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 (양장) -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꼭 꽃을 피워한 구절이 마음을 울렸다. 식물을 키우다보면 생각보다 꽃을 피워내기가, 열매를 맺게 하기가 생각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볕의 양, 습도, 물 주는 양 등 뭐 하나라도 어긋나면 금세 시들어 버리거나 과습되어 버리는 것이 식물이다. 그런데 야생화나 잡초는 세찬 비에도, 작열하는 태양 볕 아래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정인이와 닮았다. 온실 속 화초같이 자라는 친구들 속에서 척박한 땅을 스스로 읽구는 모습이. 네잎 클로버의 행운은 고사하고, 세잎 클로버의 평범함조차도 가질 수 없는 없는 모습이.

 

사실 나는 불행을 대상화한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소설 속 주인공을 혹은 현실에 존재할 누군가를 떠올리며 값싼 위안이나 동정을 하고 싶지 않다. 처지가 비슷하더라도 주인공은 이렇게 꿋꿋한데 너는?’처럼 극복을 종용받는다든지, 책장을 덮고 마주해야 하는 그대로인 현실이 달갑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클로버는 달랐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마법과 같은 순간과 존재가 등장하지만, 주인공의 문제를 극적으로 해결해주지도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 천사의 구원도 아닌 휴가 중인 악마의 유혹만이 존재한다. 그렇다고해서 비루하거나 고통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현실에 환상이 미치지 못함으로써 주인공은 현실에 내딛는다.

 

만약에는 누구나 꿈꾸는 단어일 것이다. ‘만약에 로또에 당첨된다면?’ ‘만약에 건강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만약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만약에 저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만약에가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현재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고서라도 이루게 해달라고 할 사람은 나를 포함하고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내가 정인이라면 어땠을까. 만약에만 덧붙이면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주겠다는 제안을 듣고. 악마와의 계약이지만, 목숨값도 아니고 그저 구질구질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댓가를 치르는 것뿐이라면. 당장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정인은 악마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다. 수없이 펼쳐지는 유혹에 갈등하고 고뇌한다. 정인은 극에 달한 마지막까지도 헬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읽는 내내, 정인이가 어떤 선택을 할지 가슴 졸이며 지켜보았고, 마지막에는 어떤 선택을 내리더라도 응원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살면서 수만 번 품었던 만약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책장을 덮고 바라본 현실이 묘하게 달라진 듯하다. 아니, 책을 읽고 삶이 다르게 느껴진다. ‘만약에를 그리며 붕 떠 있던 삶이 이제야 온전히 내 것 같다. 달든, 쓰든 내가 가꾸어오고 가꾸어 나갈 삶.

 

성경, 파우스트 등 풍부한 인용과, 매력적인 삶의 태도, 허를 찌르는 유머가 계속해서 시선을 잡아끄는 책이었다. ‘극복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냥 하세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피어날 겁니다. 응달에서도 꽃은 피니까요.’ 작가님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다. 이 이야기야 말로 응달 속에서 핀 한 송이 꽃 같다. 현실에 내린 뿌리가 깊고, 달큰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