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의 여름 사계절 그림책
김상근 지음 / 사계절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스러운 그림책.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무더운 여름날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내게 여름은 무덥고, 습해 불편한 계절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파란 하늘, 녹음, 그림 같이 칠해진 구름, 반짝이는 바다를 볼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마냥 미워할 수는 없는 계절이다. 

책 제목을 보고 두더지의 여름은 어떨까 궁금했다. 땅 위가 지글지글 타고 있을 테니, 굴 속에만 있고 싶은 계절이 아닐까 싶었다. 창 밖에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을 두고도 집에 콕 틀어박힌 무기력한 나처럼. 


예상이 맞았는지 땅 파기가 싫은 두더지는 여름이 와도 반갑지 않아 보였다. 땅 파기가 싫은 두더지라니? 두더지라면 마땅히 땅 파기에 타고난 재주가 있을 것 같은데 의아함을 품고 책을 넘겨 본다. 

아. 흙도 먹고, 길도 잃어 땅 파기가 싫었구나. 두더지라고 다 땅 파기를 잘 할거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내가 가진 고정관념일테지. 
나 역시도 처음 수영과 운전을 배울 때 긴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능숙해지기까지 불편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났다. 누군가에게는 응당, 마땅히, 무릇과 같은 단어가 때때로 마음에 생채기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그림책으로 배운다.

따분하고 부담스러운 땅 파기는 피하고 싶고, 더군다나 다들 피서에 가 즐거울텐데 홀로 연습이라니 얼마나 속상할까. 애써 연습에 나가보지만, 나 홀로 땅 파기 연습이 외로웠던 두더지는 여행을 떠난다. 

쉬어가는 길에 우연인지 인연인지, 거북을 만난 두더지는 금세 활기를 되찾는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여전히 잘할 수 있을까 걱정되지만, 친구를 위해 안에 있는 두려움, 걱정,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땅을 파내려 간다.


땅파기가 드라마틱하게 쉬워진 것은 아니지만, 좌충 우돌하면서도 함께 조금씩 나아간다. 굴을 파며 여러 캐릭터와 마주치는 데, 깨알 같은 표현된 일상들이 무척이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안대를 낀 늑대, 노래를 부르며 목욕하는 곰 아빠, 출산 요가 중인 쥐, 독서실에서 졸고 있는 모습까지. 아이와 함께 읽는다면 장면 장면마다 풀어볼 에피소드가 무궁무진할 것 같다. 


특히 인상 깊은 점은 두더지와 거북이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캐릭터가 '함께'라는 것이다. 수영장에서 가장 극대화 되는데 서로 몸을 기대거나 끌어주며 위기를 극복해낸다. 거북이와 두더지처럼. 

자칫 두더지의 서투른 땅파기가 누군가에겐 피해를 끼치는 것처럼 표현될 수 있는데 오히려  '함께한다는 것', '서로 돕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이 영리한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험의 끝에 기다리는 탁 트인 바다의 모습은 싱그럽고, 헤어짐이 아쉬워 바라보는 노을의 모습은 뭉클하다. 잠시 숨을 멈추고 함께하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리고 마지막 예상치 못했던 반전에는 어찌나 흐뭇한지. 순식간에 전환되는 분위기에 감탄했다. 그림책에 조 바꿈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기분 좋은 변주였다. 

전작과 비교하자면,  '두더지의 소원'에서는 흰 눈에 빨간 모자를 쓴 두더지가 강조되는 연출이었다면, 이번 두더지의 여름에서는 동식물과 배경이 각자의 색을 뿜어내고, 변화하며 역동적으로 묘사된다. 그러면서도 작품이 지닌 훈훈한 유머, 사랑스러움, 귀여운 유머는 놓치지 않았다. 

두더지의 겨울은 겨울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이렇게 아름답다면 화사한 봄의 모습은 또 어떨지, 가을은 얼마나 알록달록할지 감히 예상하기 어렵지만 꼭 만나고 싶다. 

전작을 믿고 선택했고, 가졌던 기대를 넘어서는 감동을 느꼈다. 전작을 넘어 계속 사랑 받는 데는 이유가 있음도. 

두더지의 여름 덕분에 올 여름은 찝찝하고 불편한 계절이 아닌, 반짝이는 싱그러운 여름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 몽글 몽글해지는 이야기, 반전 있는 그림책을 사랑한다면, 사랑스러움 그 자체인 '두더지와 여름'을 꼭 읽어보시라 적극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