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의미 - 두려움 없는 은퇴, 여름날보다 충만한 인생의 가을을 위하여
폴 투르니에 지음, 강주헌 옮김 / 포이에마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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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책은 좀 독특하다. 1971년에 처음 출간된 책이기 때문이다. 제목은 '노년의 의미'. 늙어가는 것에 대한 통찰을 담은 책이다. 물론  1971년 처음 출간됐지만, 내용은 여전히 아주 적절하다. 저자는 주로 40여년 전의 서유럽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려내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래서 일견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영 동떨어진 이야기를 그려내는, 지금 출간하는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싶지만 사실 지금 우리나라 - 그동안 상당한 수준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 중인 오늘 날의 한국 사회의 현실에 더 들어맞는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이 책을 편집하신 편집자분이 굉장히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선택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저자는 생계와 세속적 성공을 위해 내달리던 자연의 삶에서 문화적 삶으로 전환할 것을 이야기하는게 이 책의 골자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결국 '일'에서 벗어나는, 해방되는 시기가 온다. 바로 은퇴인데 그 은퇴 즈음에는 지금까지 살아오던 일하는 삶이 아닌 문화적 삶, 즉 자신을 계발해서 꾸준히 진보하고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며, 직업활동을 끝낸 후에도 지속될 수 있는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으로 삶의 방식을 과감히 조정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 역시 저자에 대한 언급을 해보자면 상당히 유명한 분인 것 같다. 나는 저자 소개를 책을 다 읽은 후에 봤는데 보자마자 아~ 싶었던 부분은 '기독교가 가장 사랑한 상담자'라는 문구. 이 책의 전반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 내려온 인간 그리고 그 인간이 늙는다는 것, 이란 시각으로 사람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기에 확실히 기독교의 느낌이 안 날 수 없는 책이었기 때문. 

 종교가 확실한 분들에게 더욱 이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 

이건 이 책의 뒷면에 있던 출판사에서 얘기하는 소개문인데, "평소에 삶의 의미를 찾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노년에 이르러서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수 있다." 라는 말이 상당히 와닿으면서 이 책 전체적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부분이기에 찍어 보았다. 



목차는 간단하며 이렇게 1. 일과 여가 2. 더 인간적인 사회를 위하여 3. 노인의 운명 4. 제2의 삶 혹은 제2의 이력 5. 수용에 대하여 6. 믿음  여섯 카테고리를 가지고 늙음과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간단히 기억에 남는 큰 카테고리는 다양한 관심사를 개발하는 방법, 여가활동의 중요성, 여가활동을 통해 제2의 이력으로 발전시키는 방법, 권력을 내려놓는 방법과 늙어가는 자신의 방법을 받아들이는 방법 등이다. 이 얘기들은 상당히 저자의 상담가스러움 답게 자연스럽게 전개가 되어 읽는 데 하여금 상당히 편하게 그의 이론을 받아들이며 곱씹어 보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의 문체를 드러내 준다 생각되는 한 부분이 있어 찍어 둔 게 아래 사진.


 이는 저자의 문체가 드러나기도 하고,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다 은퇴한 노년은 아니기에 더욱 와닿는 말이었다. 사실 '경험'에 대해서는 요즘 같이 '아들러 심리학'이 유행하는 때에는 상당히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경험도 나쁜 경험이 있으니 꼭 경험을 했다고 다 좋은건 아니다 라든지 이러한 얘기들은 술에 물타기 식으로 '경험'의 중요성을 쉽게 간과하게 한다. 특히나 요즘처럼 '반전', '본래 있던 상식의 파괴'와 같은 걸 좋아하는 독자층이 늘어난 세대에는 더더욱.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아류 같은 사회에서 그래도 나는 사라지지 말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편이다 보니 이 40년 전의 책이 복고같이 와닿으면서 좋았던 것 같다.  


 당연히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은데, 첫 번째는 무종교인 내게는 어쩔 수 없이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부분도 있는 '기독교적 세계관'. 그러나 반대로 그런 세계관에 대한 공부가 되어서 (마치 파스칼의 '팡세'처럼) 오히려 또 그 부분에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기도 했다만. 두 번째는 저자는 수많은 책의 저자여서 그런가 상투적으로 갇힌 자신만의 이야기가 너무 확실한 느낌이어서 '인간은 이래' 하는 식의 확정을 지어놓은 상태의 전개가 느껴져서 그 부분은 사람들로 하여금 갸우뚱하게 만들 수 있을 법 했다. 예를 들어, 인간이 태어난 데는 이유가 있다 라던지(나는 과학을 전공해서 그런가 무언가에 항상 이유를 찾는 것 자체를 상당히 거북스러워 하는 편이다), 우리는 태어난 이상 어떤 '과제'를 해야 한다! 라는 것이던지 (물론 부드럽게 해석해서는 충분히 이해는 가는 부분이었지만 그냥 내 스타일이 아니었나보다).

 세 번째는 한국의 책이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기시감은 있다. 그러나 40년 전의 서유럽은 상당히 한국과 유사한 면이 많아서 이를 차치하고 봐도 되는 책이었다 생각이 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몇 가지 밑줄을 남기며 리뷰를 마친다. 


얼마 전만 해도, 어린아이는 식탁에서 말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어른들이 옆에서 대화하더라도 어린아이는 그 대화에 끼어들 수 없었다. 요즘에는 노인에게 그 원칙이 적용되는 듯하다. 적잖은 가족에서 어린아이와 어른이 각자의 의견을 요란하게 표현하며 입씨름을 벌이지만, 노인에게는 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노인에게도 의견이 있을 거라고 누구도 번거롭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인은 자신이 시대에 뒤떨어져서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전락했다는 좌절감에 빠진다. 게다가 과거에 어린아이에게 그랬듯이, 주변 사람들이 노인에게 건네는 말투까지 달라진다. 짐짓 겸손한 체하며 친절하고 다정하게 말하지만, 그럴듯한 대답은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투이다. --- p.123

나이가 들어도 우리는 대체로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는 게 사실이지만, 성격적 특징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마련이다. 너그러웠던 사람은 더욱 너그러워지고, 고집불통이던 사람은 거의 폭군으로 변하며, 소극적인 사람은 더욱 소극적이게 된다. --- p.252~253

더 이상 명령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권위를 행사하지 않아야 진정으로 은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은퇴는 계급사회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계급도 없고 지위도 없고 정해진 역할도 없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늙은 정치인들처럼 젊음을 한없이 연장하는 게 아니다. --- p.270

매번 우리는 모든 것의 끝인 것처럼 성공을 맛본다. 하지만 성공은 뒷걸음질치고 멀어진다. 성공 자체가 제한적이고 불완전한 것이다. 르클레르크 신부는 노년의 즐거움을 다룬 멋진 책에서 “끝에 이르면 … 인간의 삶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p.325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서는 내려놓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내려놓기는 힘을 추구하는 의지로부터의 해방이다. … 하나님은 강력한 손으로 우리를 다시 붙잡고, 우리는 다시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이런 불완전한 내려놓기를 통해 우리는 행동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노년을 조금씩 준비해간다.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내려놓기는, 나에게는 세상을 등진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더 폭넓고 더 깊이 세상에 관심을 갖는다는 뜻이다.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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