 준비해온 것에 대해서만 아주 집요하게 이야기한다. 서로 이야기의 주고받기가 형식이 지나지 않은 것이다. 상대방의 이야기의 요점이 무엇이든지 간에 상대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어려운 이야기를 늘어놓기 일 수였다. 이것이 지면상 혹은 시간상의 이유로 편집된 것이기만을 간절히 바래본다. 정말로 이것이 우리사회를 이끌어갈 기본적인 인문지식의 선구자들의 대화의 모습이라면 참으로 암울하기 때문이다.

말이라는 가장 자유로운 표현 형식을 빌면서까지 대담자들이 엄청난 패거리 의식(스스로든 실재 패거리든)에 젖어 있다면 앞서 설명한 이 책이 주는 주제의 다양함에서 오는 열린 사고라는 장점은 단지, 사고의 다양함이 아니라 여러 명의 획일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옹골찬 고집이 만들어낸 난무하는 허무한 말로 전락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독자뿐만 아니라 대담자 스스로도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이러한 대담이 단지 지식인들의 자족적인 지적 유희(?)에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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